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경축사 발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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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경축사 발언 논란
  • 글/편집국
  • 승인 2005.09.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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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권력 남용 범죄 공소시효 배제’ 발언
노무현 대통령이 8.15경축사에서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조정하고, 피해자 재심을 가능토록 법을 제정하자고 밝힌 데 대해 여야간 법리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형벌불소급 원칙을 들어 위원소지를 제기하고, ‘야당 죽이기’에 정략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하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위헌적 발상” VS “진상규명해야” 정치권 논란 가열
노무현 대통령은 8월 15일 "국가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인권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 범죄에 대해서는, 그리고 이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의 배상과 보상에 대해서는 민.형사 시효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적절하게 조정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광화문 앞 광장에서 열린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식의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더 이상 국가권력을 남용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 놓고 나 몰라라 하고 심지어 큰소리까지 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반인권 범죄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거나 조정하는 입법이 추진될 경우 개별 법에 일일이 규정돼 있는 민.형사상의 공소시효와 충돌하거나 소급입법 논란이 일어날 전망이다. 그는 또 "국민에 대한 국가기관의 불법 행위로 국가의 도덕성과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며 "국가는 스스로 앞장서서 진상을 밝히고 사과하고, 배상이나 보상의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은 "올 연말에 출범할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타당성 있고 형평에 맞는 기준을 제시할 것을 기대한다"며 "그러나 그로써도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완하는 법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법을 할 경우, 확정판결에 대해서도 보다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토록 해 억울한 피해자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 "피해 당하고 고통 받은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여 진정한 화해를 이루려면 먼저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과.배상 또는 보상, 그리고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 계류 중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이 나라와 민족을 팔아 치부한 재산을 그 후손이 누리는 역사의 부조리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국가범죄 시효 배제 입법 제안'의 적용 범위에 대해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과거사정리기본법은 대상을 해방 이후부터 권위주의 시대까지 사건으로 명시하고 있어 이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안기부.국정원의 불법 도청 등) 기본적으로 과거에 저질러진 국가권력에 의한 피해 부분은 '5.18 광주 특별법'처럼 법제화해 적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며,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즉시 "헌법 수호 책임자인 대통령이 헌법.법률 체계를 소급입법으로 무너뜨리고 국회를 무력화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참고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살인·내란죄를 처벌하기 위해 이들의 재임기간을 공소시효에서 배제한 5·18 특별법의 경우 1996년 2월 합헌 결정을 받았지만, 당시 헌재재판관 9명 중 위 헌정족수 6명에 불과 1명 미달하는 5명이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

발언의 배경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낮 12시쯤에야 자신이 쓴 광복절 경축사 초안을 참모들에게 건넸다.
일요일이었음에도 참모들은 대기 상태였다. 관련 수석비서관들이 독회를 했지만 별다른 수정은 없었다. 노 대통령의 초고가 거의 최종본이 됐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당초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단일 주제로 쓰겠다"고 예고했다. 참모들에게 "광복절은 나라를 찾은 기쁜 날이지만 이번에는 기쁘다고 기념만 하지 말고 왜 나라를 빼앗기게 됐는지 망국의 요인을 한 번 성찰해 보는 계기로 삼자"고 말했다는 전언이다. 여러 부처에서 경제.남북관계에 대한 연설문 참고자료가 올라갔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구체 현안은 다른 기회에 얘기하도록 하자"고 했다. 여름휴가 내내 고심한 끝에 노 대통령이 택한 화두는 '분열의 역사 치유'였다. 이달 초 휴가 기간 중 노 대통령은 영.정조 시대의 역사와 구한말 망국의 역사를 기술한 역사책을 여러 권 읽었다고 한다.
경축사에서도 그는 "우리가 식민지가 된 근본원인은 당시의 제국주의 질서 때문이었지만, 우리 내부에 이를 이겨낼 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나라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편을 갈라 싸우느라 힘을 모을 수가 없었고 지배세력은 배타적.독선적 사상체계에 매몰되어 새로운 사상을 배척한 때문"이라며 망국의 이유를 분열의 역사에서 찾았다. 노 대통령은 특히 "또다시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이 분열.갈등의 원인과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그 시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정리와 청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날 과거사 청산의 해법을 조목조목 제안한 배경이다.

