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경수로 건설을 종료하는 대신 직접 200만㎾의 전력을 북한에 공급하겠다는 이른바 '중대제안'을 공개했다. 지난달 12일 공개된 중대제안의 핵심인 대북 직접 전력공급은은 남한의 전기로 북한의 핵을 산다는 그림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북한 핵 폐기를 위해서는 안전보장과 경제적 대가 지불이 요구되는데 이번에 정부는 경제적 지원의 일단인 대북송전 구상을 발표한 것이다.
정부는 북한이 핵폐기에 합의하면 현재 중단 상태에 있는 경수로 건설을 종료하는 대신에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200만㎾의 전력을 송전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또 이를 위해 즉각 송전선로 및 변환시설 건설에 착수해 3년 이내인 2008년경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중대 제안’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하고, 회의 직후 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공식 발표했다.
정부, 2008년 이후부터 전력공급 가능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방한 직후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반기문 외교장관과 가진 만찬회담에서 “중대제안은 창의적이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익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긍정적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정 장관은 “대북 전력공급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다른 나라들도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이 지난 2월 10일 핵무기 보유 및 6자회담 무기한 중단 선언을 한 직후 대북 중대제안을 마련했으며 5월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북한에 이를 알리고 지난 달 17일 평양 방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알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100만㎾ 2기를 제공하기로 했던 북한 금호지구의 경수로 건설사업의 경우 그간 우리나라가 투자한 비용만도 11억2천만 달러가 넘어 앞으로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정 장관은 “경수로 건설은 2년째 중단 상태로 이 사업이 재개될 경우 잔여비용 35억달러 가운데 70%인 24억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북 송전로 건설과 변환건설 비용 등은 이 범위에서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10여년간 전력수급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2008년 이후부터 전력 제공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전력 공급능력은 올 여름 기준으로 6천110만kW로 고온으로 인해 전력소비량이 증가해 피크가 걸리더라도 전력 예비율은 12%(667만kW) 정도이며 여기에서 북한이 필요한 전력 200만kW를 빼면 예비율은 8%로 떨어져 관련 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현재 개성공단에 송전방식으로 전력 공급을 추진 중이며 200만㎾의 전력을 공급하려면 적어도 34만5천볼트 짜리 초고압 송전선로를 깔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개성에 들어가는 송전방식 전압은 15만4천볼트 수준이다.
대북 전력공급 시기와 관련, 정 장관은 “울진 5호기 가동 등을 감안할 때 2008년에는 공급 가능한 전력이 7천100만㎾에 달하며 이 때 전력 예비율을 17%로 잡더라도 500만∼600만㎾의 여력이 생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 핵폐기와 관련된 합의문이 발표된다면 그와 동시에 경기도 양주↔평양간 직접 송전 건설 문제 협의에 착수할 것”이라며 “송전시기는 북핵폐기가 이행되는 시점으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언제, 어떤 수준에서 폐기하고 검증할 지는 6자회담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양주↔평양간 200㎞ 구간에 송전선로 건설에는 5천억원이, 변환설비 건설에는 1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또 “북한이 (6자회담에서) 핵폐기에 동의하면 송전 개시전까지 기간에 2002년 12월 중단한 중유 공급 계획이 6자회담을 통해 논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 장관은 ‘북한이 경수로 건설 중단 대신 전력공급 방안에 동의했느냐’는 질문에 “6.17 면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그 내용을 설명한 뒤 신중히 검토하고 답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현재까지 북측이 입장을 통보하지는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반응에 대해 “이달 초 미국 방문 당시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7월 6자회담 복귀 약속을 지킨다면 그 메시지를 의미있게 간주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정 장관은 “북측이 내놓을 것은 핵포기이고 북한이 원하는 것은 체제안전보장을 포함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에너지를 핵심으로 한 경제문제 해결”이라며 “대북 직접 전력공급은 이 문제를 푸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수로 건설을 위해 설립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운명에 대해 “유관국과의 협의를 거쳐 차차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포기에 따른 ‘평화비용’
가장 큰 문제는 우리측의 비용부담 문제일 것이다.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18일 대북 전력송전에 필요한 송배전시설 등 시설투자비 이외에 대북 전력공급 비용의 부담 주체와 방식은 북한과의 협상, 실제비용 산출, 6자회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실제 전력공급 비용과 북한의 핵 포기에 따른 ‘평화비용’을 감안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이 장관은 “현재 개략적인 밑그림은 갖고 있다”면서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야 하겠지만 최소한의 비용은 우리가 감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무상송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전력공급 비용을 산출한 뒤 이를 ‘평화비용’과 비교해 우리 경제가 감내할 만한 수준에서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정부는 대북 송전에 따른 시설투자 비용을 1조5500억∼1조7200억원으로 추정했고 이는 경수로 건설 분담금 24억달러로 충당하기로 했지만 대북 전력공급 비용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확한 전력공급 비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기이용료만 놓고 보면 판매단가에 따라 각각 연간 7000억원(발전회사 발전원가 ㎾h당 41원 적용), 9600억원(전력거래소 도매비용 55억원 적용), 1조3000억원(한전 평균 판매가 74원 적용)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발전비용과 송배전시설 유지관리비 등을 합치면 액수는 더욱 늘어난다.
