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을 지역 공천에 고심하던 한나라당이 최고위원인 정 의원을 긴급 투입시킨 것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도덕적 자질을 거론하며 끝까지 맞섰던 정 전 장관의 정치권 전면 재등장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승부수였다. 정 전 장관은 17대 대선에, 정 의원은 16대 대선에 각각 출마한 바 있으며,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어 마치 이번 총선은 ‘대선 전초전’을 보는 듯한 흥감을 줬다.

정몽준-정치적 생명 건 모험, 정동영-대선 이후 참패
기존의 ‘텃밭’을 뒤로 하고 연고 없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몽준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건 모험을 한 끝에, 통합민주당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을 54.4%대 41.5%로 누르고 최종 당선됐다. 4월 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 정 전 장관을 평균 15% 포인트 이상 앞서는 등 여유 있게 승리를 이끌어낸 정 의원은 “민주당의 서울 쌍끌이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 출마를 하게 됐는데 한나라당의 수도권 승리에 일정부분 기여해 기쁘다”며 당선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현대중공업 회장 출신인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 17대까지 줄곧 울산을 기반으로 의원직을 유지했으나, 20년 만에 서울로 옮겨 당선됨으로써 정치 경력에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해 대선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530여 만 표로 패했던 정동영 전 장관은, 이번 4·9총선에서도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의 벽에 막혀 또다시 좌절했다. 지난 1996년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천을 받아 전국 최다득표로 정계에 발을 들인 정 전 장관은 정치적인 질풍노도의 시간을 거쳐 왔다. 참신한 초선 대변인으로 국민 앞에 등장해 2000년 총선에서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서 최다득표 기록을 이었고, 2001년 말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새로운 정치아이콘으로 부상했다. 2002년 대선에서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으로, 유력한 차기대선후보로 떠오른 정 전 장관은 열린우리당 창당, 초대 당의장을 거쳐 통일부장관까지 지내며 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패배한 후 지역구인 서울 동작을에서 낙선 인사를 마무하고 앞으로의 행로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복잡한 심경 속에 정 전 장관이 측근들에게 내놓은 말은 “이젠 휴식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정도다. 주변에서는 국내에 머물며 때를 기다리는 방식과 국외로 나가 새로운 경험을 쌓는 방식 등 여러 가지 조언이 있지만 해외 체류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하지만 시련 속에 해외체류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정 전 장관이지만 ‘차기 주자’ 후보란 그의 지위까지 소멸됐다고 보긴 어렵다.
뉴타운 공약 논란 속의 정몽준 의원
서울시에 출마한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 후보들은 앞다퉈 ‘뉴타운’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다양하게 뉴타운을 공략했다. 동작을의 정몽준 의원 역시 ‘뉴타운’ 공약으로 효과를 톡톡히 본 인물이기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출마자들이 다정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뉴타운 및 재개발 공약과 함께 내걸면서 ‘뉴타운’ 공약은 기정사실화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14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 등에서 “뉴타운 추가 지정은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고 1~3차 뉴타운 사업이 상당히 가시화하는 시점에 그 시기와 대상을 검토하겠다. 최근 강북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들썩이고 있어 추가 지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혀 공약에 대한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유권자들은 “뉴타운을 실현시키겠다고 해서 한나라당에 표를 몰아줬는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말을 바꿨다. 우린 철저히 속았다”며 분노했다. 또한 통합민주당은 뉴타운을 공약했던 이들 가운데 정몽준(서울 동작구을), 현경병(노원구갑), 안형환(금천) 당선인 등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권이 뉴타운 추가지정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정몽준 의원도 상당히 당혹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정 의원은 4.9 총선을 목전에 둔 시점인 3월 27일 출정식을 갖고 “사당동과 동작동에 뉴타운을 건설하겠다”며 “지난 주 오세훈 시장을 만나서 확실하게 설명을 했고 오 시장도 확실하게 그렇게 동의를 해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의원은 당일 오후 거리유세에서도 뉴타운 개발 공약을 거론하면서 “울산에서 올라오자마자 오 시장을 만나 이런 얘기를 다했고, 오 시장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다음날 오후 사당1동 관악시장에서 열린 연설회에서도 “사당·동작 개발과 관련해 오 시장과 얘기가 다 돼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즉 정 의원이 오 시장을 만났고, 오 시장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정 의원의 공약을 추진해 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는 뜻이다. 이는 차기를 꿈꾸는 정몽준 의원은 ‘뉴타운 지정’을 정치적 입지 구축을 위한 카드로 활용하려는 의지가 다분히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오 시장의 언론사 발언과 관련해 공약 자체가 불투명해 지자 정 의원은 “오 시장이 뉴타운 문제에 대해 당과 직접 대화하지 않고 간접대화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기자회견 내용 등을 문제 삼았다. 뒤 이어 오 시장과 통화해 대화를 조율키로 한 정 의원은 “서로 대화가 부족했는데 의사소통을 잘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곧바로 “시민들의 구매력이 좋으니까 도시 행정력이 뒷받침되고 주민들의 동의만 있다면 (뉴타운 추가지정이)위축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반대의견을 표명하며, 이어 “주거활동 개선과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뉴타운 지정은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만들어 놓은 도시 재정비 촉진특별법이라는 좋은 법을 한나라당이 집행하는 단계인데 ‘할까, 안 할까’를 논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것이냐’를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내 최다선 중진급인 6선의 정몽준 의원은 최근 “언로에 참여 하기 위해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에 나가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임을 거듭 밝혔다. 정 최고위원의 중장기 정치행보를 감안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선택인 측면으로 해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