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돌이 만들어 낸 새로운 창조, 디자인 경영
사람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는 생존과 활동에 필요한 외부자원을 끊임없이 공급받아야 한다. 하나의 생명과 다름없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생산과 이윤창출의 순환구조로 구성된 기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자본, 사람, 지식 등 여러 자원들이 어우러져 기업의 양분이요, 동력이 된다.
“경영에 있어서 외부자원을 얼마나 확보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용하는가가 관건이지요. 결국 그것이 성과를 폭발시키는 신관이 되는 셈입니다.”
한국디자인경영연구원 김호곤 원장은 효율적 경영을 통한 성과의 극대화라는 주제를 두고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로 운을 뗐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경영은 가장 이성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여기에 가장 감성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미한다면 어떨까요.”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의 극단에 존재 하는 두 행위의 결합. 그는 인류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충돌을 통한 또 하나의 창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제 김 원장의 말대로 21세기 글로벌 세상은 양적 팽창과 물리적 전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사회를 점령하고 있던 이성의 틈새로 감성이 비집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겉포장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제품의 외관, 즉 디자인이 성능에 버금가는 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치 않다. 이는 전통적으로 제품이나 기업의 경쟁우위의 원천이었던 가격과 기술이 보편화된 까닭이다. 비슷한 가격과 성능으로는 각 기업이 차별적 우위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디자인’을 하나의 경영자원으로 인식하고, 성과 향상을 통한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관리를 도모하는 개념이 등장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신성장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디자인 경영’이다.
경영학도 출신의 디자이너

결과적으로 김 원장은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디자인 경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는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경영학을 전공한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즉,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이라 할 수 있는 경영학을 공부한 사람이면서도 감성적 행위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디자인 개발과 비즈니스를 수행했기에 누구보다도 두 영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김 원장의 독특한 이력은 세계의 디자인 경영 분야에서도 희귀한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디자인 경영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에 대한 정확한 ‘인식’입니다. 목표나 요소로서의 디자인과 전략적 수단으로서의 디자인 인식의 차이는 결과 측면에서 더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즉 혁신적이고 획기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정체성을 함유한 디자인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될 것입니다. 전자는 디자인을 목표나 요소로 보는 경우이고, 후자는 전략적 수단으로 보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우리나라는 디자인 경영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상당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라는 방법론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기업이 디자인 경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막상 이를 도입하기로 결정해도 실행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에 마땅한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탓에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국내 디자인 경영 전문가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부분입니다. 기아자동차가 외국의 디자인 경영전문가를 영입했다거나 신세계 그룹의 고위 임원이 디자인 경영전문가를 찾아 유럽으로 떠났다는 등의 소식을 접하는 순간 저는 피가 역류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20여년을 디자인 경영에 몰두해 온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대상에 김 원장 자신이 선택되지 못해서 느끼는 자괴감이 아니었다. 다만, 일신의 안락과 성공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대한민국의 디자인 경영문화와 지식을 전파하자’ 다짐했던 자신의 초심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결국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은 ‘보편적인 원리와 그것의 실행’이었다. 즉 보다 더 기본에 충실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디자인 경영에 대한 인식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빠르고 넓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매년 수많은 젊은이들이 디자인 경영을 공부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고 있다. 이들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지식을 얻어서 돌아온다면 개인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는 국내 디자인 경영의 전문가로서 2010년 하반기부터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논문의 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이미 발표한 디자인 경영의 콘텐츠와 관련한 논문 8편을 비롯해 현재 준비 중인 논문만도 10여 편이 넘습니다.”
그는 국내 디자인 경영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인 ‘콘텐츠 부족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력투구하고 있는 논문작업도 이러한 우려에 대한 김 원장 나름대로의 해소노력이었던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디자인 경영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이는 일회성 이벤트 또는 뉴스꺼리로서의 디자인 경영이 아니라 기업이나 조직이 디자인 자원을 이용하여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확보하거나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구축을 지향하라는 김 원장의 간곡한 권유이자 호소였다.
또한 그는 디자인 경영을 담당한 본인의 능력으로 또는 열심히 공부해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되 그 전문가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떤 시대와 분야였든 선각자와 개척자가 존재했다. 그들은 역사의 분기점이 되었고, 때론 외롭고 쓸쓸하게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곤 했다. 이런 점에서 디자인 경영 전문가 김호곤 원장을 새삼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한다. 그가 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이른 아침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디자인경영연구원 김호곤 원장
ㆍ국민대학교 경영학 박사
ㆍ한국산업디자인대상 우수디자인(2002)
ㆍ서울텍스타일디자인경진대회 특선(2003)
ㆍ대한민국 혁신 경영인 대상(2005) 및 각 언론사 표창
ㆍ신한시스템 대표(1987-2001)
ㆍ한국디자인경영연구원장(2001- )
ㆍ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외래교수(2006- )
ㆍ대한리더십학회 이사(2010- )
ㆍ지식경제부 ‘지식경제 기술혁신 평가단’ 위원(2010- ) 외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