한나라당 “위헌적 발상”

한나라당 맹형규 정책위 의장은 16일 오전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확정판결이 난 사안을 사후에 변경하려는 것은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맹 의장은 또 “대상을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로까지 지나치게 넓게 잡은 것은 수많은 사건들 중에서 인위적, 정략적으로 골라서 악용하려는 발상이 아닌가”라며 의혹을 제기하며, “국제사회에서 시효를 배제하는 경우는 대량학살 같은 중대한 경우에만 국한된다”고 말했다.
김기춘 여의도연구소 소장도 “노 대통령이 시효를 없애거나 소급을 하겠다는 것은 국민들의 법적 생활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국가권력의 효율성만을 생각한다면 가장 극심한 범죄인 살인범도 평생을 쫓아다녀야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살인과 같은 중대한 범죄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지만 사회에도 절반의 책임이 있으며, 사회의 책임과 수많은 사례를 통해 살인에 대해 15년이라는 공소시효를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나치 독일이 국가 정책으로 유태인 인종을 말살하기 위한 학살 같은 것은 예외로 국제사회가 인정하지만, 그 밖의 국가범죄는 결국 공무원 개인의 범죄로 귀착된다”며 “공무원이나 국민 개개인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무시하는 것은 국민의 법적 생활안정을 해치고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윤석 법률지원단장은 “1998년 로마규정에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범죄로 집단살해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4가지 유형이 발표됐다”면서 “노 대통령이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이 가운데 어느 항에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장 단장은 “반인도적 범죄도 국가가 민간인을 대량 광범위하게, 체계적으로 공격해서 살해했을 경우를 말한다”고 설명하며, “노 대통령은 위헌적인 발언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소시효 연장안’ 잇달아 추진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하거나 소송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 사례가 상당히 있다”면서 “과거사를 제대로 규명하는 데 부족한 점이 있으면 그것을 바로잡자는 것이지 헌법을 위반하거나 법체계의 안정성을 해치자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열린우리당은 기존의 과거사정리기본법이나 친일반민족행위자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해 진실규명을 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과거사의 법적인 완전한 청산을 위해서는 배상 또는 보상, 법적 명예회복까지 완결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오영식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노 대통령의 제안은) 공소시효가 소멸된 경우까지 형사상의 책임을 묻자는 취지로 나가자는 것은 아니고, 현재 시효가 남아 있거나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소시효가 소멸된 경우라도 해당 사안이 국가권력 남용에 의해 인권침해나 기타 중대한 범법행위가 이뤄진 것으로, 국민적인 요청과 사회적 공론이 형성된다면 특별히 그에 대한 시효 배제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당내 분위기에 힘입어 열린우리당이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잇따라 추진하고 나섰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국가권력 남용 범죄의 시효 배제’ 제안과 맥이 닿아 있는 움직임이다. 문병호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10명은 17일 모든 범죄의 공소시효를 일괄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뼈대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개정안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현재 15년에서 20년으로, 무기징역이나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를 10년에서 15년으로 각각 5년씩 늘리도록 했다.
이와 함께 공소가 제기된 이후 15년이 지나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간주하던 것을 20년이 지나야 공소시효가 완성되도록 했다. 문 의원은 “공소시효 제도의 본래 취지는 시간 경과에 따른 증거의 멸실로 공정한 재판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이제는 과학적인 수사기법의 발달로 공소시효를 연장할 필요가 있다”며 “독일 등 외국도 우리나라보다 시효기간이 길고, 일본도 흉악범죄 예방 차원에서 공소시효 기간을 연장했다”고 밝혔다.
민병두 의원도 불법도청에 연루된 공직자의 재직기간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법제실에 심사를 의뢰 중이다. 민 의원은 “공직자가 현직에 있는 경우에는 국가기관의 도청행위가 공개되기 어렵고, 퇴직한 이후에는 도청행위가 드러나더라도 공소시효 소멸로 처벌이 어렵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앞서 이원영 의원이 지난달 11일 발의한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안’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과 고문 등의 행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하고 있다.
한편, 법무부가 지난해 4월 입법예고한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도 집단살해범죄, 반인도범죄, 전쟁범죄 등 국제적으로 중대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노·민주, '공소시효 배제'에 무게 더해

