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수출을 통한 농업정책 방향제시
한국의 파프리카 일본시장 70%점유
오늘날 우리 농촌은 이농현상에 의한 농촌인구의 감소와 농촌사회의 고령화, FTA협정에 따른 수입농산물 개방에 의해 너무나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추곡수매제의 폐지로 인하여 농촌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들은 값싼 중국산이나 칠레 산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되어 농사의 부채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전북김제에 위치한 농업회사 법인 농산무역(주)(대표 조기심) 은 파프리카의 대일 수출을 통해 년 간 1천만 불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판로 미개척으로 일본 진출
파프리카(paprika)란 말의 어원은 희랍어로, 현재 유럽에서 모든 고추류를 통칭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운맛이 없는 Blocky type의 유럽 종 수출용 착색 단고추를 파프리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파프리카는 일본 단고추(피망)보다 2.5배 무겁고 매운맛이 없으며 모양은 피망과 비슷하지만 색깔은 훨씬 곱고 선명하여 생식 및 셀러리용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분함양도 많이 운동 후 갈증 해소에 탁월하여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데 수박과 더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산 파프리카의 점유율이 70%이상이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년간 파프리카의 수출액은 1억2,900만 달러로 수입농산물로 인해 전망이 어두운 농촌경제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지에서는 농업의 블루 오션을 개척한 농산무역(주)의 조기심 대표를 우리농촌경제의 미래를 들어 보았다.
국내 판로 미개척으로 일본 진출
의류사업을 하던 조기심 대표가 농산물 관련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4년. 노지재배를 통해 수박 농사를 짓고 있던 조대표의 남동생이 정부의 권장에 따라 유리온실을 통해 시설재배를 시작 하였다. 시설재배에 사업비만 14억 정도가 들어갔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정부의 권장 사업이었으나 토마토, 오이밖에 재배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시설재배는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또한 농가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어 토마토와 오이는 이미 시장에 과잉공급 상태였다.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던 동생은 파프리카 재배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지만 조기심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의류사업을 통해 일본을 자주 다니던 조 대표는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도 이제 겨우 네덜란드산 파프리카가 홍보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상품을 미개척지인 우리나라에서 시작하려는 동생을 만류 하였지만 다른 대안이 없던 터라 제품 출시 후 판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조 대표 에게 맡기질 않는다는 전제로 동생의 사업을 돕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대로 상품이 생산된 후에도 국내에서는 판로가 형성되지 않았다. 매주 10톤 이상의 파프리카가 생산되지만 공급할 곳이 없고 저장성이 약한 농산물인 관계로 생산되는 양의 대부분을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은 안 조기심 대표는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어 5톤가량의 저온차량에 파프리카를 싣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매시장을 돌아 다녔지만 국내시장에 생소한 파프리카를 살사람은 흔치 않았다. 또한 가격도 피망보다 낮아 국내시장에서는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조 대표는 일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의류업 관계로 일본을 자주 다니던 터라 다른 분야의 사업이지만 유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꼼꼼히 시장조사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여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일본 주부들이 선호하는 농산물로 인정
일본으로 방향을 선정하였다고 해서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농산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지금 우리가 중국산 농산물을 보는 견해처럼 인분으로 농사를 지은 저질품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어서 한국 농산물을 구매하려는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기심 대표는 일본인들의 그러한 사고방식 에는 그간 일본에 농산물을 수출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수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편의에 의해 수출한 것이 대부분이라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게끔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깔끔하고 정교한 제품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춰 좋은 품질의 상품을 깔끔한 포장에 넣어 판매를 하면 일본인들도 구매를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러 곳을 조사하여 다닌 결과 일본의 수출업체들의 문의가 쇄도 하였고 조대표의 바램대로 파프리카는 일본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출 한 한국의 파프리카가 제 아무리 A등급의 제품일지라도 일본 수출업체가 B등급을 측정하여 수입업자에게 공급하는 불합리성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 조 대표는 일본의 수입업자에게 직접 찾아가 직거래 방식을 요구 하였지만 제품을 믿지 않고 중간 상인들만 믿는 수입업자는 조대표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자신의 제품의 우수성을 알기에 자존심이 상한 조 대표도 공급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 말처럼 조대표가 생산한 파프리카의 우수성을 알고 있던 다른 업체에서 연락이 와 조대표의 희망대로 직거래를 하게 되어 우리농산의 파프리카 대일 수출은 활기를 찾게 되었다. 이후 조 대표는 지속적인 파프리카 수출을 위해 시장에만 공급하던 방식을 대형 마트로 바꾸었다. 대형마트는 년 간 가격이 미리 측정되어 아무리 시장 가격이 오르더라도 항상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 파프리카 농가들의 반박이 있을 수 있었으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 한국의 파프리카는 일본 주부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농산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0년의 세월동안 고품질의 상품을 마트 측에서 원하는 대로 공급한 결과 오늘날 같이 파프리카가 과잉 공급되는 현실에서도 농산무역의 파프리카를 우선 취급하여 그동안 기울인 조대표의 노력에 신뢰를 보여주었다.
