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체납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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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체납과의 전쟁
  • 글/ 신혜영 기자
  • 승인 2005.08.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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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체납자들은 모두 당당한 탈세를 하고 있다
지난해 국세 체납액 4조원 육박…
사상 최대치, 탈세를 위해서라면 이혼도 가능

헌법 제 38조를 보면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세금내는 사람이 바보일 정도로 우리 사회의 체납실태는 그야말로 요지경속이다. 체납자들은 어마어마한 금액의 세금을 체납하고도 교묘한 방법으로 납세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주민세 6,300원마저도 아까워 내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국민의 권리를 저버린 그들이 과연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고액 체납자의 비양심적인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같이 제기되고 있다.



작년 국세 체납 4조원…사상 최대
세금은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방과 치안을 유지하고 도로·철도·항만·공항 등의 사회간접시설 건설과 교육, 환경, 사회복지 등 수많은 곳에 쓰여지고 있다. 이처럼 세금은 국가를 유지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총 체납액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5월 19일 국세청이 발표한 '연도별 국세체납액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부가가치세 등의 국세 체납액은 3조9,724억원으로 4조원대에 육박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보다 5,239억원이나 많은 액수다. 국세 체납액은 1999년 3조4,485억원을 기록한 뒤 2000년 3조1,291억원, 2001년 2조8,775억원으로 줄어들었다가 2002년 2조8,8851억원, 2003년 2조9,171억 원 등 증가세로 반전했다.
국세 체납액은 각종 세금 신고기한 직후 발생한 '총 체납액'에서 국세청이 나중에 징수한 세금과 결손처분액 등을 제외한 실제 체납액을 말한다. 총 체납액 역시 99년 12조7,065억원에서 지난해에는 18조6,230억원으로 급증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경기 상황이 지속적으로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체납액이 외환위기 때 보다도 많아졌다"며 "국세청은 적극적인 추징 등을 통해 역대 최대치의 현금정리 실적을 올렸지만 체납액이 더 많이 늘어나는 바람에 체납액 감소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세금을 내지 않아 은행 등 금융권에 명단이 통보된 체납자가 43만 명으로 이들은 500만원 이상 체납 발생 후 1년이 지났거나 1년에 3회 이상 연체한 사람들로 이중 5,000만원 이상인 고액체납자 600여 명은 국세청에 의해 출국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비양심으로 무장한 고액 체납자들

총 체납건수 23건에 총 체납액 2,600여 만원인 비양심 체납자의 부인은 돈이 없어 전셋집에 산다고 우기는데 확인 결과 이 전셋집의 집 주인은 다름아닌 체납자의 부인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또 다른 체납자 역시 체납액 1,400여 만원을 체납한 상태로 돈이 없어 빚을 내서 겨우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부인명의로 100억 원대의 신도시 개발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편 2,700만원, 부인 2,800만원을 체납하고 있는 부부는 감옥에 집어넣어도 세금 낼 돈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결과 체납자 부부에겐 15억원 상당한 대지와 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다. 고액 체납 남편을 위해 명의 이전과 위장이혼은 물론이고, 조사관들을 보자 전기요금이 아깝다며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심지어 조사관들의 세금 독려에 폭탄주를 마시기까지 하는 고액 체납자 까지, 그야말로 그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이는 모두 KBS2 TV의 '좋은나라 운동본부'의 한 코너 '최재원의 양심추적'에서 보여준 고액 체납자들의 모습이다. 이 방송을 통해 고발된 체납자들은 수백명에 달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체납의 이유에 대해서 "돈이 없다. 자기 앞으로 되어 있는 재산하며 소득도 없기에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돈이 없다는 그들이 거주하는 집은 하나같이 호화주택과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해 있는 아이러리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며 세금 낼 돈은 없다던 체납자는 6천만원 짜리 헬스클럽에 다니는 비양심적인 모습까지 모두 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들 뿐이다. 지난 2004년 10월 재경위 국정감사에서 전형수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서울지역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체납한 사람의 체납 세금액이 무려 780억원에 달했다고 하니 그들의 체납액은 수백만원에서 수억원까지 그 금액도 어마어마하다.


