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가니 신드롬’으로 대한민국이 들끓고 있다.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한편이 전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 각계각층에서 드러내는 반작용은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도가니 신드롬은 사회적 약자인 아동 성범죄 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 문제로 부상시켰을 뿐 아니라 장애학생 성범죄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제기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깊다.
장애학교 교직원들이 5년 동안이나 학생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질러 왔던 실체들이 영화를 통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비난 여론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 성범죄 문제 전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5일부터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 진행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 재조사 요구 청원에는 닷새 만에 6만 5,000여 명이 참여했으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전개하는 ‘아동 성범죄 공소시효 폐지 100만 명 서명운동’에도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동 성범죄자들을 다루는 사법시스템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거세다. 2007년 인화학교 전 교장 등 피의자 6명 대부분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데 그치거나 아예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사건은 많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개봉한 이래 5일 만에 100만 명, 11일 누적관객 385만 5.816명을 기록해 흥행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광주 청각장애 특수학교 ‘인화학교’ 사건전말
지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5년 동안 광주에 위치한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인화학교에서는 교장과 행정실장을 포함한 학교 관계자 6명이 초·중·고등학생 9명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가하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2005년 6월22일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성폭행 사실이 제보가 된 후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7월8일에는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성폭력 대책위가 결성되어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5년 11월1일, 이 사건을 MBC PD수첩에서 <은폐된 진실, 특수학교 성폭력사건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방송 이후 전 행정실장과 재활교사 등 2명이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후 2006년 5월16일부터 242일간 재단임원 해임 명령을 촉구하는 천막농성이 이어졌고, 8월21일에는 국가인권위와 임원 해임권고와 추가 가해자 6명 또한 고발되었다.
광주인화학교는 2007년 9월27일, 재단과 대책위에 참여한 교사에게 파면이나 임용취소,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처음 외부에 알린 보육사를 대기발령 조치하고 결국 해임했다. 이후 10월10일 성폭력 전임 교장이 징역 5년 구형을 선고 받았다. 7년 만에 죗값을 치르게 되었던 셈이다. 성폭력 가해자 6명 또한 형사 고발되었고, 성범죄 행위를 은폐 해오던 교사 2명도 추가 고발 되었다.
하지만 고발된 가해자 6명 가운데 4명은 실형을 선고 받은 반면, 2명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되었으며, 성범죄를 은폐해온 교사 2명은 아예 처벌에서 제외됐다. 특히 1심에서는 징역 5년의 실형을 받고 복역을 하던 교장이 항소심에서는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다른 가해자 2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이 사건은 솜방망이 판결로 조용히 묻히는 듯 했다.
그러던 중 2009년 6월 작가 공지영이 소설 <도가니>를 출간했다. 이 소설은 포털 사이트에도 연재되기도 했다. 당시 이 소설은 누적 조회수를 1,100만을 넘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공 작가는 “이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된 것은 어떤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며,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고 소설을 쓰게 된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한편 광주인화학교의 교장은 2011년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암으로 사망했고, 성폭력 가해자, 책임자는 정상 출근을 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다시 한 번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2011년 9월22일, 영화 ‘도가니’가 개봉했다. 주연배우이자 묻힌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고군분투하는 역할을 열연한 공유는 한 인터뷰에서 “군대 병장시절 진급기념 선물로 소설 <도가니>를 읽게 되었다”며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 영화로 반드시 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내가 느꼈던 심정을 함께 공감했으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계기로 탄생한 영화 ‘도가니’의 파급력은 심히 놀라웠다. 개봉 첫날 주요 극장에서 60%가 넘는 예매율을 기록했으며, 순식간에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할 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도가니’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런 흥행에 힘입어 소설 속 실제 사건이 일어난 광주인화학교의 재조사 여론이 들끓었다. 또한 일각에서는 광주인화학교를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말 그대로 우리 사회는 ‘분노의 도가니’ 상태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