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여당에 ‘레임덕’ 비상이 걸렸다. 은진수, 김해수, 김두우, 신재민 등 소위 핵심 측근들이 비리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 반발조차 무릅쓰고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던 측근이라는 점에서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그간 “지금껏 부정한 돈을 받은 적 없고, 다른 정권과는 다르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지만 정작 측근들 비리는 관리하지 못한 모양이다.
잇따른 측근비리, 청와대와 여당은 패닉상태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김해수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검찰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SLS그룹 이국철 회장으로부터 9년에 걸쳐 10억여 원의 금품과 편의를 제공받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이를 신호탄으로 이명박 정권의 레임덕이 본격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야권은 국감정국을 십분 활용해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현 정권의 측근비리를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월23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확대간부회의 잘에서 “정권 핵심에서부터 시작된 부패 쓰나미가 국민의 아픈 가슴을 강타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권력형 비리 진상조사 특위를 구성해 정권의 말기적 비리에 대해 엄정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10.26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거의 패닉상태에 빠진 형국이다. 특히 9월23일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최고위원 측은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힘이 빠진다며, 우려섞인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유독 비리척결을 강조해 왔다. 교육, 토착, 권력 등 이른바 ‘3대 비리’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던 것이다. 이는 집권 후반기 국정기조로 제시한 ‘공정사회 공생발전’을 위한 실천과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 측근인 김두우 홍보수석마저 부산저축은행 로비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사퇴함에 따라 이 대통령이 줄기차게 강조해온 비리척결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말았다. 이는 정권의 임기 말에 나타나는 레임덕, 즉 권력누수 현상의 전형적인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수석이 검찰조사를 앞두고 사퇴한 직후 이 대통령의 사촌형인 이모 씨와 그의 아들 두 명이 피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 이권사업 투자명목으로 3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써 이 대통령이 자신했던 친인척 관리마저 실패한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MB정부 레임덕 이미 시작됐나
일각에서는 측근비리가 터져 나오기 전부터 이미 청와대의 레임덕 현상이 시작됐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지난 9월7일 이른바 ‘MB노믹스’를 상징하는 현 정부의 대표적 경제정책인 감세 기조를 접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여당의 거센 요구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배경을 밝혀다. 이는 사실상 임기말 정책주도 권이 청와대에서 여당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그동안 추가 감세 철회를 요구하는 한나라당에 타협안을 제시하면서도 감세 기조만은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추가 감세의 적용 시점을 내년에서 다시 한두 해 정도 늦추거나, 일부만 감세하고 나머지는 뒤로 미루자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타협안이었다.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8월19일 기자간담회에서 “감세는 국민과 약속한 것이고 외국인 투자를 위해 법인세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며 감세 정책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한 바 있다. 이 대통령도 “감세 기조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임 실장은 전했다.
하지만 이날 당정청 협의에서는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과표구간의 추가 감세를 완전히 철회하자는 데 합의하면서 현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 기조를 완전히 접었다. 이에 임태희 실장은 “감세 기조를 유지하는 대신 감세의 속도가 지금보다 줄어든 것이다. 감세 혜택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도록 조정한 것”이라며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최근 총리실 주재 회의들이 부쩍 늘어난 점 또한 레임덕의 한 부분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추진해 왔던 핵심 정책인 ‘저탄소 녹색성장’, ‘공정사회’ 등에 대한 성과점검을 총리실이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들은 그동안 대통령이 직접 챙겨온 것들이라는 점에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뒤처리를 하고 있다는 푸념이 흘러나오고 있다. 집권 초기와 중반까지는 청와대 주도로 강하게 추진하다가 후반기 추진동력이 떨어지자 총리실에다 ‘성과 극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총리실 한 관계자는 “총리실이 담당하지 않았던 분야를 포함해 각종 점검회의가 급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현 정부의 대표적인 공적이라 할 수 있는 자원외교 분야에서도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4억달러(4400억 원)를 들여 투자한 이라크 북부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2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방한한 니제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와 합의하고 그해 6월 본계약이 체결된 쿠르드 원유개발사업이 원점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당시 확보 원유량이 우리나라 2년치 소비량인 19억 배럴이라는 발표가 나오는 등 대대적 홍보가 이뤄진 바 있다. 이에 한국석유공사가 투자비 약 4억 달러를 들여 추진해 탐사를 했지만 사업성이 없다는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레임덕은 없다” MB의 마이웨이
지난 9월8일 저녁 청와대 상춘재 앞뜰에서 80분간 열린 ‘추석맞이 특별기획-이명박 대통령에게 듣는다’ 대담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레임덕 주장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지금 시대의 대통령은 레임덕이라고 해서 소홀히 하고 그럴 수 없다”면서 “레임덕에 연연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여야 갈등과 관련, 국회에서 충돌하면 영남과 호남의 충돌하는 것”이라면서 “호남에서도 여당이 나오고, 영남에서도 야당이 나와야 원활한 대화채널이 된다”고 제시, 정치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심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추석 직후 터진 사상초유의 정전대란과 이명박 대통령 측근이 연루된 저축은행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국정운영의 최고사령탑인 청와대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나날이 싸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16일 이 대통령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공사를 전격 방문해 “이런 실수는 국민들에게 정부가 고개를 들 수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악화된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이에 야당은 9월19일부터 시작된 국정감사에서 현 정부의 국정실패로 민생이 악화됐다는 점과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