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경영의 모범에서 ‘형제의 난’ 맞은 두산
박용오(주)두산 명예회장, 가문서 퇴출
‘가족 경영의 모범’으로 손꼽혀온 두산그룹이 ‘형제의 난’에 휩싸인 데 이어 검찰의 수사 대상에까지 오를 것으로 보여 그룹 이미지 추락은 물론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두산은 고 박승직 회장이 1896년 창업,오는 8월1일로 109주년을 맞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박두병 그룹 초대 회장이 타계한 지난 1973년 이후 전문 경영인에 이어 3세 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차례로 이어받으며 형제간의 재산 다툼이 한 번도 없어 '비즈니스 패밀리'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오는 8월 1일 109주년을 맞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 두산그룹의 창업이래 가장 큰 위기인 이번 사태를 조명해본다.
경영권 다툼 넘어 검찰 수사까지
두산의 우애 경영은 초대 회장이었던 고 박두병 회장이 남긴 '공동소유,공동경영'의 원칙을 굳건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96년 12월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이 동생인 박용오 전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했고 최근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한 바 있다.
우애 경영을 통해 두산은 어려운 위기를 잘 헤쳐왔고 현재 재계 1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은 주력사업인 OB맥주를 매각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의 체질을 내수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 바꾸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 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박용오 전 회장의 반발에 이어 두산이 박 전 회장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다시 박 전 회장이 이에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종지부를 찍게 됐다.
두산은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로 이어져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은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서에서 “박용성 그룹 신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비리 사실이 내게 적발되자 반성은커녕 공모하여 일방적으로 나를 명예회장으로 몰아내는 등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관계 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명백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특히 박 전 회장은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수천억원의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외화 밀반출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이에 대해 “그같은 비자금 조성 등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박 전 회장이 회장직 이양을 결정한 가족회의의 결과에 반발해 꾸민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쪽 주장이 맞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어쨌든 두산그룹은 명예 추락은 물론 검찰 수사 여부에 따라서는 자칫 그룹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회장 검찰에 진정서 제출
박용오 전 회장이 측근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동생인 박용성 그룹 신임 회장이 20년간 생맥주 체인점인 태맥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350억~4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것. 박 신임 회장은 또 두산그룹의 경비 용역과 건물 관리업체를 통해 2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했고 분식회계 혐의도 있다고 박 전 회장은 밝혔다.
박 전 회장은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도 위장계열사를 운영하면서 두산산업개발의 주방가구 물량 및 마루 공사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5년간 독식해 2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회장은 이와함께 박용성 그룹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가 800억원대의 외화를 밀반출하는 등 그룹 오너 가족들이 20년간 총 1천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사조직 관리 및 노조탄압에 사용한데 대해 관계관의 엄정한 수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이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박용성 회장 큰아들)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 팍'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계열사 자금 870억원을 지원했다가 이 회사 자금을 모두 빼돌려 800억원대의 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또 박 부회장이 두산그룹 계열사인 엔 세이퍼에 친구들인 SK그룹과 삼양사의 오너들의 돈을 투자시켰다 100억원 가까이 손실을 보게 되자 두산 계열사가 이 회사를 80억원 가까운 돈을 주고 매입하게 함으로써 손실을 대신 갚아줬다는 주장도 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간에 싸움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송구스럽지만 이번 그룹 회장 승계건은 막대한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주도한 쿠데타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며 박 전회장이 회장직 이양을 결정한 가족회의의 결과에 반발해 꾸민 것"이라며 법적 대응여부를 고려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두산그룹은 또 임직원들에게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킨다는 원칙을 적용해 박 전 회장에 대해 퇴출을 단행키로 가족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취임한지 10년 정도 됐고 은퇴할 시기가 됐으나 금년 말로 회장직에서 은퇴하라'고 말하자 이에 반발해 자신이 지분을 0.7% 가량 보유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분율이 0.7%에 불과하고 계열 분리가 선친인 박두병 초대회장의 ‘공동소유, 공공경영'의 원칙에 반하고 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배치되기 때문에 가족회의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박 명예회장 주재로 수차례 가족회의를 열었지만 박 전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아 그룹 회장직을 셋째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이양키로 결정했고 박 전 회장이 결국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돌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현재 주위 사람들에게 회장직 이양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 등이 박용곤 명예회장을 사주해 벌인 일이라고 비방을 서슴지 않고 있지만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판단을 다른 모든 가족들이 지지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검찰측은 현재 사안을 검토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보낼 예정이다.