전력지원, 예상보다 수조원 더 들어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발표와는 달리대북 전력 지원 계획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초기 비용만 최소한 3조4,000억 원이 든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이것은 정부가 밝힌 초기 비용 1조5,00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액수다.
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정민 박사(원자핵공학)는 녹색연합이 한국프레스센터 환경재단에서 개최한 ‘북한 전력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를 통해 “정부의 대북 전력 지원 계획은 문제투성이”라며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는 관련 전문가, NGO, 시민과 6자 회담 참가국들의 다양한 의견을 고려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토론회 연구 발표에 따르면 200만㎾ 규모의 화력발전소 건설에 약 1조원, 평양까지 송전망 건설에 6,000억원, 200만㎾ 송전 전력을 수용하기 위한 북한의 송ㆍ배전망 절반을 개선하는 데 1조8,000억원이 든다는 것이다.
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대북 전력 지원 계획의 허점을 지적했다. 북한은 남한과 달리 통일된 단일 전력망이 아니라 크게 단절된 지역적 전력망의 집합으로 구성된 특징을 가지고 있고 특히 송ㆍ배전망 사정은 크게 열악한 실정이라는 것. 뿐만아니라 남북한 전력망의 현격한 차이를 고려하면 북한에 직접 전력을 송전하는 것은 당장 기술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었다. 또한 남북한 전력망 연계에 따른 국내 전력망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2500억 원을 들여 변환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수도권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수도권 서북 지역에 200만㎾의 화력발전소를 짓는 게 불가피하다는 것. 정부의 대북 전력 지원 계획은 기술적인 문제뿐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강정민 박사는 "국가 간 전력망 연계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에너지 안보가 보장되지 않아 친밀한 국가 간에도 이뤄지기 쉽지 않다"며 "북한이 과연 이런 정부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은 오히려 오래 전부터 러시아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방안이나 분산된 북한의 전력망에 좀 더 부합하는 풍력, 태양광과 같은 재생 가능 에너지의 보급, 노후화된 발전 설비 및 송ㆍ배전망 개선 등을 더 절박하게 요구해 왔다"며 "이런 긴박한 요구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정부가 던진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박사는 또 "전력 사정이 절박한 북한에게는 전력 지원이 이뤄지는 3년 뒤인 2008년은 너무 먼 시점"이라며 "북한이 당장 북핵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59% 대북 전력공급 제안 찬성
그렇다면 이번 정부의 대북 ‘중대제안’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어떨까.
핵을 포기하는 댓가로 북한에 직접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대북제안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 59%가 ‘찬성’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TNS코리아가 전국 만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설문조사 결과, 북한에 대한 전력공급에 대해 59%가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 "반대한다"는 쪽은 37.1%에 그쳤다. "찬성" 응답은 호남(73.1%)과 남성(68.0%), 30대(63.4%), 대학교 재학 이상(63.3%) 계층에서 특히 높았고 "반대" 입장은 충청(43.6%) 대구경북(46.1%) 여성(44.5%)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특히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계층에서도 "찬성"의견이 50.2%로 나타나 대북 중대제안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의적인 여론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대북 중대제안이 이뤄질 경우 기대되는 점은 "남북 화해무드 조성"(43%) "북 개혁개방 유도"(28.3%) 등의 순이었고 반대로 우려되는 점은 "북한의 약속 불이행"(41.3%) "떠맡게 될 비용"(26.7%) 등의 순이었다.
