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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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귀국
  • 글/ 정숙경 기자
  • 승인 2005.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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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김우중, '세계 경영'이라는 이름의 도박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 경영…재벌 체제의 빛과 그림자

김우중. 그가 돌아왔다. 31세 때 자본금 500만원으로 회사를 창업, 32년만에 41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신화의 주인공. 하지만 지난 14일 5년 8개월 간의 오랜 해외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그는 초췌한 모습의 '실패한 기업인'일 따름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경영을 외치던 그는 한때 재계 서열 2위 대우그룹의 수장이었으며 고속성장 시기의 한국 경제를 상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5만 대우인의 선봉장으로 자기의 뜻을 유감없이 발산했고 수출 한국을 주도했다. 그러나 무리한 차입경영에 발목잡혀 대우그룹은 대량실업의 후유증만 남긴 채 공중분해 되었다. 과연 대우그룹의 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세계경영의 신화로 군림하던 김우중은 귀국시 배포한 사죄의 글에서 국민들의 거센 비난을 의식한 듯 스스로를 '실패한 기업인'으로 규정해야만 했다. 그는 지금, 한평 남짓한 구치소에서 잠을 청하다 검찰 조사실로 불려나와 금융비리를 저지른 죄목으로 검찰의 추궁을 당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세계경영으로 힘차게 도약하며 전 세계를 넘나들던 대그룹이 어떻게 공중분해 되었으며 교훈은 무엇인가? 대우는 왜, 어떻게 침몰하게 된 것일까?


미스테리 기업, 김우중 신화 몰락
김우중 전 회장의 귀국으로 김우중과 대우그룹, 그리고 '세계경영'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대우그룹이 몰락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에는 '미스터리 기업, 대우'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 여기에는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재계 서열 2위까지 치고 올라선 '김우중 신화'가 덧칠된다. 이 뒤편에는 "대우그룹 몰락은 정치적 타살인가, 아니면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세계경영의 자멸인가?"를 둘러싼 엇갈린 평가가 깔려 있다.
1983년 김우중 회장의 미래 설계에 대한 인터뷰 당시 그는 '이 회사를 떠나 새롭게 제2의 사업을 벌여 일본 소니나 독일의 라이카 같은 최고 브랜드를 만들어놓고 인생을 끝내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우는 스스로 몰락했고, 김우중씨도 '실패한 기업인'일 뿐이다. 만약 그때 전문경영인에 넘겨주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기술에 집중했다면 멋진 무대에 오를 수 있었
을 텐데, 첫 번째 무대에서 그는 너무 오래 끌었다. 1.3평. 어느 날 느닷없이 돌아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수감된 서울구치소 독방의 크기다. 세상이 비좁다 할 정도로 국경을 넘나들며 '세계경영'을 호령하던 그가 머물기엔 너무나 협소한 방이다. 이곳에서 고희를 눈앞에 둔 김우중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현재 김 전 회장의 혐의는 ▲41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10조원의 사기 대출▲2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화 밀반출 및 사적 유용으로 나눠진다. 여기에 밀반출된 외화 중 일부를 비자금으로 만들어 정·관계에 로비했거나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도 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BFC(British Finance Center)를 통해 불법 유·출입된 200억 달러의 용처다. 검찰은 매년 거래 금액이 5조∼8조원에 달했던 것을 감안해 이 금액을 합산해 김 우중이 25조원(2000억 달러)을 외국으로 밀반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가운데 157억 달러는 외화차입금 상환에 쓰였고 30억 달러는 국외사업 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파
악했다. 하지만 나머지 13억 달러는 쓰임새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실탄'은 부족, 전선만 넓은 세계경영

