쌍용차 ‘해고자’ 딱지 떼고 보험영업 1년 만에 ‘보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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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해고자’ 딱지 떼고 보험영업 1년 만에 ‘보험왕’
  • 취재_서동삼 부국장
  • 승인 2011.12.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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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딱 한번뿐인 신인 챔피언 오르며 연봉도 3억 원 ‘껑충’

삼성화재 원면재 RC(Risk Consultant)는 요즘도 길을 가다 쌍용자동차를 보게 되면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뭔가가 솟구치는 걸 느낀다. 2년도 더 된 일이지만, 퇴사를 종용받은 이들과 그들의 가족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15년 몸 담았던 쌍용자동차에서 자신은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온갖 어려움을 딛고 보험영업 1년 만에 지난 4월21일 삼성화재의 ‘2011년 고객만족대상’에서 신인 챔피언상을 수상하며 인생 재기에 성공한 것. 시사매거진은 <2011 금융리더 연말특집>으로 이 ‘슈퍼루키’를 만나기 위해 11월 셋째주 경기도 평택을 찾았다.

쌍용차 해고 뒤 5인 가족 가장의 어깨 무게는?

원면재 RC가 돌이켜본 2009년의 평택은 한마디로 암울했다. 2천명이 퇴사해 딸린 식솔들까지 더하면 그 두세배 넘는 수의 미래가 짙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직설적인 표현대로 ‘지역경제는 꽝’이었다. 그해 9월 쌍용자동차를 나온 그는 작으나마 사업을 해볼까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기엔 경험도 없을 뿐더러 성공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에 5인 가족 가장의 어깨의 놓인 짐은 무시 못할 정도였단다. 그래서 초기 투자금에 대한 부담이 적은 일을 찾아야 했다. 아예 투자금이 없는 보험영업이 어떨까 어른거렸다. “주변에 생명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보험이 완전히 낯선 것만은 아니었죠. 그저 ‘보험은 어떨까?’ 저울질하는 단계였는데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사람도 나타나고, 보험을 한다면 생명과 화재 중 내가 가진 자원으로 보다 시장접근이 쉬운 화재가 낫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 당시 평택은 쌍용자동차 사태에 따른 평택 사람들의 보험해약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로 당장의 생계가 위협을 받게 된 터라 사람들은 급한 대로 보험해약부터 서둘렀다.

그가 보험코드를 받던 2009년 12월의 평택 풍경이었다. 쌍용을 나와 삼성화재 RC가 되었다는 사실도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던 그는 연고에 의존한 영업은 결코 꺼낼 수 없는 카드였다. 그래서 그는 모름지기 영업이란 ‘모르는 사람도 설득하는 것’이라며 철저히 개척으로 승부해 보자고 다짐했다. 방향을 정했지만 ‘나만의 그 무엇’을 찾기까지 그가 거르지 않은 것은 영업자들의 에세이를 읽었다는 것이다. “몇 편을 읽었는지 기억에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에세이들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내 머릿속 구상이 이들 에세이속 실전경험과 어우러지는 과정에서 어떤 개념이 탄생하더군요. 이론무장은 이만하면 되겠다 싶었을 때 나는 길을 나섰습니다.” ‘원면재표’ 개척영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영업 노하우? 초심 잃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

결국은 확률게임이라는 것이 원면재 RC의 영업철학이다. 처음부터 대어를 낚을 수는 없는 법. 원 RC는 중소업체를 마음에 두고 움직였는데 고객에게 신뢰감 있게 다가가고자 타깃을 정하고 사전정보를 얻는 단계를 자신이 충분하다 여길 때까지 길게 가져갔다. 식당을 대상으로 하던 초기, 점찍어둔 식당 사장에게 말을 걸기에 앞서 점심이나 저녁 피크타임의 식당 모습은 어떠한지 밖에서 관찰했다. 붐비는 정도로 매출규모를 대충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확인된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오후 2시30분쯤 느지막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다. “주문을 하고 자연스레 사장에게 말을 걸고, 매출액 대비 상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정보를 준 뒤, 실화법 개정과 화재보험 얘기를 꺼내고, 안 들어 있다면 내가 제안서를 만들어 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죠. 상대가 제안서를 만들어 보라는 데까지 동의하면 거의가 계약으로 이어졌습니다.”