'모범적인 형제 경영'으로 재계를 중심으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두산그룹, '형제의 난'에 이어 검찰의 수사대상에까지 오르는 수모를 겪게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어떤 회사
두산은 고 박승직 회장이 1896년 창업한 이래 109년의 전통을 이어온 국내 기업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박두병 초대회장이 타계한 지난 1973년 이후 전문경영인에 이어 3세 경영인들이 경영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기업이다.
1996년 12월부터는 차남인 박용오 회장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 오면서 그룹의 체질을 내수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 바꿔왔다. 당시 박용오 회장은 소비재 사업만으로는 그룹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주력사업인 OB맥주를 과감히 매각하면서 변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두산은 이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 코어)를 잇따라 인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갖췄으며, 현재 19개 계열사가 매출 11조원, 자산규모 12조원의 재계 10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은 최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 대우종기(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동안 구조조정으로 위축됐던 사업영역을 의욕적으로 확장해왔다. 특히 두산은 대우종기 인수를 계기로 그룹의 핵심사업 비중이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바뀜에 따라 이를 계기로 올해를 '제2의 창업기'로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비전을 밝혀왔으나, 이번 분쟁으로 인해 향후 사업상의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이번 경영권 분쟁 이전에도 한차례 그룹존립까지 위협받는 위기가 있었다. 바로 1991년 페놀사건이 그것. 페놀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 구미공단에 위치한 두산전자에서 전기회로기판의 제조 공정에 필요한 페놀 30t이 유출돼 낙동강 하류지역에 방류된 사건으로, 두산은 사회적으로 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면서 엄청난 이미지 타격과 손실을 입었다.
두산은 당시 지역 사회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오염의 주범'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두산의 OB맥주는 깨끗한 물을 강조한 하이트맥주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박용오(주)두산 명예회장, 가문서 퇴출
‘가족 경영의 모범’으로 손꼽혀온 두산그룹이 ‘형제의 난’에 휩싸인 데 이어 검찰의 수사 대상에까지 오를 것으로 보여 그룹 이미지 추락은 물론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두산은 고 박승직 회장이 1896년 창업,오는 8월1일로 109주년을 맞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이다. 박두병 그룹 초대 회장이 타계한 지난 1973년 이후 전문 경영인에 이어 3세 경영인들이 경영권을 차례로 이어받으며 형제간의 재산 다툼이 한 번도 없어 '비즈니스 패밀리'의 모범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오는 8월 1일 109주년을 맞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 두산그룹의 창업이래 가장 큰 위기인 이번 사태를 조명해본다.
경영권 다툼 넘어 검찰 수사까지
두산의 우애 경영은 초대 회장이었던 고 박두병 회장이 남긴 '공동소유,공동경영'의 원칙을 굳건히 지켜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996년 12월 박용곤 당시 그룹 회장이 동생인 박용오 전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했고 최근엔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이양한 바 있다.
우애 경영을 통해 두산은 어려운 위기를 잘 헤쳐왔고 현재 재계 10위권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은 주력사업인 OB맥주를 매각하는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그룹의 체질을 내수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 바꾸는데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 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은 박용오 전 회장의 반발에 이어 두산이 박 전 회장을 비난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다시 박 전 회장이 이에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종지부를 찍게 됐다.
두산은 형제간 경영권 다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로 이어져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회장은 이날 저녁 발표한 성명서에서 “박용성 그룹 신임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은 비리 사실이 내게 적발되자 반성은커녕 공모하여 일방적으로 나를 명예회장으로 몰아내는 등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며 “관계 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명백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했다.
특히 박 전 회장은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박용성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 등이 수천억원의 비자금 조성, 분식회계, 외화 밀반출 등의 비리를 저질렀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했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산그룹은 이에 대해 “그같은 비자금 조성 등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박 전 회장이 회장직 이양을 결정한 가족회의의 결과에 반발해 꾸민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느쪽 주장이 맞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어쨌든 두산그룹은 명예 추락은 물론 검찰 수사 여부에 따라서는 자칫 그룹이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전 회장 검찰에 진정서 제출
박용오 전 회장이 측근을 통해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에 따르면 동생인 박용성 그룹 신임 회장이 20년간 생맥주 체인점인 태맥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350억~45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것. 박 신임 회장은 또 두산그룹의 경비 용역과 건물 관리업체를 통해 200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해 유용했고 분식회계 혐의도 있다고 박 전 회장은 밝혔다.