민주노동당 홍승하 대변인은 이날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권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철저히 은폐되는 권력집단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한다면 진상규명하고 처벌할 내용은 하나도 없다”며, 국가권력 남용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쪽에 무게를 더했다. 홍 대변인은 “지난 5.18특별법에서 공소시효라는 법체계보다 소중한 법치주의 원칙을 이끌어낸 바 있다”면서 “국제법상으로도 전쟁범죄나 반인도적 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배제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은 이날 대표단 회의에서 민사상 시효 배제는 찬성하지만, 형사의 경우 미래 사안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더라도 과거 사안에 대해서까지 소급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열린우리당 쪽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종필 대변인은 “노 대통령과 청와대, 열린우리당 등 여권 내부에서조차 입장통일이 안돼 우왕좌왕하고 있다”면서 “여권이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공소시효란

범죄를 저지른 후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검사의 공소권이 없어져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한 제도를 공소시효라 하며 형사소송법(327조)에 규정돼 있다. 제도의 목적은 범죄 발생 후 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겨난 사실관계를 존중해 법적 안정성을 꾀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관계자는 "만약 수십 년 지난 사건을 모두 다시 들춰내 수사를 하고 범인을 잡는다면 개인과 사회생활의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범죄자가 도피 중에 상당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도 감안된다. 개별 범죄의 공소시효는 형량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최단 1년~최장 15년까지 달라진다.
하지만 고문 경관 이근안씨 자수 사건 등을 계기로 국가 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 등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씨의 경우 10년간의 도피 끝에 1999년 자수해 혐의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처벌을 면했다. 다만 95년 제정된 5.18 특별법은 국민 법 감정을 고려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처벌을 위해 예외적으로 공소시효를 연장하기도 했다.
민사사건에서는 소멸시효가 적용된다. 권리를 가진 사람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도 일정 기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되는 것을 뜻한다. 일정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증거 자료가 없어져 참된 권리자를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생겨났다. 소멸시효 역시 공소시효처럼 권리의 종류에 따라 기간이 달라진다.



외국의 사례-프랑스, 독일 시효정지 입법
해외에서의 공소시효 배제는 대개 ‘부끄러운 과거’에서 연유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전범들에 대한 독일 국내법상 공소시효 완료를 한 해 앞둔 1968년 체결된 유엔협약은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시효를 배제했다.
독일 자체적으로는 1969년 모살죄(계획적인 살인)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30년으로 연장하는 입법을 하고,1979년 법개정으로 모살죄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죄형법정주의 위반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지만, 독일연방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 연장이 범죄행위의 불법내용에 대한 입법자의 평가와 형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웃 나라인 프랑스도 2차대전 중 나치에 부역한 사람들을 처벌하면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을 1964년 채택했다. 네덜란드 헌법은 전쟁중 일어난 범죄행위는 범죄를 저질렀을 때 위법하지 않더라도 죄형법정주의의 예외로 본다. 이 밖에도 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나치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내입법을 마련하는 추세다. 나치 전범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의 제·개정 움직임은 나라별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소급효 문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반면 구소련 몰락 후 동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국가범죄에 대한 시효정지 입법은 소급적용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1993년 체코는 ‘공산주의 체제의 불법성과 그에 대한 저항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은 공소시효와 관련해 정치적 이유로 처벌되지 않은 범죄자들에 대해 1948년부터 1989년까지 기간을 공소시효에 산입시키지 않도록 했다. 법률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 제도는 헌법상 보장된 인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일 후 독일 역시 동독의 통일사회당(SED)의 불법행위에 대해 1949년부터 1990년까지 공소시효를 정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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