시설투자로 중국시장 선점이 우선
현재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의 규모는 년 간 1억만 불로 한국 파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설비를 확충하여 생산량을 증가시켜야 하지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만만치 않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 농촌이 많이 어렵다. 정부는 시설원예에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한다. 과거 시설원예에 대한 검증이 전혀 없던 시절 투자를 하여 큰 실패를 봤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와 같이 검증이 다 끝난 시점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노지 재배는 중국에 밀려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고급 농산물의 재배는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농촌의 고령화가 너무나 빨리 진행되어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고 중국도 가파른 산업경제 성장에 의해 젊은 사람들이 다 도시로 떠난 상황이라 고급농산물 재배를 생각도 못한다. 중국 전체 인구 중 잘사는 사람의 비율이 10%라고 할 때 그들의 수는 1억2천만 명이 넘는다. 일본과 같은 또 하나의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인식하여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시장을 먼저 선점 해야지 나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라며 역설 하였다.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신뢰입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고 나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항상 직원들에게 이점을 강조한다”는 조 대표를 보며 세계적으로 뉴질랜드의 키위를 가장 인정하는 것처럼 농산무역의 파프리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날이 머지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파프리카 일본시장 70%점유
오늘날 우리 농촌은 이농현상에 의한 농촌인구의 감소와 농촌사회의 고령화, FTA협정에 따른 수입농산물 개방에 의해 너무나 어려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추곡수매제의 폐지로 인하여 농촌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들은 값싼 중국산이나 칠레 산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게 되어 농사의 부채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전북김제에 위치한 농업회사 법인 농산무역(주)(대표 조기심) 은 파프리카의 대일 수출을 통해 년 간 1천만 불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국내 판로 미개척으로 일본 진출
파프리카(paprika)란 말의 어원은 희랍어로, 현재 유럽에서 모든 고추류를 통칭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매운맛이 없는 Blocky type의 유럽 종 수출용 착색 단고추를 파프리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파프리카는 일본 단고추(피망)보다 2.5배 무겁고 매운맛이 없으며 모양은 피망과 비슷하지만 색깔은 훨씬 곱고 선명하여 생식 및 셀러리용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수분함양도 많이 운동 후 갈증 해소에 탁월하여 무더운 여름을 이기는데 수박과 더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품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산 파프리카의 점유율이 70%이상이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년간 파프리카의 수출액은 1억2,900만 달러로 수입농산물로 인해 전망이 어두운 농촌경제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지에서는 농업의 블루 오션을 개척한 농산무역(주)의 조기심 대표를 우리농촌경제의 미래를 들어 보았다.
