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특별한 대우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성적이 어떠하든 졸업장만으로도 취업이 가능했고, 더구나 ‘넥타이’를 매는 고급 직종으로부터 선택받을 수 있었다. 이는 이른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유교이념의 흔적이자, 폐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21세기 글로벌 사회를 맞이했다. 고학력 실업자가 15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대학생은 300만 명에 이르렀으며 이로부터 매년 대졸 실업자들은 실업률 향상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 과정과 이유가 어찌됐든, 대학은 더 이상 진리의 상아탑이 아니다. 연구와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기능 또한 상실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취업과 진로를 위한 관문으로 전락했으며,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사회가 이렇듯 부조리한 현상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등록금 1,000만 원 시대.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고, 등골이 비틀어진 학생과 학부모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수상한 세월의 단면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지난 600년 동안 이 땅을 지배했던 유교의 폐해에서 우리는 정녕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꼭 대학이라는 관문을 거쳐야 진정한 사회인이 될 수 있으며, 풍요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서글픈 물음표 뒤에 단단하고 뚜렷한 느낌표 하나가 따라 붙었다.
진도실업고등학교(www.jindosilgo.hs.kr/김인수 교장/이하 진도실고). 1937년 진도농업실수학교로 개교하여 1951년 진도농업고등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67년 상업과를 신설하여 오늘날의 교명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1994년에 자동차과를 신설했고, 2007년 특성화과로 조선설비과를 개설하여 현재 정보처리과, e-비즈니스과 등 4개 학과로 상업계열과 공업계열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15학급에 230명이 재학하며 45명의 교직원이 활발한 학습활동을 지원하고 있지요.”
김인수 교장이 소개하는 진도실고는 다양함과 활기가 가득찬 배움의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고등학교 특유의 치열함과 대학이 가진 깊이가 공존하는 전혀 다른 배움터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동안 다져온 가르침과 배움의 내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진도실고인들이 받들고 있는 학교의 역사와 전통이 한 몫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 진도실고인 중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지만, 이 학교의 주된 목표는 대학진학이 아니다. 대학이 ‘고급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이 시대에, 보다 경쟁력 있는 산업인력을 효율적으로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진도실고는 등록금 1,000만 원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에서 보장해 주지 않는 경쟁력 있는 전문기술과 풍요로운 취업을 보장하고 있다.

진도실고가 자랑하는 교육핵심은 단연 ‘비즈쿨’이다. 이는 ‘비즈니스로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로 ‘비즈니스(business)’와 ‘스쿨(school)’의 합성어이다. 창업교육의 전문화와 공교육화에 대한 인식확산, 새로운 직업교육문화를 위한 체계적인 창업교육의 메카라 할 수 있겠다.
“비즈쿨은 중소기업청에서 지원하는 청소년 창업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저희의 비즈쿨 역사는 2005년에 시작돼 오늘까지 7년째 지속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핵심은 단순한 주입식 학습이 아닌 학생들의 체험을 통해 창의적 아이디어를 계발하는 데 있습니다.”
김 교장은 이러한 비즈쿨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오는 동안 학생들이 스스로 변화해 왔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탐구하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며, 제품을 만들고 제조원가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의 면모를 스스로 터득하게 된 까닭이었다.
이는 비단 기술적인 측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제품에 대한 홍보와 마케팅, CEO로서의 역할과 능력을 배양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속에서 그야말로 ‘자기완결적 구조’를 갖춘 기업인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즈쿨의 성과는 단순한 기업인을 넘어 미래를 선도할 CEO를 양성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 성과로 2009년과 2010년에는 비즈쿨 전남 으뜸학교로 선정되었고, 올해는 전남 거점학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진도실고의 ‘글로벌 CEO 만들기 프로젝트’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꼼꼼하고 세심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완벽한 경쟁력을 추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으뜸학교와 거검학교로 전남지역의 창업교육에 기반을 조성하고 있으며 전 학과가 자격증 취득 지도를 실시해 학생 개인별 2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다.
특히 조선설비과 학생들은 일반인들도 취득하기 어려운 미국선급협회에서 실시하는 특수용접 자격증(Q2)을 고등학교 학생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2010년에 7명, 2011년에 5명을 합격시켰다. 또한 자동차학과 학생들은 전남기능경기대회 차체수리분야에서 4연패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성과가 곧 신화다
진도실고에는 별다른 홍보물이 없다. 홍보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세상에 펼쳐놓은 수많은 일들과 그로인한 성과들이 그 어떤 홍보물보다 유용하게 학교를 알리고 있는 까닭이다. 올해(10월 하순 기준) 3학년 재학생 90명 전원이 대기업 및 중소기업에 취업해 100% 취업을 달성했고, 교육과학기술부와 KBS가 공동주관한 ‘2011년 대한민국 좋은 학교’에도 선정되었다.
“학교와 교육은 열정으로 돌아가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학교, 학생, 교사가 혼연일체를 이루지 않으면 그 어떤 성과도 낼 수가 없지요. 이런 점에서 본교가 낸 성과는 고스란히 학생과 교직원들의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교육자로서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 동안 저는 자율과 책임,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미래로 도약하는 학교경영을 위해 변화를 주도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이에 교육 수혜자들의 근원적 요구인 학업성취와 진학, 취업에 있어서 혁신적인 차별화를 통해 경쟁 우위를 계속 유지하도록 재창조해 왔습니다. 이러한 개인적 소신과 교육자적 철학이 만들어낼 미래는 더욱 창대하리라 기대하는데, 이는 저 혼자가 아닌 제자들과 동료이자 가족인 교사들이 함께 이뤄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고 그 변화가 자신의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여 자신의 역할을 결정하기, 견제와 평가 세력들과 소통하며 오랜 관습을 깨뜨리고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여 창의적으로 사고하기, 학생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고 그 희망을 실현시켜나갈 수 있도록 의식이나 행동을 올바르게 변화하도록 돕기. 김인수 교장의 이러한 생활신조는 진도실고의 열정 가득한 톱니바퀴의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오늘도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이 만만치 않은 무게감과 우렁찬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노라니, 이는 우리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