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기회사로 출발, 175년 역사의 최대 농기계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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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회사로 출발, 175년 역사의 최대 농기계 회사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1.05.16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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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 존 디어의 특징”

일본 <니케이 비즈니스> 조사에 따르면, 1970년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약 1/3이 겨우 13년도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일본 100대 기업의 평균 수명 역시 30년 정도이며, 우리나라 기업도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코스피 상장사 평균은 32.9년, 코스닥 기업은 16.7년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글로벌 장수 기업들은 100여 년이 넘는 시간에도 견고하게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1837년 미국 시골의 작은 쟁기회사로 출발한 존 디어(John Deere)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올 초 JP모간체이스는 세계 최대 농업용 트랙터 제조업체인 존 디어의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로 상향조정했다. 더불어 목표가도 기존의 75달러에서 100달러로 높여 잡았다. “북미 지역 농업 종사자들의 현금 흐름 개선과 자본설비 구입에 대한 세제혜택, 강력한 농작물 가격에 따른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 JP모간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존 디어는 1분기 순익이 예상했던 수치를 크게 웃돌았다. 주당 순익 57%를 기록해 당초 시장 예상치인 19%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이에 따라 존 디어는 올해 순익 전망치도 9억 달러에서 13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존 디어에서 일하고 싶다”

전미 은퇴자협회(AARP) 회원들이 뽑은 ‘미국의 50인 이상 회사 가운데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선정된 바 있는 존 디어는 1837년 미국 중서부 시골의 작은 쟁기회사로 출발해 신뢰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고작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라고 존 디어를 얕잡아보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존 디어는 포천지가 선정하는 ‘미국 내 가장 존경받는 100대 기업’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2004년에는 6위에 올랐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글로벌 기업이다.
존 디어가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땅과 그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굳건한 약속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존 디어는 여전히 안주하지 않은 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제품에는 결코 내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

존 디어의 창업주는 존 디어(John Deere)이다.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명으로 옮긴 경우다. 그리고 이는 향후 존 디어社의 품질철학으로도 이어진다. 
1804년 버몬트에서 태어난 존 디어는 일반적인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는 4년 간 대장장이 견습생으로 일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대장장이로 일을 시작한 존 디어는 그만의 제조 및 독창성으로 명성을 쌓았다. 존 디어의 건초 포크와 삽은 특히 인기였다. 하지만 야심찬 젊은 대장장이에게 그가 살고 있는 버몬트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에게 어두운 미래만 선사할 뿐이었다. 버몬트의 많은 원주민들은 서부로 이민을 갔고, 그 역시 버몬트를 떠나 개척자의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1836년 그는 미국의 중서부 일리노이 주에 도착했고, 그 곳에서 존 디어라는 회사가 태동했다.
존 디어의 가치는 ‘품질, 혁신, 성실성, 약속’ 네 가지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 네 가지는 기업이라면 어느 누구나 당연하게 추구하는 기본 가치이다. 단, 존 디어가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 되는 것은 사무엘 앨런(Samuel R. Allen) 現 회장의 전임인 로버트 레인(Robert W. Lan) 회장이 말한 것처럼 ‘품질, 혁신, 성실성, 약속’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끌어내는 것이 존 디어의 특징”인 것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제품에는 결코 내 이름을 붙이지 않겠다”라는 존 디어의 철학은 제품의 품질뿐 아니라 재정, 인사, 납품업체와의 관계를 포함한 비즈니스 전 분야에 적용해 스스로는 물론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또한 존 디어는 여전히 콤바인이나 대형 트랙터를 구입하는 고객을 직접 이스트멀린 공장으로 초대해 생산라인을 보여준 뒤 고객이 제품의 첫 시동을 걸도록 하고 있다.

생산라인에서 잘 빠진(?)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존 디어는 이 제품을 끝까지 책임진다. 그리고 고객들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이것을 알고 있다. 멀리 떨어져있는 서비스센터나 수리 센터에 직접 제품을 들고 가거나 운반해야 하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제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 위해 존 디어는 ‘딜러십 네트워크’를 통해 제품에 대한 완전 서비스를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어떠한 제품이라도 제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언제든지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수유지 서비스를 해주는 것은 물론 고객이 연락하면 언제 어디라도 상관없이 달려온다는 믿음. 이것이 존 디어와 고객 사이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존 디어는 여전히 건재하며,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존 디어는 항상 단순히 일을 한다는 행위자체보다는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특별한 것은 사람들이 서로 협동하게 하는 것이다.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평범하지 않은 결과를 끌어내는 게 존 디어의 특징이다. 4만 6,000명이 서로 도우면 엄청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존 디어의 매출을 책임지는 가장 큰 것은 트랙터와 농업용 장비다. 뿐만 아니라 잔디깎기를 비롯한 잔디용품, 조경·잔디관리, 건설·임업장비, 건강용품 등 존 디어는 다양한 분야로 그 영역을 넓혀왔다. 이렇듯 존 디어는 끊임없이 혁신을 거듭해왔다.

