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자영업 자격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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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자영업 자격증제
  • 글/ 정숙경 기자
  • 승인 2005.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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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대책 손질…1주일만에 후퇴 ‘갈팡질팡’
최근 논란을 빚은 정부의 미용, 세탁, 제과업 등에 대한 자영업 자격증제도가 전면 손질된다. 특히 미용업에 대한 자격증제도 도입은 전면 철회되고, 세탁과 제과·제빵업의 자격증제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6일 오후 국회에서 '영세자영업자 종합대책'에 대한 당정간 협의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일주일여만에 당정간 협의과정에서 영세자영업자 종합대책이 전면 백지화됨에 따라, 민생과 관련한 주요 정부 정책의 신뢰성은 큰 타격을 입게됐다.

미용실이나 세탁소, 제과점 등의 창업을 자격증 도입으로 제한하는 것을 뼈대로 한 정부의 영세자영업자 대책 가운데 주요 내용이 발표 일주일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당정의 이런 합의는 정부의 주요 정책을 일주일만에 번복한 것이어서, 정책 일관성 상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대신, 영세 음식업·숙박업·운송업자 등의 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가가치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정이 이처럼 자영업자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지난달 정부가 자영업자 대책을 발표하자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영업 창업을 막느냐"는 비판 여론이 비등했기 때문.



전면 백지화 무엇이 문제인가
"요즘 새로 창업하는 제과점은 대부분 자격증이 있어야 창업을 허용해주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의존합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으며 새삼 자격증제를 들고 나온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정부가 최근 잇따라 발표했던 영세 자영업자 대책과 재래시장 대책에 대해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불만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었다.
이번 정부 정책의 주요 내용은 세탁소, 제과점, 미용실 등을 열 때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 신규 창업을 억제하고,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를 프랜차이즈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이 대책들이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를 비롯한 서민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미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포화상태인 상황에서 새로 자영업자를 프랜차이즈로 유도한다고 해도 이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었고 여기에 현재의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는 기본적으로 자격증 소지자들을 고용한 경우에만 창업을 허용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에선 기존 자영업자에 한해 자격증 없이도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프랜차이즈로 전환할 땐 신규 창업과 마찬가지로 자격증이 필요한 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은 엇갈렸다.

동네가게 '도미노 퇴출' 막을 수 있는 방법?

"예를 들어 '불닭' 식당이 잘 된다면 반경 몇 킬로미터 내에 불닭 식당이 몇 개씩 생긴다. 동네시장이 더 크는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경쟁하다보면 한 두 개만 망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전부 다 망한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직장에서 나온 사람들이 기술이 있나, 노하우가 있나? 가진 건 돈(퇴직금)밖에 없으니까 일단 먹는 장사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사석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영세자영업자 문제의 원인을 "가진 것은 돈밖에 없는 퇴직자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장사에 뛰어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조사도 하지 않고, 노하우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무리한 경쟁을 일으키다 보면 다 같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31일 정부가 내놓은 '영세자영업자 대책'은 이 같은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해보자는 고민이 담겨 있다. 정부는 우선 영세자영업자 문제의 원인을 '공급과잉'으로 꼽았다. 같은 업종의 동
네가게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다보니 영세함과 경영악화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정부 조사 결과에서도 자영업자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과잉진입(66.7%)'이 1위를 차지했다.
정부는 공급과잉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강력한 '시장진입 통제책'을 제시했다. 자영업종별로 개업요건을 강화하고, 이미 과포화 된 업종에 대해서는 업종 전환을 적극 유도한다는 게 정부 대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우선 창업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기로 했고 상권별, 업종별, 밀집도 등 정보를 창업자들에게 미리 제공해 같은 지역에 비슷한 가게가 생기지 않도록 유도해 나가겠다는 얘기다. 아울러 창업을 할 때는 의무적으로 컨설팅과 교육을 받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정부가 창업자들을 위해 지역별 정보와 경기 동향 등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 하다. 그 동안 창업자들은 창업 예정 지역의 정보 등에 어두워 과잉경쟁을 일으키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애당초 동네가게의 도미노 퇴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



