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더블딥(이중침체), 유럽 금융위기로 국내 증시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지난 9월23일 코스피지수가 100포인트 넘게 하락하면서 1700선이 붕괴, ‘검은 금요일’이 다시 연출 됐다. 코스피지수는 19일부터 23일까지 한 주간 7% 넘게 빠졌다. 증권 전문가들은 “아직 패닉 상태까진 아니다”라고 내다보지만 증시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코스피 1700선 붕괴, 글로벌 악재에 증시패닉
‘10월 위기설’을 예고하듯 24일 코스피는 1년 2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103.1포인트(5.73%) 하락해 1697.44에 마감했다. 지난해 7월7일 1675.65 이후 최저 수준이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은 이날 대폭락의 원인에 대해 “미국 문제 30%, 유럽문제 70%”라며 “그리스에서 출발한 재정위기가 스페인, 이탈리아로 확산되고 다시 은행으로 전이된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리서치센터장도 “그동안 유럽, 미국에서 굵직한 회의가 많았지만 여기서 나온 대책들이 별로 신통치가 않았던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코스피에서 13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하는 등 832개 종목이 하락했다. 철강금속이 약 14%, 은행이 약 13%, 비금속광물이 약 11% 하락했고 나머지 업종들도 모두 하락했다. 기간과 개인이 각각 2,133억 원, 1조 1,120억 원을 사들였지만 외국인이 8,672억 원을 내다팔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미국계 자금은 지난 달 국내 증시에서 1조 2,918억 원 어치를 순매도했으나 9월 들어서는 21일까지 1,817억 원을 순매도하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러나 22일 1,020억 원을 순매도해 전체 외국인 순매도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특히 원화값 하락이 외국인 증시 이탈을 부추기는 연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발행한 외화채권에 대한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도 2009년 5월 이후 최고치로 상승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원화 값이 급격하게 하락하며 손실이 커지자 손절매 차원에서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럽금융위기, 세계 금융시장 패닉 가져와
국내 증시에 ‘검은 금요일’이 드리운 건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 대한 실망감에서 시작됐다.
그리스 디폴트 우려감이 지속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FOMC 기대감이 지속되며 코스피지수가 주 초반 1850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FOMC 회의 결과에 대한 실망감과 미국과 이탈리아 은행의 신용등급이 강등, 진앙인 그리스 은행의 신용등급 하락이 겹쳐지면서 코스피지수가 하락세로 돌아섰고 환율은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9월22일(현지시각) 뉴욕증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부양책으로 내놓은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조치는 시장에서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시장에서는 4,000억 달러 규모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조치는 9%를 웃도는 미국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그 결과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51% 급락하며 연중 최저점을 경신했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3.19% 떨어졌다. 변동성지수는(VIX)는 11%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고용 시장의 침체와 경제 성장 둔화 상황을 토로했고, 미 연준은 “미국 경제 전망에 상당한 하방 리스크가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상당한 긴장이 있다”며 어두운 향후 전망을 제시한 것도 불안을 증식시켰다.
또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선진국 금융 기관의 신용 등급을 잇따라 강등하고 있고 중국 등 신흥국 경제도 아직 뚜렷한 경제 성장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 둔화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 유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다시 고개 든 ‘10월 위기설’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막기 위해 필요한 추가 자금 지원 여부가 10월 중 결정될 전망인 가운데 유럽 정상들이 사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했다는 실망감이 유럽 은행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우려를 부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일부 유럽 은행들이 이미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급기야 지난 9월21일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의 ‘큰손’들이 서둘러 예금을 인출하는 ‘뱅크런(Bank Run)’ 상황까지 발생했다. 은행 측이 파산을 피하고자 중동 투자자에게 자금을 빌리려한다는 소문도 번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1면에 “BNP가 중동에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 시장 일각에서는 9월 이탈리아의 국채 만기와 9월20~21일 FOMC회의를 넘기면 10월부터는 글로벌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을 기대했다. 하지만 오히려 FOMC가 수면 아래 잠복했던 ‘10월 위기설’을 현실화 시키는 발화점이 돼버렸다.
지난 8월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에 퍼졌던 10월 위기설의 핵심은 유럽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공조가 실패함에 따라 그리스 국가부도가 확정되고,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 수단도 밑천을 드러내면서 본격적인 위기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추측이었다. 이 시점이 바로 10월이 될 것이라는 것. 이 같은 예상은 역시 비껴가질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금융시장의 공포감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독일이 그리스를 지원하고 중국이 그리스 국채를 사준다면 부도를 피할 수 있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관론이 더 우세한 상황이다. 그리스 2년물 국채 금리가 이미 70%를 넘어 이미 심각한 정크로 취급되고 네덜란드 금융회사는 그리스 부도 확률이 98%에 달한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실제로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유럽 채무위기가 시장 상황을 계속 어둡게 만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유럽은행들이 채무위기국 채권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고, 이 때문에 유럽은행들이 무너질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IMF “세계경제 위기 타개 공동 대응”
한편, 지난 9월24일 국제통화기금(IMF) 187개 회원국들은 최근 전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단호한 행동에 함께 나서기로 합의했다.
IMF는 이날 워싱턴D.C.에서 폐막한 연차총회 공동성명을 통해 “세계 경제가 ‘위험한 국면(a dangerous phase)’에 진입했다”고 진단한 뒤 “이는 특별한 주의와 조율, 대담한 행동을 위한 준비를 요구한다”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특히 최근 유럽 재정위기를 언급, 선진국 중 유럽 국가들에 대해선 “재정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이와 관련해 지난 7월 유럽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기능 확충 등을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최근 전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으로 몰아넣은 그리스 등 유럽발(發) 재정위기와 미 경기침체 등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성명은 선진국 경제와 관련, “각자 다른 국가적 환경을 감안해 신뢰구축, 성장지원, 명확하고 신뢰 있고 구체적인 재정공고화 조치 등의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