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단일후보 박원순 압승, 시민사회세력의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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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단일후보 박원순 압승, 시민사회세력의 등극
  • 정대근 기자
  • 승인 2011.11.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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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25개 지역구 중 21개소에서 10% 이상 앞서

지난 10월26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범야권단일 후보로 나선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로써 개표가 한창 진행 중이던 26일 자정을 기해 서울시장 직무를 수행하게 됐다. 박 시장은 자정을 넘긴 시각 안국동 선거캠프에 모습을 드러내고 “시민이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그는 “통합과 변화의 길에서 함께 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시민사회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연대의 정신은 시정을 통해 구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이 구현될 것이다. 제일 먼저 서울시의 따뜻한 예산을 챙기겠다”며 “보편적 복지는 사람 중심의 서울을 만드는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서울시정 10년의 종료
서울시장 등을 뽑는 10.26재보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의 화제는 단연 서울시장 선거였다. 무상급식 문제로 시의회와 갈등을 빚었던 오세훈 전 시장이 주민투표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썼다가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고 전격 사퇴한 바 있다.
이에 여권에서는 나경원 최고위원을 내세워 ‘안정적 시정’, ‘선택적 복지’를 외쳤고, 야권에서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변호사를 야권단일 후보로 내세워 ‘시민혁명’과 ‘보편적 복지’를 외쳤다. 이명박-오세훈으로 이어졌던 10년 간의 한나라당 서울시장 시대가 계속 이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그리고 결과는 야권단일후보인 박원순의 승리로 끝났다.
박원순 시장은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서울시 21개 구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제쳤다. 나 후보는 자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서울 중구에서조차 열세를 보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박 시장은 서울시 전체에서 53.4%를 얻어 46.2%를 보인 나 후보보다 7.2%포인트 앞섰다. 강남 3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대부분 10%~20%의 큰 격차로 박 시장이 앞섰다.
이날 투표율은 4.27재보선과 비슷했다. 서울시장 선거 최종 투표율은 48.6%로 분당을 선거(49.1%)보다 0.5%포인트 낮았다. 그러나 유권자 수가 분당을의 40배인 점을 감안할 때 선거열기는 분당을보다 훨씬 뜨거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후 6시 이후 두 시간 동안 투표율이 8.7%포인트나 오르는 등 퇴근길 '넥타이 부대'의 위력이 발휘된 것도 분당선거와 비슷했다. 대학생 등 젊은 층 밀집지역인 관악, 성북, 마포, 은평은 투표율이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보다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공중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40대는 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는 69.3%, 30대 75.8%, 40대 66.8%로 박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낸 반면 나 후보는 20~30%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경원 후보는 60대 이상은 69.2%의 지지를 받았지만 50대(56.5%)에선 박 후보(43.1%)와 차이를 크게 벌리지 못한 걸로 나타났다.

‘박원순 체제’ 본격시동
지난 10년은 이명박-오세훈 시장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의 서울시였다. 그러나 이번 10.26 재보선에서 야권단일 후보로 나섰던 박원순 시장이 당선됨에 따라 서울시정에도 적지 않은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박 시장은 선거기간 내내 한강르네상스사업을 비롯해 오세훈 전 시장의 주요시책을 전시성 토건사업으로 규정하고 대다수 사업을 전면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서울시 부채가 6조 원에서 25조 5,000억 원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이러한 토건사업을 대폭 줄여 임기 중 7조 원의 부채를 감축하겠다고 공약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역점사업 중 하나였던 뉴타운 프로젝트 역시 전면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뉴타운 촉진구역 241곳 중 70곳은 조합추진위원회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초 서울시는 ‘新주거정비 5대 추진방향’에 따라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원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박 시장이 일괄개발 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노선변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원순표 뉴타운’은 서민주거 안전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공공원룸텔 등 새로운 임대주택을 포함한 공공임대 주택 8만호 건설로 대체될 전망이다. 이는 기존 서울시 임대주택 공급계획 6만호에 2만호를 더한 수준이다. 또한 전세금보증센터와 전월세 인상률 상한제도를 도입해 세입자의 불편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대폭의 조직 및 인사개편도 불가피해 보인다. 오세훈 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일부 고위 간부들의 인사이동과 300여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무직 공무원의 수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조직개편의 경우 서울시의회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정무직 공무원은 정부부시장을 비롯해 정무조정실장, 대변인, 비서실장 4명에 불과하다. 정무부시장을 제외한 행정1,2부시장은 국가직으로 중앙정부의 임명과 제청과정을 밟아야 한다. 따라서 내년도를 겨냥한 조직개편을 위해서는 11월10일부터 열리는 서울시의회 정례회에서 조직 개편안을 제출해 심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 보편적 복지, 닻을 올리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선은 서울시교육청과 서울시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전면무상급식안을 오세훈 전 시장이 복지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주민투표까지 끌고가면서 실시하게 됐다. 이미 드러난 결과처럼 오 전 시장의 주민투표는 개함조차 하지 못한 실패로 돌아갔고, 그의 퇴임 후 야권단일 후보로 나선 박 시장이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이로써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비롯한 보편적 복지가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초중고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4년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무상급식과 관련해 시의회가 이미 695억 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박 시장의 의지에 따라서는 11월초부터 당장 무상급식이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 측은 무상급식 확대를 위해 내년부터 2014년까지 약 3,000억 원의 시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파악하고, 서해 뱃길사업과 한강예술섬사업 등 토건성사업을 대폭 줄여 예산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인하해 반값등록금 실현의 초석을 닦는 방안도 추진된다. 박 시장은 지난 10월21일 시립대 총학생회와 함께 4년 동안 등록금 반액을 지원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진행한 바 있다.
또한 서울시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는 보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어린이집의 11%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30%까지 확충한다. 지역별 격차를 해소하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동별로 2개소 이상 신설될 전망이다.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 해소를 위해 청년 벤처기업 10,000개를 육성하고 다양한 사회적 창조직업을 개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사회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서울시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울시의 예산인 20조 원의 한계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곧 내년도 예산편성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겠지만, 기존의 시청 관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크고 색다른 사업을 펼치기에는 상대적으로 역부족일 것이라는 풀이다.

