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상 미술의 한 영역을 개척해 온 규랑 오유화 화백. 그녀는 구상적 의지와 추상적 뉘앙스를 나타내는 작가로 국내 미술계에서 ‘사실적 구상표현주의’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다.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작가이지만 항상 한국의 색채와 동양적인 사고를 전달하려고 노력 하고 있는 오유화 화백은 전통적 장생도에 현대 회화 감각을 접목시켜 정신적으로 척박한 환경에 처해 있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무릉도원에 머물게 하고, 지치고 힘든 심신을 판타스틱 하게 해주고 있다.
40여 년 전 인물화가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오유화 화백은 참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화가다. 어릴 적 무용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춤을 췄지만 부모의 완강한 반대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그녀는 20세 이후, 천부적인 예술적 자질과 혼을 그림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늘 열정적인 작업을 해왔다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수많은 인물화를 제작했고 1980년대에는 한국화의 채색과 수묵화·고서화의 재현을, 1990년대에는 풍경을 비롯한 꽃그림과 정물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을 제작했다. 그리고 2000년부터 일련의 장생도 시리즈로 좀 더 완숙한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했다.
서양화 기법으로 담아낸 한국의 자연과 십장생

2000년부터 전통적 장생도를 바탕으로 현대 회화 감각을 접목시키는 노력을 해온 오유화 화백은 장생도 시리즈를 통해 한국적이면서도 따스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화에 발맞춘 현대미술이라고 하더라도 나라의 고유성을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양미술의 스타일을 쫓아가기 보다는 우선 작품에 철학이 있어야 하며 민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까. 그녀의 붓 끝에서 그려지는 세계는 한국인의 향수와 꿈을 함축시킨 인간적 휴머니즘을 구현시키고 있다. 이는 미술의 본질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녀의 미학적 철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그대로 붓 끝에 실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대로 느끼게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유화 화백의 장생도는 주로 계곡을 배경으로 한 사실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일반 풍경화와 달리 그의 장생도에는 전통회화의 형태미가 고스란히 드러나며 해, 달, 학, 사슴, 대나무 등의 소재들은 일반적인 풍경화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초기에는 슈얼리즘기법의 십장생도를 그렸고 화폭을 3등분해 십장생 구상화면과 추상화면을 병치해 입체감을 살린 이원구성법의 장생도를 캔버스에 담았다. 또한 이원구성법에 오방색을 가미한 장생도와 함께 최근 오방위의 방향 설정까지 표현한 이중화면의 장생도를 선보이고 있다. 장생도의 이원구성법의 이중화면 그림은 그림 속에 방위 표시까지 제시 되어 있는 그림으로서 미술사에도 기록 되어 질 수 있는 획기적인 시도임을 보여주고 있다.
“서양미술이 인간중심적인 것에 비해 동양의 미술은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양미술에 비해 앞서 초현실적인 표현양식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런 모든 양식과 기법 또한 자료들로서 나의 사고와 나의 예술세계를 표출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오랜 세월 작업을 하면서 느껴왔던 것이죠.”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융화시키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었다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 그녀는 고정적인 관념을 타파하면서 전통을 살리고 무리함이 없이, 또 틀에 박힌 이미지를 과감히 개혁했다. 한국고유색인 오방색으로 구상과 비구상의 세계를 나누고 실경에서 적절히 표현되지 못한 것들을 표현의 자유화를 시켜 무한한 우주공간으로 사고를 배치하기도 했으며 전통적인 문양을 고안해 의인화 시키려고도 했다. 오방색의 나열기준도 색의 대비에 맞게 설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오방색은 그 자체로 모든 색을 포용할 수 있으며 의미 또한 깊다”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의 그림을 보면 가운데 황을 넣고 사방을 가림해서 동은 청, 서는 백, 남은 적, 북은 흑을 넣어야 하나 간혹 색 대비가 앞서서 그 의미를 배제하기도 했다.
“제 작품에는 유일하게 동양의 오방색으로 그림에 대한 방위표시가 있으며 그 안에 디자인된 분리로 전통성과 현대성을 접목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림에 좌우상하 방향을 넣는 것은 국내 유일무일하며 십장생으로 옛 선조의 화풍을 보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이끌어 내려 했죠.”
소재 또한 십장생에 국한하지 않고 환경에 따라 적절히 대치됐으며 풍경화로서의 자리매김은 물론 사유의 철학도 공존해 펼쳤다.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이 주는 평온함과 행복감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그녀만의 확고한 미학적인 사고가 바탕이 되어 그려지는 오유화 화백의 그림은 그래서 더 평온하고 따뜻하다. “좋은 그림은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줄 뿐만 아니라 거실에 걸려 있는 한 폭의 풍경화가 집안의 기를 흐르게 한다고 합니다. 상서로운 모든 것들과 매일 놀고 있듯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죠.”
자신의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즐거웠으면 한다는 그녀는 자신 동양적인 철학과 미학에 대한 확고한 이념으로 그린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평안과 행복함을 준다.
“아름다우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시대적인 메시지도 줄 수 있는 그림이야말로 명화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 지금 그녀는 장생도를 통해 지친 이 시대 사람들에게 평온함과 행복감을 전해주고 있다.
한국의 우수한 젊은 작가 발굴과 후배양성에 노력

“미술은 나에게 있어 표현 언어이자 소통의 장”이라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은 자신이 걸어온 40여 년의 미술과 함께 해 온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는 이들의 가슴 한켠에 감동을 선사하고 작품에 대한 열정이 전이되길 간절히 바란다는 오 화백. 수많은 작가들 가운데 진주 같은 훌륭한 작품과 작가들을 발견하는 컬렉터이기도한 오유화 화백은 젊은 작가 발굴과 후배양성에 힘쓰고 싶다고 했다. 규랑예술제도 그녀의 이런 뜻이 반영된 것이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열심히 그림 작업을 하며 화우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는 오유화 화백은 “외국 작가들의 그림도 좋지만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도 얼마든지 좋은 그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능한 작가들이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기업 측에서도 다양한 지원이 필요합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오유화 화백은 인물화를 그렸던 만큼 자신의 주위 가족들과 한국 춤사위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각 종류의 춤에 따른 의상의 독특함도 창출하려고 합니다. 의상의 색 역시 오방색의 기초를 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물은 또 하나의 매력적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작가로서 가장 성숙했을 때 기존의 서양적인 성화가 아닌 한국적인 성화를 그려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성당 같은 곳에 기증하는 것 또한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말하는 오유화 화백. “이러한 계획이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