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 없는 회사, 거북이의 성실과 우직함이 명품 만들어
서울 독산동 소재의 ‘(주)아름다운사람’은 LG패션, SK, 세계물산 등 국내 유명 신사복 브랜드의 OEM납품과 자체 맞춤복 브랜드인 LDM(린드만)을 운영 중으로 올해 예상 매출액이 80억 원인 신사복 전문제조 중소기업이다. 이곳엔 직원 수 200여 명 중에 장애인 근로자가 80명이나 된다. 청각, 지적, 지체, 정신장애 등 장애 유형도 다양하다. 그들은 생산의 각 분야뿐 아니라 사무관리 분야에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자와 함께 생산현장으로 향하는 복도에서 지나가던 앳된 직원 하나가 김창환 대표(55)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자 김 대표는 스스럼없이 손을 마주치며 지나쳤다. 전체적으로 환한 생산현장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높은 집중도를 보이는 직원들의 모습에 더해져 봉제업은 열악한 환경이라는 편견이 무색해졌다. 이어 김 대표의 생산 현장을 돌아보며 체크하는 모습에서 남다른 느낌이 전해졌다. 이전 작업 물량 중에 불량이 있었는지 담당 직원을 질책하는 김 대표의 모습에서는 큰 형이 동생을 꾸짖듯, 아버지가 아들을 나무라듯 애정이 묻어났다. 한 직원은 김 대표를 보자 금세 밝은 낯빛이 되어 말 대신 미소를 던진다. 농아였다.
그리고 품질관리과장으로 소개받은 청각장애인 양명률 씨는 김 대표를 보자 다짜고짜 만들어진 바짓단을 이리저리 가리키며 손가락과 얼굴 표정으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제품이 불량이라는 제스처인 듯했다. 김 대표는 그와 손가락으로 단어를 써가며 의사소통했다. 이래서야 언제 해답이 나올지 의아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마자 양 과장과 김 대표 사이에서는 이미 결정이 난 듯했다. 서로 간에 말없이 작은 제스처와 손글씨, 눈치로 의사소통 되는 게 신기했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상호 신뢰가 쌓여왔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들, 딸 같은 젊은 직원들에게는 정말 아버지 같은 마음이 든다는 김 대표. 단순 반복 작업에 온통 몰두하느라 사장이 옆에 온지도 모르는 한 직원을 지긋이 바라보던 김 대표. 맞은편에서 같은 작업을 수행 중인 일반 직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작업 속도의 이 여직원 또한 장애인이었다. 잠시 후 그는 발길을 돌리며 “저 친구 얼마나 정성스럽게 일하는지 보셨죠?”라며 기자에게 운을 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임금 차에 대해 묻자 그는 “저희는 임금에 차별을 두지 않아요”라며 그의 경영 철학을 이어갔다.

국무총리의 트위터로 재조명된 명품 신사복
지난 4월 김황식 국무총리가 장애인표준사업장 A신사복 제조업체에서 25만 원짜리 양복을 맞췄다고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됐었다. 고품질의 값싼 신사복을 출시하고 있는 ‘아름다운사람’도 사업 초반에는 인력난으로 사업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때 2003년 입사한 청각장애인 유재원씨와의 만남이 새로운 물꼬가 되었다. 당시 인력난에 시달리던 때라 작업능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유씨를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걱정이 기우였을 정도로 일을 잘하고 성격도 좋았던 유씨에게 김 대표는 친구 맺기를 제의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면서 김 대표는 유씨와 함께 농아학교, 청음회관 등을 다니며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게 됐다. 차츰 소문이 나서 장애인들이 회사를 찾아들었다. 물론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채용하는 건 아니다. 장애인이지만 비장애인 못지않게 일할 수 있다는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는 김 대표다.
그러나 인력난을 메우기 위한 장애인 고용의 문제점이 기존 일반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작업능률 차이, 의사소통 문제보다도 장애인을 바라보는 편견의 높은 벽이 문제였다.
“현장에서 일반 관리자와 장애인 직원이 제품의 품질 문제로 다툰 적이 있었어요. 우연히 제가 그 상황을 뒤에서 다 보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당시 관리자가 장애인에게 편견을 드러내며 직원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어 관리자를 해고하게 됐어요.”
김 대표는 이렇듯 내부의 편견과 장애인들이 만드는 옷이 품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외부의 편견과 싸워왔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김 대표는 2008년 ‘장애인고용촉진 유공 석탑산업훈장’을 받고, 2010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 인증 받았다. 지난 4월 장애인 우수고용기업으로 선정돼 이명박 대통령이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기도 하였다.

진보도 보수도 아닌 양비론자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사회 현실참여보다 산업 역군으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장애인이나 약자에 대한 남다른 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우연한 상황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깨졌을 뿐이라고 가감 없이 말하는 그다. ‘누구든 장애와 맞닥뜨릴 수 있다’는 그의 말 속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학생의 보호자를 학부형이라고 하죠? 우리 회사에는 사(社)부형들이 있어요. 처음엔 장애를 가진 직원들의 보호자들이 찾아와서 잘 보살펴달라고 선물 비슷한 걸 주곤 했어요. 그래서 차라리 떡이나 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눠먹으라고 합니다.”
일반 회사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다. 현장에서 김 대표에게 보여준 직원들의 환한 미소와 친밀감은 이 회사를 ‘가족 같은 분위기, 출근하고 싶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의 경영 방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회사에 취업해 4대 보험에 등록되면 수급 자격이 박탈됩니다. 건강보험이 경제 취약계층에 중요한데, 기초생활수급자들도 눈치 안보고 취업해서 돈 벌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역설하는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산업현장에서 현실인식이 몸에 배인 산업 역군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