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정관념의 틀로 부터의 해방
20여년간 섬유예술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구자홍 작가는 섬유라는 단순한 소재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섬유예술의 한계를 개척하는 그의 실험정신은 현대 섬유예술이 풀어야 할 기술적인 한계와 대안적 표현방식을 요구하는 순수미술의 두 영역에서 모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다양한 소재를 채택하고 이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모두 자기화하는 흡입력도 탁월하다. 또한 작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매체를 활용하는 등 표현의 영역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특히 섬유의 조밀성과 혼합성을 이용한 독특한 예술적 표현과 집합성의 반복 등으로 고도의 창조적인 기법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섬유에 관한한 그의 관심과 시도는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바쁜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다. 그는 현재 동아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는 모습에서 영원히 식지 않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이처럼 작가 구자홍은 아직도 자신의 새로운 시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으며 그 안에 내재된 감수성들은 다양한 소재와 함께 표현되어지고 있다. 그의 섬유예술은 계층을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다. 예술과 일상, 보편과 특수,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하나로 통합하는 비경계의 예술인 것이다. 그의 작품이 ‘입체감에서 느껴지는 서양적인 세계관과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느껴지는 동양적인 세계관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구자홍 작가는 “작품을 할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작품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이 제가 작품을 하는 이유, 앞으로도 계속 작품을 하게 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작품에 있어서는 어느 순간순간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힘을 쏟으려 합니다. 또한 표현하는데 있어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기법 연구 역시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섬유예술의 미래를 열다

최근 롯데갤러리 부산본점에서 ‘흔적 그 후’ 주제로 열린 초대전에서 금속 핀과 실이라는 일상의 소소한 오브제들을 이용하여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설치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특히 평면과 입체, 설치로서의 표현영역의 확장을 보여준다.
이때 사용한 재료들을 돌아보면, 실과 핀, 스티로폼 등으로 다양하며 이러한 재료들은 예술매체로 발효시켜내면서 작가는 물성과 이념을 하나로 아우르는 수준 높은 작품들이었다. 캔버스에 색이 잘 퍼지는 얇은 천을 덧대고 그 위에 다양한 색의 물감을 뿌리거나 불어 ‘오로라’의 느낌을 만들었다. 이어 구(球) 모양의 스티로폼에 매끄럽고 가는 색색의 견사를 촘촘히 돌려 감은 뒤 마지막으로 구(球)에 수십 수백 개의 핀을 박아 ‘오로라’ 그림 위에 붙여 작업을 완성했다.
이번 초대전은 일반적인 형태의 섬유예술 전시를 탈피한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섬유미술의 새로운 기법적 발전을 모색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 또 다른 가능성을 예견케 한다. 이제 작가는 미술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섬유예술로서 이룰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구체적인 작업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그는 기존의 표현방식만을 고수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해 추구하고 창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작가의식과 조형어법은 앞으로도 섬유예술 분야에서 늘 새로운 지평을 향해 열려 있을 것이며 그만큼 후학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사료된다.
묵묵히 작품활동에 매진해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구자홍 작가. 그는 단순히 보여지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꿈과 희망을 그리는 작가였다. 그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탐구성과 열정, 그리고 원숙한 삶의 연륜과 빼어난 표현력에서 볼 때, 앞으로도 또 어떠한 시도가 이어질지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가를 통해 앞으로 한국의 섬유예술은 그 지평을 부단히 확장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그로인해 섬유예술은 매체 특성에 충실하면서도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당당히 현대 미술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인해 우리나라 섬유예술이 세계 속의 섬유예술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