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이 되려면 돈에 대한 욕심부터 버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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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되려면 돈에 대한 욕심부터 버려야지요”
  • 취재_공동취재단
  • 승인 2011.07.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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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장인 백호정 대표, ‘명문 장수기업 상’ 수상

카네기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었다. 그는 굶주림을 포함한 온갖 삶의 역경을 이겨내고 희대의 거부(巨富)가 되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부유함을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이 후대에서 더욱 널리 빛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지킬 것도 많은지라 상대적으로 가지지 못한 사람들보다도 욕망이나 열정이 더욱 강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일종의 단단한 벽이 되기도 하는데, 그러한 욕망과 열정을 어떻게 뛰어넘는가가 거부와 졸부를 규정짓는 경계선이 되기도 한다.

꿈과 희망의 샘

기능성 신발전문 업체 선형상사를 이끌고 있는 백호정 대표의 삶은 카네기를 많이 닮았다. 많이 배우지 못한 지체장애인 아버지. 그는 구두를 만들어 질곡의 세월을 이겨냈다고 했다. 백 대표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지극히 애틋해 보였다.

“온통 부정적인 여건 속에서 긍정을 찾아낼 줄 아시는 분이었지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제가 가장 존경하는 형님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세찬 세상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저를 이렇게 키워내셨습니다. 그 두 분은 제 인생에서 끊임없이 꿈과 희망을 길어 올리게 하는 샘과도 같습니다.”
백 대표의 어투는 공손했고,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는 겸손함이 스며있었다. 포장과 과장이 미덕인 시대에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귀인의 풍모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시간에 만들어지거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몸으로 부딪혀 녹여낸 세월에서 배어나오는 자연스러움이었다.

“혼자서 기업을 일으키신 모든 분들이 다 각자의 어려움과 힘든 세월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시련과 과정들이 있었지만, 좋은 약이라 느끼며 견뎌냈습니다. 그저 향후 사회를 통해 신발부분에 대하여 번 모든 수익을 그간에 힘들게 신발을 신었던 소외계층의 어려운 지체장애우들 에게 유형적·무형적 자산을 영원히 공유 할 수 있도록 비영리 단체에 환원하고 싶습니다.”
지체장애인의 아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사회 환원을 꿈꾸지 않는다. 유년시절 가난과 역경을 겪은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가진 피해의식과 보상심리로 인해 부에 대한 무분별한 갈망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백 대표가 소외계층을 위한 환원을 착실하고 반듯하게 실천하고 있다는 점은 그냥 보아 넘길 만한 대목이 아니다.
표심을 얻기 위해 온갖 포퓰리즘 복지정책이 난무하는 현 정치판과 비교해 봐도 그 어떤 정치인보다 알차고 야무진 복지사회를 백 대표 개인이 묵묵하게 이뤄나가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참 장인(匠人)을 위하여

보다 많은 것을 나누기 위해 보다 깊은 마음과 기술력을 가진 장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백호정 대표. 그의 갈망에 미소를 지었던 것은 그만이 풍길 수 있는 풋풋하고 맑은 순수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장인의 가장 큰 요소는 금전적 욕심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게 그러하듯, 돈을 보고 일을 하면 장사꾼처럼 되든가, 어떠한 외압 내지는 구설에 휘말려 본연의 자신의 일을 못하게 됩니다. 잘 안되겠지만 물질적 이익을 먼저 계산한다면 장인이라 할 수 없겠지요.”
그는 매사에 열심히 임하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뛰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돈이 따라온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 그가 이뤄낸 것 또한 그런 과정을 밟아 왔다. 그만큼 백 대표 자신의 정신적인 신념과 의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런 백 대표에게도 시련과 담금질의 시간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기업경영을 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이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려운 과정을 거치며 보다 튼실하고 큰 기업을 일구게 되기 마련이다.
그 고뇌와 시련의 시간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게 세상의 논리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선형상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신산스러웠던 시간을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보건당국의 탁상행정 탓에 부도덕한 장애인 신발 제작업체가 난립해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좀 더 세밀한 규정을 적용해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죠. 금전적 손실보다는 그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이의 제기하기 위해 관련부서를 직접 방문했으나, 아무도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그는 가슴을 치며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터져 나오는 울음이 아니라, 속에서 멍울지는 억울함이요, 안타까움이었다.
선형상사가 가진 최고의 기술을 지체장애인들에게 다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그런 현실은 아직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이다. 백 대표는 이번 인터뷰에 응하면서 부디 보건당국의 전형적인 정책변화를 촉구했다. 이는 사업가로서의 요구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슴으로 신발을 만드는 장인의 안타까움이었고, 지체장애를 가진 가족을 둔 한 사나이의 절규이기도 했다.
“부디 공무원들께서 현장과 좀 더 가까워지길 소망합니다. 현장실사를 강화해 탁상행정을 바로잡고 어려운 여건에서 생활하는 지체장애인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약한 사람들이 잘 살 때 아름다운 나라가 만들어지며, 신뢰받는 공무원의 풍토가 이뤄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카네기

선형상사 공장에는 지체장애를 가진 2명의 50대 기능인이 성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그는 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회사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승계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제자양성’이라는 말이 너무 거창하다며 정중하게 사양했다. 사람을 생각하고,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기업인이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그렇다고 덧붙였다.
한 명의 브레인이 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 우리에게 선형상사와 백호정 대표가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지도 모르겠지만, 카네기보다 위대한 거부의 이름을 후대에 물려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백호정 대표, 그가 가진 것이 바로 세상과 사람을 향한 뜨겁고 단단한 마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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