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사고는 한 가정을 망가뜨리는 것’ 환자 입장에서 억울함 대변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CS의 이인재 변호사는 성공한 젊은 전문변호사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자마자 변호사로 나서 ‘의료사고 전문변호사’의 한우물을 파며 명성을 얻고 있다. 고려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99년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곧바로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 변호사에겐 다양한 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의료사고를 전문분야로 선택한 것은 사법연수원 시절에 겪은 아내의 유산이 계기였다. 아내를 진료한 병원 원장이 당시 사법연수생이던 이 변호사에게 “의료법을 전공해 보라”고 권유한 것.
이 변호사는 “아내의 경우는 의료사고와 거리가 멀었지만, 아내를 따라 병원을 드나들며 억울하게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들의 피해구조를 위해 활동할 수 있다면, 변호사로서 작지 않은 보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의료 쪽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직업적 ‘소명감’을 강조한 이 변호사는 “의료사고는 한 가정을 망가뜨리는 사건이다. 그런 환자 입장에서 억울함을 대변해 주는 변호사가 꼭 필요하다. 이 분야에 매진해 환자와 의사가 공존하는 사회에 필요한 제도 마련이 변호사로서 나의 궁극적 목표”라고 확고한 의지를 밝혔다.
환자 상담하면 승소 가능성과 원·피고의 과실비율까지 가늠하는 전문성 쌓아
법대 출신으로 의료분야의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기까지는 이 변호사의 부지런한 노력이 뒤따랐다. 그는 간호사, 의사, 인턴들과 매주 한 번씩 의학용어를 공부하며 임상이 아닌 판례를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간호기록지와 의사지시서 등의 차트를 펼쳐놓고 동료 변호사들과 모르는 내용을 서로 물어가며 공부하기도 했다. 의료분야 지식을 쌓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약어가 많다는 것. 의학용어집을 찾아봐도 없기 때문에 전문가를 통해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은 ‘선무당’이 다 됐다며 웃어 보이는 이 변호사는 의사출신 변호사가 아닌 법조인으로서의 의료전문변호사가 갖는 경쟁력에 대해서도 비전을 제시했다. 이러한 남다른 노력 끝에 이 변호사의 선택은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H법률사무소에서 3년 6개월간 경험을 쌓은 이 변호사는 2005년 9월 지금의 법무법인 CS로 옮겼다. 일종의 독립을 한 셈으로, 그는 모두 8명의 변호사가 포진하고 있는 법무법인 CS에서 의료 쪽을 전담하고 있다. 물론 그가 다루는 사건의 절반이상이 의료사고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일 만큼 이 분야의 전문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의료사고의 피해자인 환자 또는 유가족을 대리해 병,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원고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의료사고 전문 10년째인 지금은 진료차트를 읽어 내는 것은 물론 웬만한 증세는 진단(?)도 할 수 있을 만큼 의학에 관한 지식을 많이 축적했다고 한다. 또 환자를 상담해 보면, 소송을 제기했을 때의 승소가능성과 원, 피고의 과실비율까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쌓아 나가고 있다.
이 변호사의 사무실 문 앞에는 부설 보건환경문제연구소 간판이 함께 걸려 있다. 지난 2005년 개설했는데 의료 관련 사건 소송을 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 각 분야 전문의와 변호사, 의료계 교수 등과 의료 포럼 구성해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갈 생각이다”고 말했다.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 활동하며 무료변론도
이 변호사는 “아파도 진료 못 받는 일이 생기면 안 되듯 돈 없어서 소송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의료사고 피해를 입은 환자와 가족을 위해 국가 차원의 구제책이 마련돼야 한다고”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늘 이렇듯 환자측 목소리를 내다보니 의료계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는 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내 가족이 의료사고를 당해 2,3년 걸쳐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2011. 3. 11. 국회에서 통과된 ‘의료분쟁 조정 및 중재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의료분쟁조정중재위원회가 제 기능을 잘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 의료계, 위원회, 보험회사가 각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느 분야나 고충이 따르듯 의료소송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법률사무소와 달리 진료기록을 복사하고 때에 따라 의뢰인과 병원에 동행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니 격무에 시달리며 스트레스도 배가 되는 실정이다. 또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의 응어리진 마음이 대리인에게 전이될 때 역시 안타까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특히 형편이 안돼서 간병인조차 쓰지 못하는 가정을 볼 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는 이 변호사는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보니 무료변론이나 실비만 받고 변론해 주는 때도 많다.
이 변호사는 또한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구성원으로 이러한 뜻을 함께 하는 의료소송전문 변호사들을 구성하고, 돈이 없고 형편이 안 되는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하여 소송구조 신청 등 무료변론에 준하는 일을 하는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성형수술 부작용 집단 소송, 첫 승소 이끌어
그가 의료전문 변호사로서 승소판결을 받아낸 대표적인 사건이 2008년 11월 1심 승소판결이 내려진 일명 ‘종아리근육 퇴축술 사건’이다.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종아리가 날씬해지는 종아리근육 퇴축술을 받은 뒤 통증과 종아리 함몰, 양쪽 다리 비대칭 등의 부작용을 겪은 피해자 27명이 의사 2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24명이 승소한 사건이다. 피해자 1명당 400만~500여만 원씩 모두 1억 3,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명하는 판결이 내려져 피고 측이 항소했으나, 나중에 항소를 취하해 원고 승소로 확정됐다.
이외에도 많은 의료소송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성형수술이 유행하며 성형 부작용에 따른 상담을 해오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의사 출신이 아닌 이 변호사는 특히 시간을 쪼개 대학원의 의료법 과정 등을 수강하며 부족한 의학지식을 메워나가고 있다. 변호사가 된 이듬 해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등록해 6개월 기간의 ‘의료와 법’ 과정을 수료했으며, 모교인 고려대 법무대학원에서 의료법을 전공, 2년6개월 후인 2006년 법학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9년에는 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대학의 생명의료법연구소가 공동주최한 각각 3개월씩의 보건의료법 연구과정과 생명·의료법 연구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변호사는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중앙대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의료사고 예방에 관한 강의도 나가고 있다.
또한 강동노회 인권위원회를 통하여 김종업 목사와 함께 매년 봄과 가을에 2회에 걸쳐 강동노회 소속 교회를 돌면서 의료사고 예방강의를 2006년부터 5년째 해 오고 있다. 이렇듯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이 변호사이지만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사건 서류를 통해 남의 인생을 해결해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을 못 느낀다면 ‘비양심적 변호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변호사의 사명이다”라고 단언할 만큼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고객은 늘 옳다, 한사람의 억울한 피해자가 입증을 못해서 패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각오로 오늘도 의뢰인들의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