국내 판로 미개척으로 일본 진출
의류사업을 하던 조기심 대표가 농산물 관련사업에 뛰어든 것은 1994년. 노지재배를 통해 수박 농사를 짓고 있던 조대표의 남동생이 정부의 권장에 따라 유리온실을 통해 시설재배를 시작 하였다. 시설재배에 사업비만 14억 정도가 들어갔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정부의 권장 사업이었으나 토마토, 오이밖에 재배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시설재배는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또한 농가들도 비슷한 선택을 하고 있어 토마토와 오이는 이미 시장에 과잉공급 상태였다.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던 동생은 파프리카 재배를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하였지만 조기심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의류사업을 통해 일본을 자주 다니던 조 대표는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도 이제 겨우 네덜란드산 파프리카가 홍보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한 상품을 미개척지인 우리나라에서 시작하려는 동생을 만류 하였지만 다른 대안이 없던 터라 제품 출시 후 판로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조 대표 에게 맡기질 않는다는 전제로 동생의 사업을 돕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우려대로 상품이 생산된 후에도 국내에서는 판로가 형성되지 않았다. 매주 10톤 이상의 파프리카가 생산되지만 공급할 곳이 없고 저장성이 약한 농산물인 관계로 생산되는 양의 대부분을 버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사실은 안 조기심 대표는 더 이상 방관 할 수 없어 5톤가량의 저온차량에 파프리카를 싣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경매시장을 돌아 다녔지만 국내시장에 생소한 파프리카를 살사람은 흔치 않았다. 또한 가격도 피망보다 낮아 국내시장에서는 더 이상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인식한 조 대표는 일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의류업 관계로 일본을 자주 다니던 터라 다른 분야의 사업이지만 유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꼼꼼히 시장조사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여 일본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일본 주부들이 선호하는 농산물로 인정
일본으로 방향을 선정하였다고 해서 어려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농산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은 지금 우리가 중국산 농산물을 보는 견해처럼 인분으로 농사를 지은 저질품이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어서 한국 농산물을 구매하려는 생각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조기심 대표는 일본인들의 그러한 사고방식 에는 그간 일본에 농산물을 수출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수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편의에 의해 수출한 것이 대부분이라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게끔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깔끔하고 정교한 제품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춰 좋은 품질의 상품을 깔끔한 포장에 넣어 판매를 하면 일본인들도 구매를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여러 곳을 조사하여 다닌 결과 일본의 수출업체들의 문의가 쇄도 하였고 조대표의 바램대로 파프리카는 일본으로 수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수출 한 한국의 파프리카가 제 아무리 A등급의 제품일지라도 일본 수출업체가 B등급을 측정하여 수입업자에게 공급하는 불합리성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안 조 대표는 일본의 수입업자에게 직접 찾아가 직거래 방식을 요구 하였지만 제품을 믿지 않고 중간 상인들만 믿는 수입업자는 조대표의 제안을 거절하였고 자신의 제품의 우수성을 알기에 자존심이 상한 조 대표도 공급을 중단하였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 말처럼 조대표가 생산한 파프리카의 우수성을 알고 있던 다른 업체에서 연락이 와 조대표의 희망대로 직거래를 하게 되어 우리농산의 파프리카 대일 수출은 활기를 찾게 되었다. 이후 조 대표는 지속적인 파프리카 수출을 위해 시장에만 공급하던 방식을 대형 마트로 바꾸었다. 대형마트는 년 간 가격이 미리 측정되어 아무리 시장 가격이 오르더라도 항상 일정한 가격으로 공급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어 파프리카 농가들의 반박이 있을 수 있었으나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 한국의 파프리카는 일본 주부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농산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0년의 세월동안 고품질의 상품을 마트 측에서 원하는 대로 공급한 결과 오늘날 같이 파프리카가 과잉 공급되는 현실에서도 농산무역의 파프리카를 우선 취급하여 그동안 기울인 조대표의 노력에 신뢰를 보여주었다.
시설투자로 중국시장 선점이 우선
현재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의 규모는 년 간 1억만 불로 한국 파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율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 생산설비를 확충하여 생산량을 증가시켜야 하지만 생산설비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만만치 않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 농촌이 많이 어렵다. 정부는 시설원예에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한다. 과거 시설원예에 대한 검증이 전혀 없던 시절 투자를 하여 큰 실패를 봤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와 같이 검증이 다 끝난 시점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만 한다. 이제 우리나라는 노지 재배는 중국에 밀려 경쟁력이 없다. 하지만 고급 농산물의 재배는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농촌의 고령화가 너무나 빨리 진행되어 농촌에 젊은 사람이 없고 중국도 가파른 산업경제 성장에 의해 젊은 사람들이 다 도시로 떠난 상황이라 고급농산물 재배를 생각도 못한다. 중국 전체 인구 중 잘사는 사람의 비율이 10%라고 할 때 그들의 수는 1억2천만 명이 넘는다. 일본과 같은 또 하나의 시장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빨리 인식하여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시장을 먼저 선점 해야지 나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라며 역설 하였다.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보다 신뢰입니다. 그것이 전제가 되고 나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항상 직원들에게 이점을 강조한다”는 조 대표를 보며 세계적으로 뉴질랜드의 키위를 가장 인정하는 것처럼 농산무역의 파프리카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날이 머지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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