원 RC는 근면이 최고의 무기이던 시기를 거쳐 노하우가 자리잡고 난 뒤에는 가능성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한다. 특정건물의 어느 점포를 타깃으로 삼으면 근방의 건물들까지 죄다 관찰하고 다니며 ‘화재보험 드셨나요?’ ‘언제쯤 드셨는데요?’라고 지치지도 않고 물었다. 실화법 개정전 계약이라면 다른 회사 것이더라도 꼭 한마디 해주고 나왔다. “실화법 개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꼭 내가 아니더라도 반드시 보장내용을 확인하고 이에 맞는 상품에 가입해야 한다고, 무늬만 있는 상품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세금 등을 포함한 제안서를 보여주면 이런 건 난생 처음 본다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업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직설적으로 그의 영업 노하우를 물었다. “자기만족이 가장 무섭습니다. 하루도 안 쉬고, 계약건수가 없는 날 힘들 땐 새벽까지 일합니다. 끊임없는 도전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평일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보험영업이 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3개월밖에 안 지난 느낌이라는 원 RC의 초심은 아직도 흔들리지 않았다. 

“내 고객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그는 지금도 고객에게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게 아닌 자산/재무컨설팅 개념으로 접근한다. 따라서 고객을 충분히 알고 난 뒤 상품전략을 세우는 식으로 개척해 나갔다. 고객과 신뢰를 쌓은 시간으로 알고 상품설명보다는 고객들의 이 문제 저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원 RC만의 ‘성향’을 알렸다. 그가 메신저가 돼 고객과 고객을 매칭하기도 했다. A고객의 문제를 B고객이 해결해주는 일도 왕왕 생겼다. 그가 없는데서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쯤되니 알아서들 그에게 보장문의를 해왔다. “이건 무슨 마법 같은 게 아닙니다.

3개월을 한결 같이 터치하기에 가능한, 선의와 인내의 게임이랄까….” 그의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큰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하반기부터였다. 당장의 형편 때문에 보험을 해약하는 사람들에게 뭘 남기고 뭘 없애야 할지 해약플랜을 짜주며 문을 연 영업이 고액건이라는 결실을 얻은 것이다. 이 무렵 원 RC의 지인들도 소문을 듣게 되면서 예전 동료들이 왜 내게는 연락안했느냐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 중 5명은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를 성공사례로 여기고 지금도 맹렬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단다. 현재 원 RC의 개척비중은 전보다 줄었다고 한다. 대신 기존 고객들을 만나는 가운데 새 고객을 소개받는 일이 일상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내 고객이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신조를 기반으로 요즘엔 저와 고객간 심리적 밀착도를 조금씩 높여가고 있습니다. 한번 관계를 트고 나면 평생 고객으로 만든다는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다 보니 첫 계약보다 이후에 큰 계약이 나오는 사례가 늘고 있죠. 100만 원짜리 화재보험으로 출발한 고객이 이제는 신축건물 화재보험이며, 가족들 종신까지 합쳐 1,200만 원까지 납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불어 부침이 많았던 평택에도 볕이 들 조짐이 보이는데 삼성·LG전자 공장이 5년후 들어온다는 소식이 그것입니다.” 원면재 RC는 올해 고객만족 대상 시상에서 루키 챔피언의 영예를 안은 건 스스로도 대견하게 여기는 부분이지만 그게 어디 혼자만의 노력이었겠느냐며 겸손해 했다. 2009년 말 RC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던 날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앞으로 5년간은 가정에 좀 소홀하더라도 이해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가족의 미래가 걸려있음을 아는 만큼 아내도 아이들도 그의 새로운 도전에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고 한다. 올해를 한달여 앞두고 다음 목표를 향해 오늘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원면재 RC는 “현재 300~400명 정도의 고객관리를 하며 연봉은 3억 원대”라며 “고객들이 오래했으면 좋겠다 해서 평생 이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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