박 전 회장은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도 위장계열사를 운영하면서 두산산업개발의 주방가구 물량 및 마루 공사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5년간 독식해 2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회장은 이와함께 박용성 그룹 회장의 아들인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가 800억원대의 외화를 밀반출하는 등 그룹 오너 가족들이 20년간 총 1천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하고 이를 사조직 관리 및 노조탄압에 사용한데 대해 관계관의 엄정한 수사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박용만 두산그룹 부회장이 박진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박용성 회장 큰아들)와 함께 미국 위스콘신에 '뉴트라 팍'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계열사 자금 870억원을 지원했다가 이 회사 자금을 모두 빼돌려 800억원대의 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또 박 부회장이 두산그룹 계열사인 엔 세이퍼에 친구들인 SK그룹과 삼양사의 오너들의 돈을 투자시켰다 100억원 가까이 손실을 보게 되자 두산 계열사가 이 회사를 80억원 가까운 돈을 주고 매입하게 함으로써 손실을 대신 갚아줬다는 주장도 있다.
박 전 회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형제간에 싸움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송구스럽지만 이번 그룹 회장 승계건은 막대한 자금을 해외로 빼돌린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부회장이 주도한 쿠데타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검찰에 제출한 진정서 내용에 대해 "사실무근이며 박 전회장이 회장직 이양을 결정한 가족회의의 결과에 반발해 꾸민 것"이라며 법적 대응여부를 고려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두산그룹은 또 임직원들에게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킨다는 원칙을 적용해 박 전 회장에 대해 퇴출을 단행키로 가족회의에서 결정됐다고 밝혔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전 회장은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취임한지 10년 정도 됐고 은퇴할 시기가 됐으나 금년 말로 회장직에서 은퇴하라'고 말하자 이에 반발해 자신이 지분을 0.7% 가량 보유한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분율이 0.7%에 불과하고 계열 분리가 선친인 박두병 초대회장의 ‘공동소유, 공공경영'의 원칙에 반하고 그룹 전체의 이익에도 배치되기 때문에 가족회의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박 명예회장 주재로 수차례 가족회의를 열었지만 박 전회장이 뜻을 굽히지 않아 그룹 회장직을 셋째인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이양키로 결정했고 박 전 회장이 결국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돌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두산그룹은 박 전 회장이 현재 주위 사람들에게 회장직 이양이 동생인 박용성 회장 등이 박용곤 명예회장을 사주해 벌인 일이라고 비방을 서슴지 않고 있지만 모든 결정은 전적으로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의 판단을 다른 모든 가족들이 지지해 이뤄졌다고 전했다.
검찰측은 현재 사안을 검토한 뒤 서울중앙지검에 보낼 예정이다.
'모범적인 형제 경영'으로 재계를 중심으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던 두산그룹, '형제의 난'에 이어 검찰의 수사대상에까지 오르는 수모를 겪게될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어떤 회사
두산은 고 박승직 회장이 1896년 창업한 이래 109년의 전통을 이어온 국내 기업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한다. 박두병 초대회장이 타계한 지난 1973년 이후 전문경영인에 이어 3세 경영인들이 경영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기업이다.
1996년 12월부터는 차남인 박용오 회장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 오면서 그룹의 체질을 내수기업에서 중공업기업으로 바꿔왔다. 당시 박용오 회장은 소비재 사업만으로는 그룹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주력사업인 OB맥주를 과감히 매각하면서 변신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두산은 이어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 코어)를 잇따라 인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갖췄으며, 현재 19개 계열사가 매출 11조원, 자산규모 12조원의 재계 10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은 최근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과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 대우종기(현 두산인프라코어) 등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동안 구조조정으로 위축됐던 사업영역을 의욕적으로 확장해왔다. 특히 두산은 대우종기 인수를 계기로 그룹의 핵심사업 비중이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바뀜에 따라 이를 계기로 올해를 '제2의 창업기'로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는 비전을 밝혀왔으나, 이번 분쟁으로 인해 향후 사업상의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두산그룹은 이번 경영권 분쟁 이전에도 한차례 그룹존립까지 위협받는 위기가 있었다. 바로 1991년 페놀사건이 그것. 페놀 사건은 지난 1991년 3월 구미공단에 위치한 두산전자에서 전기회로기판의 제조 공정에 필요한 페놀 30t이 유출돼 낙동강 하류지역에 방류된 사건으로, 두산은 사회적으로 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면서 엄청난 이미지 타격과 손실을 입었다.
두산은 당시 지역 사회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며 사태수습에 나섰지만 '오염의 주범'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두산의 OB맥주는 깨끗한 물을 강조한 하이트맥주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급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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