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右傾化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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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右傾化바람
  • 글/ 경을현 기자
  • 승인 2005.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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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패권주의 침략야욕 ‘일본우경화’
한일 양국의 막판 타협으로 신풍호 해상 대치사건은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살얼음을 걷는 듯한 양국관계는 당분간 평행선을 이어갈 전망이다. 일본 지도층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역사교과서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일본 내 한류(韓流) 열풍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대중들의 한류(韓流)와 대조적으로 지도층과 정치권의 한국에 대한 인식에는 또다른 한류(寒流), 즉 차가운 기류가 흐른다.

정치적 목적으로 일본 지도층은 올해 들어 끊임없이 한일관계를 위기국면으로 몰아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우리측의 거듭된 요청에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지 않았고, 집권 자민당은 우익 역사교과서 제작을 물밑에서 지원했다. 다카노 도시유키(高野紀元) 주한 일본대사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외무성 사무차관 등 책임 있는 외교관들도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한일해경이 동해상에서 30시간이나 대치한 신풍호사건의 배경에도 일본 관방성과 농림수산성 최고위층의 강경론이 반영됐다는 지적이다.


일본우경화(右傾化) 바람의 가속화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동아시아에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어닥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후 60년째인 올해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의 개정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드시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목표는 사회 전반의 우경화 움직임에 따라 현실화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는 어떤 배경 하에서 가속화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1990년대 들어 우익 활동토양 마련

전후 일본 정계에선 강경 우파가 득세하는 시절이 별로 없었다. 현 일본 정계 대표적 우익 정치인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가 정권을 잡을 당시만해도 강경 우파 세력이 포진할 공간은 별로 없었다. 1970∼80년대엔 전쟁과 과거사에 대한 책임론이 일본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전후 50년을 넘어 1990년대 들어 새로운 세계관과 역사관을 가진 전후세대가 사회 곳곳에 포진하면서 우익들이 활동할 토양이 마련돼 왔다. 사실 독도 문제나 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해 일반 국민은 무관심하며, 대부분은 독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조차 모른다. 일본에서 과거사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시비를 주도하는 측은 新보수주의자들이다. 자민당 내 역사검토위원회, 일본의 앞날과 역사 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교육기본법 검토특명위원회,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산하 국회의원 간담회, 납치대책의원연맹, 역사 교과서를 생각하는 초당파 국회의원 연맹 등 다양한 조직이 이들의 활동무대이다.

일본 우익, 대거 내각의 주요 포스트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의 각료들은 대부분 이런 모임 한두 군데는 관여하고 있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들어서면서 대거 내각의 주요 포스트에 기용되고 있다. 과거사에 대한 망언을 일삼는 인사도 이들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발표한 대일 외교 발언에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면서 반발하는 인사들도 그들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 아소 타로(麻生太郞) 총무상, 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成彬) 문부과학상,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환경상 등이 강경 인사에 속한다. 지방정부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것도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중앙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지시나 지원 등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본 정치인 중 우경화를 이끄는 대표적인 정치인들을 신국방족(新國防族)이라고 칭한다. 이들은 외교안보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으며 이 분야에 특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안보관을 가진 40대 전후 젊은 세대들이며 여야를 망라하고 있다. 대표적인 신국방족으로는 민주당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3),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晉三51),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47) 등이 있다. 이들은 향후 평화헌법의 개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미일동맹을 철석같이 견지하고 방위산업 분야에도 밝은 편이다. 또한 이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국제 감각을 갖추고 있으며, 애국심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정책논리를 중시한다.



정치·경제·심리적 불안속에서 진행
일본의 우경화 바람은 국제정세의 급변과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변동, 일본 국내정치의 지각변동, 금융위기 및 경제침체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심리의 확산 등 여러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파악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일본인들은 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혼란, 경제의 장기불황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사회심리적인 차원에서도 일찍이 전후체제 하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우경화 추세는 이러한 정치·경제적, 사회·심리적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냉전종결에 따른 세계질서의 급변상황과 그에 따른 동아시아의 안보정세 변화에 대해 일본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걸프전쟁에서 130억의 전쟁비용을 지출하고도 ‘땀과 피를 흘리지 않은 얼굴 없는 국제공헌’이라는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의 취약성을 새삼스럽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 의해 감행된 핵개발 시도, 대포동 로켓의 개발 및 실험발사 그리고 중국의 핵실험 등 동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는 안보위협사태에 대해 일본이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피동적인 자세밖에 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늘어나게 되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유사법제화 명분으로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을 내세운다. 이에 미국의 신보수주의 체제는 일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원군이다. 일본의 재무장을 통해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한국과 일본을 MD 체제에 편입시켜 동북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꾀하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이다. 여기에 냉전 종결에 따른 세계질서의 변화와 안보 상황의 변화에 일본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실패했다는 자성은 일본 경제의 총체적 위기상황과 맞물리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혁신세력 몰락으로 자민당 정권주도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촉진시키고 있는 정당정치 차원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1993년 55년체제의 붕괴와 그에 수반한 혁신적 정치세력의 몰락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 해체 이후에 내외적 조건이 변하면서 일본의 戰後 민주주의 체제에 균열이 발생한다.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사회당의 완전 몰락이었다. 55년체제 하에서 집권 자민당의 보수노선에 대항하는 제일野黨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던 사회당은 두 번에 걸친 총선을 거치면서 완전히 몰락하여 일개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정치는 혁신세력이 소수파로 전락하고 이른바 정당의 총 보수화로 귀결되게 되었다. 일본의 현재 연립정권에서 최종적인 정책결정권을 누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자민당이며 이러한 속에서 자민당이 주도하는 우경적 속성이 농후한 법제안이 국회에서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속속 통과되고 있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전후 유지해왔던 국가체제를 대폭 개편하여 21세기의 새로운 국가전략을 추구한다는 목적 하에 정치·안보·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걸친 대대적인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 움직임은 일본 내외로부터 메이지(明治)혁명과 전후개혁에 비견되는 제3의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 속에서 무엇보다도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사회전반의 급속한 우경화 추세이다.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추세는 역사인식의 반동화와 국가 상징의 강화 그리고 우익세력의 대중화 등으로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이러한 우경화 추세는 기본적으로 냉전체제의 종결에 따른 일본의 새로운 국가진로 모색과정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미국 안보분업론이 군사대국 부채질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미국의 태도다. 미국은 자국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던 군사적 리스크를 일본이 제한적으로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 유사법제, 주변 사태법 등은 이와 같은 미국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며 이는 일본의 군사행동을 제약하는 헌법 9조의 개정 요구로 연결된다. 그간 일본 정부의 일관된 안보정책은 안전보장을 미국에 위탁하는 ‘안보 무임승차’였다. 즉 미국이 군사적 리스크를, 일본이 비용을 분담하는 일종의 전략적 거래인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한 일본측의 대응, 즉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의 재정부담을 늘리는 형식으로 유지돼왔던 양국의 분업관계가 냉전 해체 후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적 리더십에 덧붙여 아시아에 군사적,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일본 자본 및 우파의 이해관계가 미국의 요구와 맞물리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 내에서 일고 있는 우려의 목소리
일본 내에서도 일본 사회가 최근 우익쪽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많다. 일본의 3대 일간지중 하나인 아사히신문의 우에노 쇼이치(上野尙一)발행인은 세계신문협회(WAN) 총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해, 금년 5월 31일 녹화한 ‘아리랑TV 특별대담’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가로서 주변국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신사 참배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성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SBS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일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강하게 비판했다. 5월 25~27일 진행된 녹화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우익 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등 현재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남은 여생을 일본의 우경화를 막는 데 바치겠다”고 밝혔다.