1928년 존 디어의 증손자인 찰스 디어는 현대농업이 발전하고 있는 것에 따라 엔지니어링 및 제품 개발에 관심을 갖고 그 쪽으로 회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30년대에는 미국이 국가적인 불경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존 디어는 1937년에 처음으로 1억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1955년∼1982년 동안 존 디어를 책임진 윌리엄 휴잇은 존 디어의 가장 큰 성공을 이끌어냈다. 이 시기에 존 디어는 농기계뿐 아니라 건축, 임업장비, 잔디 케어 제품군까지 제작·판매해 고속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존 디어를 만날 수 있다. 존 디어의 사슴로고는 회사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애용하는 패션 브랜드에도 사용되고 있다. ‘사슴처럼 질주한다’라는 존 디어의 기업모토가 담겨 있는 이 사슴로고는 존 디어가 1876년 등록한 것으로, 아프리카에서 주로 사는 사슴이 그려져 있다. 이 사슴로고가 티셔츠, 야구모자 등에 새겨져 상당한 라이선스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20년 근무는 신입사원에 불과 할 뿐이다

창업한 지 175년여가 지난 존 디어. 한 기업의 역사가 이쯤 되면 들고 나는 사람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존 디어의 사람들은 한 번 입사하면 나갈 기미를 잘 보이지 않는다. 직원 자신은 물론이고 대를 이어 존 디어의 직원이 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존 디어의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존 디어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22년이다. 30년 이상 된 직원이 워낙에 많기 때문에 근속 20년 차 직원들은 스스로를 ‘신입사원’이라고 부를 만큼 장기근속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은 비단 직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175년여 동안 최고경영자(CEO)도 9명에 불과했다. 그 중 5명은 창업자를 포함한 존 디어의 가문이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최고전문경영인은 현재의 사무엘 앨런까지 4명뿐인 셈이다. 이처럼 존 디어에서는 직원들뿐만 아니라 CEO들도 장기근속을 한다. 4대에 걸쳐 근무하는 직원들,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자매가 함께 근무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은퇴자협회가 ‘미국의 50인 이상 회사 가운데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으로 존 디어를 괜히 선정한 게 아니라는 것은 이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다보니 미국의 잘 나가는 의사, 변호사들의 꿈은 주말에 골프를 치는 것이 아니라 존 디어의 트랙터를 몰고 주말농장 일을 즐기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꿈의 직장을 넘어서 꿈을 만들어주는, 꿈을 함께 하는 기업, 이곳이 바로 존 디어이다.  

풍력사업에 도전, 그린기업으로 변신 성공

아무리 잘 나가는 존 디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성공만 함께 했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과 1987년에는 농업불황으로 각각 2억 2,900억 달러와 1억 9,0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절반에 가까운 직원을 정리해고 해야 하기도 했다. 또한, 크고 작은 신사업에 진출했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 제품의 질을 낮추거나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존 디어는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섰다.

몇 해 전부터 존 디어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제아무리 업계를 선도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농기계만 만드는 데에는 지속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한계를 극복하고 녹색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농민들과 연계한 풍력발전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존 디어의 사업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농민이나 농민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생산된 전기를 지역의 전력회사에 판매하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는 투자금액. 농촌지역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당 1,000만 달러가 필요하며, 여기에 부지 확보 비용까지 더하면 금액은 더욱 커진다. 이에 존 디어는 사업비의 절반을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금융회사나 투자자로부터 유치하는 것이다. 존 디어는 이렇게 필요자금을 충당하고 부지는 농민들이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업비의 0.1% 가량만 부담하며, 여기서 얻은 수익은 골고루 배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 제법 짭짤한 수익을 냈다. 그리고 존 디어는 주력업종을 잘 활용해 그린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저변에는 그동안 농민들과 쌓아온 탄탄한 신뢰 관계가 있었다.

대를 이어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제품에 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는 기업철학. 농장을 패션의 첨단으로 만드는 힘.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뿜어내는 힘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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