음식, 숙박, 운송업종 부가세 감면 혜택
이번 정부 대책에 대형 할인점에 대한 규제책이 빠졌던 것도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불만이었다. 서울 대림동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지난 99년부터 수퍼마켓을 운영해온 최아무개씨는 "대형 할인점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정작 할인점 규제에 대한 내용은 왜 없느냐"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던 것이다. 최씨는 "할인마트에서 특별세일까지 해가며 물건을 상식 이하의 가격에 파는데도 규제할 방법이 없다면 이는 인근 중소상인은 죽어나가라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영세자영업자를 살린다면서 자격증이니, 프랜차이즈를 논하기에 앞서 대형 할인마트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자영업자들은 조직적으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2일 오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이사회 회의실에서 열린 '대형유통점 확산저지 비상대책위원회'에선 참석자들이 자영업자 대책을 '일방적 구조조정'이라고 규정하고 정부 정책의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던 것이다. 창업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시장질서에 반하는 정책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정보제공이나 컨설팅 의무화 등이 오히려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서민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지적도 전면 백지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발표한 영세자영업자 대책이 실효성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러한 비판과 불만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자 당정은 협의를 거친 뒤 일주일 만에 정책 전면 재검토를 발표했다. 음식과 숙박, 운송업종의 영세자영업자에게 부가가치세 감면혜택을 주기로 했고 이들 세 가지 업종에 대한 세율을 낮추는 쪽으로 적극 검토하되 구체적인 세금인하의 기준과 폭은 당정간 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오영식 원내대변인은 "세수감소 효과가 적으면서도 자영업 전반의 경영부담을 완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부가가치세 감면안을 강구키로 했다"며 "현재 40%에 이르는 음식·숙박업, 운수업과 30%에 이르는 기타서비스업의 '간이과세자 부가가치세액 산정 시 업종별 부가가치세율'을 단계적으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정은 또 지역별 업종별 상권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시스템을 마련하기 했으며, 100개 상권정보 조사와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비용 50억 원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앞으로 전국 주요 500개 상권에 대한 정보제공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이다.
재래시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비하지 않고, 상인 스스로 지역 특성에 맞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데 합의했다. 또 음식과 소매 및 이·미용업 등 경쟁이 심한 업종에 대해선 점포 개설에 대한 컨설팅과 6만 명에 대한 교육을 올해 중 추진하기로 했다.


김근태 장관
정부 대책이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책보다는 자격증 도입에 따른 진입장벽 신설, 쇠퇴한 재래시장에 대한 퇴출 조치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다수 국민의 거센 반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정부는 지원책 위주로 전면 재검토키로 한발 물러섰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 김근태 장관은 "결과적으로 많은 국민과 의원들 걱정을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앞으로 정부 대책이 국민·통합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자격증제 도입을 통해 자영업 창업을 억제하려던 영세자영업자 대책을 재검토를 발표하면서 결국 '오락가락'하는 정책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정부가 대다수 자영업자들의 실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 채, 부실·졸속대책을 내놨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의 자영업위기와 재래시장 위기는 전적으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올려대는 임대료, 턱없이 높은 가맹점 수수료, 서민을 위해 저리대출을 하는 금융기관의 부재,
지역상권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대형할인점의 과다 입점 등에 파생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그대로 존속시킨 채, 아이디어 정책 접근이나 주먹구구식 대책을 제시한다면 도리어 자영업자와 재래시장의 몰락만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정책 방향이다. 자격증제는 기존 관련 업자만을 유리하게 해 퇴출은 커녕 안주할 빌미를 제공할 것이며 창업을 꾀하는 입장에서는 자격증 취득 비용이 추가된다. 제도 도입 직전에 출혈 창업이 급증할 수도 있다. 이처럼 자격증제 도입은 자영업 퇴출 유도,진입 억제라는 정책 취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시장경쟁을 통한 진입·퇴출을 왜곡시킬 위험성마저 제기된다. 창업과 폐업 결정은 어디까지나 각 경제주체의 몫이다.
정부는 창업을 위한 각종 정보, 교육훈련, 상담 제공 등 간접적인 지원에 머물러야 옳다. 오히려 정부는 생계형 창업 압력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문제의 본질은 일자리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화가 정착할 때 창업 컨설팅도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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