패장 나경원 최고위원의 행보는
투표가 종료되고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새로 당선될 시장께서 정말 서울의 먼 미래를 위해 훌륭한 시장이 되시기 바란다”며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나 후보는 선거 당일 오후 10시58분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자신의 캠프를 방문해 지지자들을 격려한 뒤 이같이 밝혔다. 그녀는 “이번 선거의 결과에 나타난 국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정치권이 더 반성하고 더 낮은 자세로 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성찰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덧붙였다. 나 후보는 ‘나경원’을 연호하는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곧바로 캠프를 빠져 나갔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신 나경원 후보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나 후보의 패배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 앞서 치러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에게 패배한 바 있다.
나 후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상태다. 또한 이번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에서 패배한만큼 한나라당 최고위원직을 계속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어쨌든 나 후보로서는 선거 이후 잠정적인 휴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거운동 과정에서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을 겪은 후라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태다.
일각에서는 나 후보가 비록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정치인으로서 성장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등장해 18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했고, 서울시장 예선을 뚫고 본선에 진출하는 등 정치적 입지와 위상이 점점 상승하는 추제에 있기 때문이다.
선거 초반 20% 가까이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지원을 받아 극적반전을 노려볼 만한 추격적을 벌였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는 고스란히 나 후보의 저력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선거를 계기로 대중적 인지도가 전국단위로 확대됐으며 정치인으로서의 내용, 즉 콘텐츠가 없다는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당찬 목소리로 외친 나 후보의 정책 전문가 이미지는 선거 이후에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나 후보는 패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권의 여성지도자, 블루칩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심지어 차차기 대권주자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당장 내년 4월에 치러질 19대 총선에서 재기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다. 나 후보도 총선 출마에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시장’의 향후 과제
압도적인 표차로 서울시청에 입성한 박원순 시장이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그를 야권단일후보로 추대했던 시민사회세력의 부담도 커졌다. 박 시장에게는 기성정치권의 세력기반이 전무하다.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5당이 우군이 되어 주었지만, 그가 앞으로 시정을 펼쳐나가는 데 있어서 얼마만큼의 지지기반이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편으로는 그가 이끌었던 시민단체와 멘토단이 건재하지만 기성정치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앞으로 주요하게 지켜봐야 하는 사항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가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승리라기보다는 이명박 정부와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반사이익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각종 의혹과 논란이 터져나온 것도 한 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측근 비리 의혹과 내곡동 사저 논란으로 공정 사회를 무색케 한 현 정권과 지역, 이념의 낡은 틀에 갇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기성 정치권이 전혀 다른 세력을 등에 업은 박원순 시장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실제 박 시장은 나경원 후보에 비해 인지도도 떨어지고, 각종 네거티브 공세에 휘말렸으며, 토론에서조차 서툴렀다. 하지만 그가 결국 승리했다는 것은 다수 유권자가 박 시장의 부족함보다는 정권에 대한 심판을 중요하게 판단했다고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 시장의 검증은 지금부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그와 시민 단체가 국민적 분노의 반사이익으로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대안세력으로서 우리 시대의 정치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가장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과제는 막대한 재정적자를 줄이면서 복지를 확대하는 공약을 어떻게 이행해나가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해 왔던 각종 역점사업들을 분류하고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큰 잡음 없이 해결하는 것도 박 시장의 몫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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