탈세를 위해서라면 이혼도 한다
천태만상인 고액 체납자들. 또 그들을 추적하는 38기동대. 38기동대는 납세의 의무 조항인 헌법 38조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고액 장기 체납자들의 재산 상황을 밝혀내 이를 추적, 체납 세금을 받아내기 위해 서울 시청이 2001년 8월 발족해 운영하는 조직이다. 세금 체납은 과년도분 500만원 이상이면 고액체납으로 시에서 직접 징수한다. 이들과 쫓고 쫓기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어떤 방법으로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상태에서도 호화스런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피하는 전형적인 방법은 재산을 가족과 친인척에세 분산시켜 명의를 바꾸고 주민등록을 엉뚱한데로 옮겨 추적을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체납자들에게는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은 없다. 38기동대의 한 조사관은 “너무 완벽하다. 과세될 시점에 임박해서 협의이혼하고 같은 시점에서 재산을 다 부인 이름으로 양도를 하는 것을 볼때면 그들은 전혀 세금 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대기업 임원으로 지내다 퇴직한 A씨의 세금 체납액은 무려 2,500만원. 그러나 A씨는 세금이 부과될 시점을 전후해 재산을 모두 부인 명의로 이전했다. 이렇게 부인명의로 이전한 재산은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50평의 아파트 한 채와 주유소 등 재산이 줄잡아 20억 원을 웃돈다. 그러나 A씨처럼 모든 재산이 모두 부인명의로 되어있다 할지라도 고의로 재산을 빼돌렸다면 '사해행위'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현행 조세범처벌법에는 1년에 세 번이상 체납을 하거나 재산을 고의로 빼돌린 체납자에 대해 체납된 세금금액과 같은 벌금 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액의 체납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국세 징수법 제 86조에는 체납자의 부도 폐업으로 인해서 무재산이 되는 경우에는 결손처분을 받게 되어 있다. 즉 저소득층에게는 세금이 면죄되는 것처럼 부도나 실직 등으로 갑자기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상황이 회복될 때까지 결손처분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도 이렇다 할 소득이 발견되지 않을 경우 세금은 완전히 탕감된다. 그런데 일부 고액 체납자들이 이런 납세자의 구제책을 악용해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징수법을 이용해 악의적인 체납을 하고 있지만 세무 공무원들이 이를 구분해내는 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것. 특히 악의적인 체납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검찰고발 직전 세금을 내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세금 체납자들, 알고도 못받는다

세금 체납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미국의 경우 금융기관과 국세청과 연계한 ‘금융재산 추적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체납자 은행 계좌가 어느 지역 어느 은행에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필요하다면 곧바로 예금을 차압할 수도 있다. 또한 잔액을 찾아내기 힘들 경우 수색영장을 발부 받거나 소환장을 받아서 은행계좌의 기록을 보고 체납자의 소득이나 체납자가 사해행위를 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징수시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고의성이 있다면 기간에 상관없이 끝까지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한 추적 시스템으로 미국은 2% 체납율에 머물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도 체납에 대한 엄격한 법률과 시스템으로 체납율이 1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체납자의 금융재산 조회를 법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국세청에서는 이미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위해 개인별 주식 보유와 예금 보유 현황을 국세통합시스템을 확보하고 있지만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자료를 체납자 재산 조회에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사업자에 대한 국세청의 계좌 추적에 대한 것이 극히 제한되어 있어 소득을 자진 신고하는 개인사업자들의 경우 국세청이라 해도 재산을 찾아내고 압류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때문에 체납자의 금융계좌를 일괄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보완되지 않는 이상 악의적인 체납자의 금융재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반면 세금을 원천징수 당하는 월급 생활자들은 급여 계좌추적으로 압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체납은 불가능하다. 결국 돈은 있지만 납세의 의지가 전혀 없는 개인사업자 고액 체납자들의 세금을 받는 제도는 허술한 편이다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
우리나라의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한 가운데 이미 납세 능력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여 적발한 고액체납자 중 상당수는 체납된 국세를 이미 결손처분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액 세금 체납자들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건 안내도 된다는 비양심적인 모습뿐이다. 치안을 범죄자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안되는 것처럼 세금을 체납자의 양심에만 호소한다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불구하고 소득완전노출로 인해 근로소득자의 유리지갑에서는 언제든지 돈을 꺼내쓸 수 있지만 개인사업자의 꽉 닫힌 금고는 전혀 열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그야 말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때문에 국민의 절반은 국세청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머지 절반은 국세청을 불신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체납은 물론 탈세도 계속해서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숨기고 빼돌려 내지 않아도 되는 세금이라면 누구도 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인 세금징수 방법이 국민적인 공감대를 얻는데는 먼저 갖춰져야 할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정부가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예외없이 받아 낸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금을 내기 전보단 세금을 내고 난 다음 빈부 격차를 더 크게 느낀다는 통계가 있다.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세금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 비양심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국세청 징수 체계의 보완이 시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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