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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복학해서 학교 워크숍 과제로 단편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마침 출연하기로 한 배우가 맹장이 터져 못 나오게 됐으니 나보고 대신 좀 와줄 수 있겠냐는 거였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임에는 분명했다.
‘그 놈이 아니라 내가!’
하지만 전화를 끊자 말자 예매한 표를 취소하고 소극장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한 뒤 늦게 출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내고 부랴부랴 낙산공원으로 향했다. 이름만 들어도 감개무량한 영화현장으로!
“부담 갖지 마. 너랑 어울리는 역이니까.”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행복의 나라로~ 잠시 후 영화현장에 도착 한 순간, 그만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친구를 비롯해 고작 모여 있는 사람이라고는 나 포함해서 다섯 명. 촬영장비라고는 16mm 필름 카메라 한 대.
게다가 여자 감독님으로부터 영화 내용과 내가 맡은 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참을 수 없는 곤란이 밀려왔다. 호흡곤란!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변태를 연기하라는 것이었다. 내가 입고 있는 옷도 잘 어울린다고 감독은 웃어 보였다.
아무 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있는 여학생의 얼굴을 보다가 나를 보며 더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 다시 한 번 호흡곤란!
하지만 난 성실하게 첫 경험을 완수했고 영화를 만든 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게 되었다. 워크숍 상영회에 참석해 몇몇 사람들 그것도 여자들부터 “연기 잘하던데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도 듣게 되었다. 엔딩 크렛딧에 오른 내 이름을 보고 가슴 벅찬 흥분도 느꼈다.
그 후 영화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참 많은 일들이 있기도 했다. 자신도 있었고 자만도 했다. 그러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도 줬고, 그 이상으로 내가 상처 받기도 했다. 결국 부끄러움만 가득한 삶을 끝내 보려고도 했었다. 그렇게 십여 년 가까운 삶을 살아내고 두 달 전 쯤 “끝까지 영화를 사랑하는 마니아로 살다 가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그 계기는 다름 아닌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본 후였다. 어쨌든 아침은 밝아오고 하루는 이어지게 마련이니까. 폐인이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영화광이든, 그 하루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었다.
이왕이면 그토록 꿈꾸던 영화광, 마니아로 살기로 했다. 삶은 살아가는 자의 의지가 핸들 역할을 한다. 자칫 그것을 놓치게 되면 벼랑끝으로 혹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쨌든 나는 잠시 놓쳤던 핸들을 다시 붙잡았고, 조금 남루하고 덜컹거리는 내 생의 자동차는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이 길 끝에 언젠가 만들게 될 내 영화와 배우들과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기다려라.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