'대우의 일터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는 광고 카피가 보여주듯, 열사의 사하라에서 혹한의 시베리아까지 '대우 제국'을 건설한다는 세계경영은 기술과 품질을 크게 따지지 않는 동유럽 등 신흥시장에 값싼 대우 제품을 팔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처럼 당시 대우는 그들만의 독특한 금융 노하우를 축적, 파이낸싱(금융)의 귀재라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를 위해 김우중 회장은 풍부한 해외 금융인력과 금융 노하우를 갖춘 인력을 최고 경영진에 대거 기용했고, 대우의 세계 경영은 98년을 정점으로 물량면에서는 세계 수준급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40개 계열사에 해외법인만 300개가 넘었고, 국내인력이 10만 명인데 비해 해외인력은 20만 명이 넘었다. 일단 외형과 물량 면에서 대우는 세계경영에 걸맞은 기업의 모양을 갖추었다.
또한 세계경영 사령탑으로서의 김우중은 비전과 결단력, 위험을 기회로 인식하는 도전적 자세, 남다른 자금조달 능력이 돋보인다고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우는 국내에서 그랬듯, 해외에서도 차입에 의존하는 '외상경영'으로 인해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항상 위태위태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의 귀재였지만 거꾸로 그것 때문에 후일 감당 못할 빚더미에 짓눌리게 됐다는 것이다.
비행기를 사무실 삼아 전세계를 누볐던 김우중씨의 세계경영은 대규모 금융회사들과 고리를 맺어 싼 해외 자금을 더 많이 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투자는 많았지만 투자자금은 거의 회수되지 않았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다른 기업들이 모두 축소경영에 나설 때 대우는 오히려 세계경영을 기치로 해외투자를 지속했다. 또 쌍용자동차까지 전격 인수해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를 다 집어삼킬 기세로 멈출 줄 몰랐던 세계경영은 "실탄은 부족한데 전선만 넓게 펴는" 확장경영이었고, 결국 '경영 실패'로 이어졌다.
김우중씨의 경영철학은 "국제금융을 알아야 사업이 보인다. 수익성 낮은 사업도 국제 자본시장에서 싼 이자만 끌어올 수 있다면 해볼 만하다"였고, 대우는 빚이든 뭐든 돈만 끌어들이면 된다는 김우중식 경영에 빠져 있었다. 1999년 6월 말 대우계열 총부채 중 15.4%인 12조원(99억달러)이 외화채무였고, 이 중 70억달러가 외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였다. 나란 안팎의 빚으로 베팅하던 김우중식 경영은 실탄이 바닥나면서 결국 폭발하고 만 셈이다.

1등 제품 없이 파격적 마케팅 난무
1997년 11월 IMF 관리체제가 도입됐다. 국가경제가 파탄 나서 경제주권이 몰수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발단은 재벌기업의 집단부실화가 금융산업의 집단부실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실 채권의 누적으로 금융산업이 지급능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부채비율을 200%이하로 낮추도록 강압했다. 다급해진 재벌기업들은 은행부채를 갚으려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대량해고를 단행하고 생살 도려내듯이 계열기업과 자산을 처분했다. 그런데 대우그룹은 거꾸로 갔다. 대우그룹은 이보다 훨씬 이전부터 기술적 지급불능상태(technical default)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분식회계로 은행돈을 더 끌어쓰거나 회사채를 더 발행하는 등 위기모면에 급급했다. 그 사이에 대우그룹의 해체를 재촉하는 시한폭탄은 요란한 소리를 울리고 있었다.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1999년 당시, 한국금융연구원은 대우그룹이 이미 1997년 말에 '파산'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룹 해체 직전 대우의 부채 비율은 무려 580%에 달했고, 1997년 말 IMF 체제 진입 당시 대우그룹은 이미 사실상 기술적 파산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에 한국금융연구원은 "대우 전체의 매출 규모 35조원 정도에 매출이익과 금융비용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상으로도 회생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대우그룹이 무슨 정치적 음모에 의해 갑작스럽게 타살된 것이 아니라, 대우그룹은 드러나지 않게 오래전부터 암이 퍼지고 있었고 급성으로 악화돼 막판에 펑 하고 터졌을 때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세계경영은 마치 외줄타기하는 자전거처럼 계속 가속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김우중식 경영'이었다. 위태로운 자전거 여행의 끝은 오래 전부터 대우그룹 가까이에 맴돌고 있었다.

황제식 독단경영 누구도 반대 못해

세계경영이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는지 진정한 프런티어 정신이었는지 당시에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언론들은 "칭기즈칸 이래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유럽을 공략하고 있다"거나 '타고난 세일즈맨'이라고 김우중 신화를 찬양하기 바빴다. 그러나 '세계경영이라는 이름의 도박'과 무모한 '빚 게임'의 실상은 1998년 하반기에 금융기관이 보유한 동일 계열 기업어음과 회사채의 보유한도제가 시행되면서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입경영으로 달려온 대우 자전거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마르지 않는 돈주머니'로 불리던 대우그룹에서 갑자기 돈줄이 말랐다. 그런데도 그룹의 채무 규모는 김우중씨 본인이나 핵심 측근이 아니면 아무도 몰랐다. 벌여놓은 사업이 전세계에 600여개 거점에 이르렀고, 수백개 해외법인의 부
채 규모나 실상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었다. 당시 대우가 발표한 총부채는 68조2천 억원이었으나 실사 결과는 89조원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우중은 그룹이 침몰하는 급박한 순간에서도 단 한번의 '빅딜'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제너럴모터스(GM)와 자동차 제휴·합작 건만 성사되면 50억달러를 받아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서 끝까지 버텼다. 또 전경련 회장직을 이용해 청와대를 오가면서 정치적 담판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이처럼 김우중의 독선적 경영도 대우그룹 몰락을 부른 요인으로 꼽힌다. 일벌레로 불린 김우중씨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부인할 수 없지만, "시키는 대로하라"는 말을 곧잘 했던 김우중씨 주변에는 '리틀 김우중'만 가득 차 있었다. "안 된다. 터무니없는 투자다. 빚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누구도 꺼낼 수 없었다.