조사 참가자의 54.8%가 "한나라당도 문제제기는 하겠지만 결국 찬성할 것"이라고 답했고 한나라당이 반대할 경우에는 65.4%가 "국회 표결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선언까지 정부 역할에 대해 19.8%가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답했고 "어느정도 역할을 했다"는 답도 52.9%에 이르러 긍정적인 답이 72.7%를 기록했다. 또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62.8%가 "매우 잘하고 있다" 또는 "잘하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전력공급 핵포기 선언으로 이어질까
1994년 제네바합의 당시 북한은 핵 포기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한미일 3국으로부터 2기 200만㎾의 경수로 건설을 약속받았다. 11년 후인 지금에는 한국 단독의 전기 지원, 미국과 6자회담 참가국들로부터 다자안전보장을 받게 된다는 밑그림이 제시된 것이다.
중대제안은 현재 한 발도 전진하지 않는 핵 협상의 돌파구를 뚫는 데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다. 북미 양측이 핵 폐기와 보상의 동시 이행 여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허용 여부 등을 놓고 지루한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나온 이번 제안은 북한이 보상을 실감토록 해 건설적인 협상으로 나설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또 미국에게는 경제지원에 대한 부담을 덜어줘 대북 안전보장과 관계정상화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결국 중대제안은 6자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민족 장래를 위한 남북 균형 발전에 기여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이 제안을 선뜻 내켜하지 않을 수도 있다. 94년 당시 북한은 과거 생산 핵 물질과 핵무기를 온존하게 보유하는 대신 핵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 즉 현재 핵과 미래 핵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따냈지만 이번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핵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된다. 또 남한에 전기를 의존해야 하는 점도 마땅치 않아 할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송전 구상은 중대 제안의 핵심이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만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 협상안을 미리 밝히는 것은 부적절해 여타 카드는 공개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향후 정부의 과제는 이러한 중대제안과 비공개 카드들을 미국의 협상안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에 모아질 것이다.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미국의 신축적인 대북안전보장방식, 북측이 보다 안심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 등이 한미간에 적극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전력사정은
현재 북한 전력난은 어떤 상황일까.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두 차례의 핵위기와 북·미간 대립을 겪으면서 전력난이 심각한 수준이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북한의 전체 전력생산량이 인천시의 전력소비량과 맞먹을 정도로 열악하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2003년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1,607만TOE(석유로 환산한 t단위)이다. 1990년의 경우 북한이 2,396만TOE를 소비한 것과 비교할 때 67% 수준에 불과한 수치다. 1인당 에너지 소비량도 199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3년 현재 남한 주민(4.49TOE)이 북한 주민(0.71TOE)보다 6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소비구조는 석탄이 중심이다. 석유를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수입할 수 없는 경제적 상황때문이다. 2003년의 경우 석탄(69%)이 전체 에너지 소비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수력(18%),석유(7%),기타(4%) 순으로 나타났다. 석유(47%),석탄(23%),원자력(15%),액화천연가스(11%) 순으로 의존하는 남한의 소비구조와는 매우 다르다.
북한은 전력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수력·화력발전소는 물론 지방별 중소형 발전소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발전설비 용량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1990년,2000년,2003년 발전 설비용량은 각각 714만㎾,755㎾,777만㎾로 큰 차이가 없다. 발전 설비용량이 그나마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는 데 반해 발전량은 1990년 277억㎾h,1995년 230억㎾h,2003년 196억㎾h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원유 도입량은 1990년 1,847만배럴에서 2003년 420만배럴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만성적인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운동도 펴고 있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전력 소비를 통제하기 위해 카드에 표시된 만큼만 전력을사용할 수 있도록 한 ‘카드식 적산전력계’까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