일본 군사확대로 아시아 평화 위협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우경화 추세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확대가 나아가 지역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의 추구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군국주의 일본으로부터 온갖 희생을 강요받았던 아시아인들은 현재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군사적 보통국가화 프로젝트를 경계와 불신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은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일본이 언젠가는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아시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일본이 재무장할 경우 자신들이 가장 위협받는 국가가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일본 사회의 이런 우경화 움직임은 결국 일본의 헌법 개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위대가 아닌 군대를 보유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동북아시아 관련국들의 중무장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이로써 일본의 대륙 침략 전과 같은 또 다른 위기상황이 재발되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군사력 강화와 해외 파병 확대를 공공연하게 추구하는 일본의 움직임은 앞으로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한 주변국의 불안과 불신이 해소되지 않으면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동북아공동체도 만들어가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단순한 우려 표명에 그칠게 아니라 과거 일제의 피해를 입었던 중국 등 아시아 나라와 공동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본내 양심세력과 연대하는 시민사회의 노력도 긴요하다.


일본의 우경화, 그 역사의 뿌리.
오늘날 일본에서 일고 있는 우경화 바람은 ‘국수주의’ 또는 ‘국가주의’로의 회귀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일본 우익의 사상적 기조는 존왕(尊王)주의 정신(精神)주의의 강조가 특징이다.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패전 때까지 일본의 우익은 신화에서 나오는 덴노(天皇)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왕은 단일 혈통을 지녀왔다고 신성(神聖)시해 왔다. 나아가 2차대전으로 외세의 점령을 당하긴 하였으나 그 전에는 역사적으로 칭기즈칸의 침략도 막아냈다고 하는 불패(不敗) 일본적 가치에 대한 몰입이 일왕을 핵으로 하는 일본정신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정착된 것이 일본 우익사상의 본질이다.

여기에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정한론(征韓論) 이후 줄기차게 전개된 아시아 대륙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첨가된 이데올로기적 슬로건이 바로 팔굉일우(八紘一宇), 즉 ‘전 세계가 한 집안이나 같다’는 생각이다. 이 낱말을 지은 것은 다나카 지가쿠(田中智學)로서 한창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던 1903년의 일이었다. 일본 불교의 승려인 그는 1885년에 이미 안국회(安國會)란 우익단체를 조직하고 1914년에는 국주회(國株會)를 조직하여 국체(國體)와 법화경(法華經)을 하나로 만들라고 주장한 국가주의자로서 2차대전이 시작되는 1939년까지 살아 있었다. 다나카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일왕강림 신화에서 일본 최초의 왕이 명령하기를 ‘나라에 고을이 많이 늘어나고, 천하가 가족들로 차게 하라’고 하였다고 하여 만들어낸 단어로 ‘팔굉일우’ 즉 ‘전세계가 한집이나 같다’는 주장이었다. 그와 같은 생각을 토대로 할 때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것은 침략이 아니고 세계는 모두가 하늘이 보내준 천황의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서양의 침략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던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합쳐 일본이 서양세력과 맞서라고 이웃 나라에 도와 주러 간 것이 무엇이 나쁜지 모르겠다는 논리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전반기에 걸쳐 일본의 우익들이 주장하였던 ‘범(汎)아시아주의’ ‘동아시아 신질서’ ‘대동아공연권’ ‘일본적인 것의 확산’ ‘일본정신’의 구현 등은 ‘팔굉일우’라고 하는 일본 중심의 세계통일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침략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슬로건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에서의 우익사상이란 것은 자유주의와는 전체 연관이 없는 공허한 이데올로기로서 아무 데나 두들겨 맞춰 일본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려 하였던 국수주의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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