재벌개혁 절차 반성해야

김우중 회장의 귀국으로 이제 우리는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인단 간에 기업회계와 자금운용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정부의 재벌개혁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점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을 지켜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 논쟁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경제철학적인 문제이므로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경제상황은 이 문제를 결코 묵
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8년 세월이 지났고 한국재계의 판도가 상전벽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재벌그룹과 그 총수들은 여전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을 면치 못하고 있고 한국경제는 저성장의 함정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우중 회장의 귀국은 우리의 경제개발과정에서 그와 재벌그룹들의 공과에 대해 새롭게 진지하게 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재벌총수들과 함께 정치인과 관료들도 외환위기와 그 이후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이제 완전히 저성장 국면에 진입해 있다. 고도 성장의 꿈은 언감생심이고, 경기 부진에 대처하기도 급하게 생겼다. 해외 변수의 영향력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더블딥' 논쟁까지 무성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선택할 방향은 분명하다. 내실경영, 실속경영, 위기경영이 바로 그것. 이 때문에 기업들의 소극적 투자가 문제가 되기도 하고, 저조한
고용창출 노력이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어쨌든 살아남아서 종업원과 주주와 채권자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기업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첫 걸음이라는 것을 김우중 회장은 반면교사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김우중 전 회장은 대우사태의 전말, 정치자금 제공, 출국 배경 등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선 진실을 얘기해줘야 한다. 경제인 김우중은 적어도 대우사태 같은 불행한 일이 이 땅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은 해줘야 한다. 그것이 책임지기 위해 돌아온 귀국 목적과도 부합되는 일이다. 그것이 그가 말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제 자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어떤 압력이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모두 털어놓아야 한다. 용기 있는 고백만이 그가 남은 인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수익성 높은 마지막 세계경영이 될 것이다. 자신이 지난날의 과오를 국민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며 그로 인해 고통과 시련이 가중됐던 사람들에게 보은하는 길이기도 하다. 또 그가 여생(餘生)을 경영하는데 더 이상 실패를 추가하지 않는 일이다. 자기 반성이나 피해자에 대한 사죄는 그 다음 수순이기 때문이다.

제일·외환銀 BFC 계좌추적
자금 사용처 '거미줄 추적'…이달 말께 로비의혹 윤곽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박영수)는 21일 대우의 런던비밀금융조직인 BFC 자금의 사용처를 파악하기 위해 국내 은행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BFC를 통해 국내로 유입된 자금 뭉치 중 5∼6개를 표본 추출한뒤 (주)대우와 거래가 많았던 제일은행과 외환은행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계좌추적을 진행하고 있다. 검찰은 계좌추적에서 김 전 회장이 BFC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확인되면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를 추가하고 계좌추적 대상도 확대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BFC를 거친 자금 중 일부가 비자금 화돼서 대우그룹 퇴출 저지를 위한 정·관계 로비금으로 사용됐다는 의혹도 이번 사용처 조사를 통해 확인할 계획이다. 김 전 회장은 1997∼99년 사이 무역거래를 가장한 수입대금 납입 및 해외은행 차입금 누락 방식으로 200억달러를 BFC를 통해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위해 검찰은 전 BFC 과장급 실무자 1명을 전날 소환해 조사를 벌였으며, 김 전 회장의 지시를 받아 BFC를 운영했던 임원급 인사도 조만간 소환 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BFC 계좌추적 및 참고인 조사 등 방증수사가 마무리되면 그 결과를 가지고 김 전 회장에 대한 조사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오는 7월초 이미 드러난 혐의인 41조 분식회계 및 10조 원대 사기대출 혐의로 구속 기소한 뒤부터 BFC 자금의 사용처 조사에 들어간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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