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시인의 ‘그 꽃’ 전문이다. 정상을 향해 오를 때는 올라가기 바빠 꽃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아마 오를 때 꽃을 봤더라면 인생의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느꼈을 것이고, 아직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퇴임을 앞둔 청주대성고등학교 박원규 교장은 현재의 심경을 이 시로 대신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 이제 뒤를 돌아 주변을 둘러볼 때라는 그의 얼굴에서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했다.
열정이 일궈낸 결실
아름다운학교운동본부가 주최하고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시·도교육청이 후원한 ‘11회 아름다운 교육상’ 교육자 부문에서 아름다운학교 경영자상 대상 수상자로 청주 대성고 박원규 교장이 선정됐다. 그는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상은 저에게 주어진 상이 아니라 청주대성고를 대표로 제가 받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로 인해 대성고가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라며 겸손한 수상소감을 전했다.
박원규 교장은 혁신을 바탕으로 다른 학교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었으며, 이는 곧 대성고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기반이 되었다. 인문계고 전환 이후 학력신장제일주의를 표방한 박 교장과 교직원의 노력들로 인해 재학생의 학력이 눈에 띄게 신장되었으며,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는 등 인문계고로서의 성공적인 출발이 확인되었다. 더불어 2006년에는 대성고 총동문회회장인 정봉규 지엔텍 회장이 30억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박 교장은 이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장학재단을 설립키로 했다. 박 교장은 솔선수범의 자세로 1,000만 원 장학금을 기탁했으며, 이후 3,500여 명의 동문으로부터 장학금이 모여져 ‘대성총동문장학회’가 설립됐다. 이 장학회를 통해 학생들에게 매년 1억 5,000여만 원의 장학금이 지급되고 있다. 이러한 대성고 동문들의 장학금 기탁 열기는 충북도내 기부문화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을 받았으며, 충북도의 충북인재양성재단의 설립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밖에도 박원규 교장은 아름다운 학교 만들기 사업으로 운동장 주변 화단조성, 교문 진입로 확장 및 조경공사, 학교주변 울타리 공사, 개방형 주차 공간 조성으로 인근 주민에게 별도의 주차시설을 제공하며 지역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대성고는 학교경영평가우수학교 선정, 충북인터넷수능방송 우수학교 선정,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2010 특색 있는 학교 만들기」 선도학교에 선정되면서 명문학교로 자리매김했다.
기피하는 학교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
대성고는 실업계에서 인문계고로 전환한 고등학교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실 67년 이상 이어온 상업고등학교로서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인문계고로 전환하는 새로운 도전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인문계고로 전환한 초기에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2년 청주상고가 아닌 대성고의 첫 신입생의 대부분은 강제배정이었다. 스스로 원해서 온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신입생 및 학부모에게 인문계고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학교교육에 신뢰가 거의 없는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박 교장은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새내기 대성고의 비전제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대성고에 배정되어 첫 소집에 참여한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여러분 심정이 어떤지 이해합니다. 한 달만 기다려주십시오. 만약 그 이후에도 우리 학교가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원하는 모든 학생에게 전학을 허락하겠습니다. 그리고 전 학력향상에 제 1의 덕목을 두겠습니다.”
이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대성고의 학교생활에 희망을 불어넣는데 힘을 쏟겠다는 신념이었다. 그 이후 대성고의 초점은 철저하게 학교 내 면학분위기 조성에 맞췄다. 학생, 교사, 교장 모두 수업 집중하기 운동이 시작되었고, 학교 내에 면학분위기 조성에 방해가 되는 것은 하나 둘씩 없애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재학생의 학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게 되고 학부모들은 서서히 학교교육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 첫 졸업생이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자 동문들의 성원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대성고는 그동안의 우수학생유치노력과 학력신장을 최우선하는 교육방침으로 서울대에 2008년에 2명, 2009년엔 6명을 합격시켜 도내에서 2번째로 많은 합격생을 배출하면서 그 위상을 떨치고 있다. 한편, 박 교장은 1935년 일제 강점기에 개교한 청주상고의 역사와 전통을 잇기 위해 충북도내 고등학교로 최초로 ‘역사기념실’을 마련했다. 역사기념실에는 개교 당시 사용한 학교종, 졸업생으로 명망을 떨친 화가들의 그림, 오래된 타자기, 그동안 축구명문으로 입지를 다진 각종 축구대회에 입상한 상장, 그리고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은 선배들의 명단까지 67년 동안의 청주상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기록물들이 빼곡히 쌓여있다.
‘소통’에 기반을 둔 확고한 리더십
대성고의 변화의 기반에는 박 교장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인 학생들과의 ‘소통’이 있었다. 청주상고에서 현재 명문고로 자리 잡기까지는 그의 확고한 리더십과 열정을 바탕으로 학교의 미래비전을 제시했기에 가능했다. 박 교장은 학습 분위기 조성의 일환으로 파격적인 운영을 단행했다.
우선 박 교장은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가장 크게 방해하는 것으로 휴대 전화기를 지적했다. 휴대전화기 소지를 전면 금지하고 위반학생에겐 일주일 정학조치하고 그 사실을 게시판에 게시하도록 했다. 한번은 학교 운영회의 임원 자녀가 휴대폰을 소지하였으나, 예외 없이 학칙에 따라 처리하였다. ‘학칙은 원칙이고 원칙은 누구나 따라야 하는 것’이 박 교장의 소신이다. 이제는 대성고 학생이라면 학교에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는 대성고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었다.
2005년에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로부터 M-클린 모범학교로 선정되면서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대성고에서 볼 수 없는 것은 핸드폰뿐만 아니다. 박 교장은 매점폐쇄와 자판기를 제거했다. 물론 학교구성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학생회의를 통해 학생들의 동의를 얻고 구성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변화는 학습 분위기 향상은 물론 학업성적도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인천광역시 학교장이 견학을 오는가 하면, 대성고의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들을 타 시도 학교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박원규 교장은 곧 퇴임을 앞두고 있다. 그는 “머지않아 30년 이상 몸담았던 대성고를 떠납니다. 대성고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마무리에 최선 다할 것입니다”라며 “지금의 대성고가 있기까지는 학교 발전에 힘쓴 동문, 교직원, 학생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교직원들이 저의 교육방침을 잘 따라주셔서 고맙고, 특히 정봉규회장님의 장학금 기부가 대성고를 발전시키는데 견인차역할을 했습니다”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박원규 교장은 마지막으로 우리 교육과 관련된 일, 교육의 발전을 위한 일에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고 설명했다. 오직 한길 교육자의 길을 걸어왔듯이 교육자의 품위를 지키며 영원한 교육자로 남을 박원규 교장. 그는 곧 학교를 떠나지만, 열정으로 일궈낸 대성고에서의 그의 발자취는 길이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