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아침
공교육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시대다. 이는 과거 오랫동안 이어졌던 암기, 주입 위주의 교육방식 탓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학력고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변화하고, 몇 차례에 걸쳐 교육과정이 전면 개편된 후 창의적 인재양성이라는 구호가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오랜 병폐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각종 사교육이 만연하고 족집게 과외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학생들에게 있어서 학습의 의미는 스스로 생각하고 상상하기가 아니라, 외운 것을 기억해내는 것에 머물러 있다. 이런 여건 속에서 학생들이 배움의 즐거움과 독서의 설렘을 느낄 리 만무하다. 공부는 여전히 내신, 대학진학, 취업 등 각종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열심히 외웠으나, 정작 그것을 활용할 줄 모르는 기억력 좋은 ‘무뚝뚝한 지식인’으로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답게 많은 학생들이 외국의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그러나 우수한 영어실력과 입학성적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현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 하차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 기이한 현상 또한 어렵지 않게 풀이할 수 있다. 결국 자기주도 학습, 창의적 사고능력과 상상력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들의 탓도,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탓도 아니다. 오랜 관행이 낳은 안타까운 현실일 뿐이다.
국토의 정중앙. 맑고 깨끗한 땅 강원도 양구에 펼쳐진 비봉산. 그 수려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비봉초등학교(http://esbibong.kwyged.go.kr/이갑창 교장/이하 비봉초)의 아침은 다르다.
“우리학교는 매일 아침 8시30분 무렵 신문과 책 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일찍 등교한 어린이들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저마다 관심 있는 책과 신문을 찾아 편한 자리에 앉아 신문읽기와 독서활동에 빠져 듭니다.”
이갑창 교장이 이야기하는 비봉초의 아침은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풍경’이었다. 비봉초는 신문 활용 교육을 중심으로 아침활동, 재량활동, 교과활동과의 연계를 통해 신문을 활용한 논술교육을 통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꾸준하고 창의적인 활동 덕분에 ‘신문으로 생각하는 논술비타민’이 2009년 강원도교육청 으뜸브랜드로 선정되었고, 2010년에도 도교육청 장수브랜드로 선정되었으며, 강원 NIE대회에서 단체 대상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의 e-NIE 실천사례 부문 최우수 단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짜 주목할 만 한 점은 학교 안에서 불고 있는 조용하면서도 힘찬 변화의 바람이다.
“우리학교 어린이들이 이렇게 신문을 읽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전교생이 모두 신문 활용 일기를 쓰고 있으며, 관심 있는 기사는 일일이 스크랩하여 자신의 의견을 적어 각 학급별로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보관하고, 이러한 활동들이 곧 글쓰기와 논술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교장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모든 것이 어떠한 강요 없이 학생들 스스로 참여하고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기 위에 쌓아 가는 글로벌 리더십

“공부하기 좋은 학교 만들기를 최우선으로 정중앙 학력-UP 프로젝트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예방-진단-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학력 향상에 주력하고 있지요.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공부가 즐겁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지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교사들의 남다른 애정과 열정도 큰 몫을 해내고 있다. 기초학력 확보를 위한 특별보충과정인 「비봉 학력 오름길 교실」 운영으로 기초학습 부진 학생들을 지도하고, 담임교사 기본학력책임제를 실천하여 6학년 국가학업성취도평가에서 3년 연속 ‘전 과목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제로’라는 쾌거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보육교실과 종일돌봄교실을 운영하여 교육적 환경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과 보충 학습과 과제학습 지도를 통해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시키는 데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비봉초의 저력은 기존의 틀과 관념에서 벗어나 색다른 도전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교내 영어체험교실에서 2명의 원어민 교사 및 영어회화 교사와 함께하는 다양한 영어 학습이 그러하고, EBSe를 활용한 아침 영어방송 시청, 영어동화(storytelling), 영어드라마 만들기 등 이색적인 프로그램들이 바로 그 산물이다. 또 ‘함께 떠나는 세계 여행’의 다문화 체험 행사 및 다문화 연극 관람, 다문화 가정의 친구들과 사랑의 고리 맺기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 활동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연 4회 토요일 전일제로 실시되는 ‘사제동행 투지다지기 체험’은 고장의 명소를 찾아 녹색성장 환경 사랑을 실천함은 물론 어린이들의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어 학부모 및 지역사회의 좋은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은 오롯이 비봉초 학생들이 참다운 글로벌 리더로 자라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학교와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모님들의 공교육에 대한 신뢰의 힘이 컸습니다. 우리학교는 일주일간의 교육 활동과 교육정보가 담겨진 ‘비봉주간교육’ 소식지를 연 38회 발행하여 부모님들과 교육공동체의 구심점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비봉보건소식지도 수시로 발간하여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고 있지요.”
그야말로 학교, 학생, 가정의 3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그 흥겨운 박자가 비봉초 학생들의 가슴에 하얀 종이를 만들어 주었고, 학생들이 자랄수록 그것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부족한 것은 열정으로 채울 수 있다’는 이 교장의 신념이 학교교육에 녹아들어 온갖 틀과 관행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아이들이 그들 본연의 일이라 할 수 있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꿈꾸고 배우는 일’에 열정을 다해 마음껏 힘을 쏟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