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사고파는 온라인 경매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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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사고파는 온라인 경매의 교과서
  • 김미란 기자
  • 승인 2011.02.1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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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등급을 매기는 신뢰 마케팅 실현

한 남성이 자신의 삶을 경매에 내놓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이언 어셔 씨는 이혼 한 뒤 자신의 집과 자동차, 오토바이, 제트스키 등 자신의 모든 자산을 처분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모든 자산’에 직업, 자신의 친구들 만날 기회 등 자신의 삶 자체도 포함시킨 것이다. 이 남자의 삶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ebay)에서 일주일에 걸친 경매를 마친 뒤 39만 9,000 호주 달러에 낙찰 되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던 이 남자, 자신의 삶이 낙찰된 후 여행을 떠났다는 후문이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물건이 경매에 오르고 또 낙찰되는 공간. 이 곳이 바로 이베이다.  

199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 피에르 오미디야르(Pierre Omidyar)가 개인 경매 사이트 옥션웹(AuctionWeb)을 개설하면서 시작된 이베이는 결함이 있는 레이저 포인터 판매를 시작으로 인터넷 경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14.83달러에 팔리면서 시장성을 인정받게 된 이베이는 1996년, 제프 스콜(Jeff Skoll)을 첫 번째 사장으로 고용하고 이듬해 회사 이름을 이베이로 바꾸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서게 되었다.

경매 제안자와 입찰자 사이의 중계자

1995년 당시 서른 한 살의 젊은 오미디야르는 캔디케이스 수집광이었던 여자 친구의 캔디케이스를 보다 더 쉽게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경매를 생각해냈다. 그러던 중 온라인 경매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가능성을 직감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미디야르가 처음 만든 것은 옥션(Aucion)이라는 홈페이지였다. 물건의 리스트를 올려놓고 소액의 수수료만 받는 형식으로, 경매 제안자와 입찰자 사이에서 중계자 역할만 했다. 하지만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자 오미디야르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베이 창업에만 매달렸다. 하루 24시간, 무제한의 판매자들이 무제한의 구매자들에게 경매로 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고 거래마다 일정 비율의 요금을 받는 방법으로 이베이는 중계자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해나갔다.

이렇게 시작한 이베이는 1998년 경매 사이트인 업포세일닷컴(Up4Sale.com)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남미 전자상거래 사이트 메르카도 리브레(Mercado Libre), 2002년 온라인 결제대행사 페이팔(PayPal), 2003년 중국 포털 사이트 이치넷(EachNet), 2004년 인도 경매 사이트 바지닷컴(Baazee.com), 2005년 영국 부동산 중개 사이트 검트리(Gumtree), 웹폰 회사 스카이프(Skype) 등을 속속 인수하면서 전세계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갔다. 여기에, 2006년에는 세계적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구글(Google)과의 제휴를 통해 온라인 경매 사이트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2009년에는 우리나라의 오픈마켓 서비스인 G마켓(G-Market)도 인수했다.

전자상거래의 약점 신뢰 마케팅으로 보완

이베이는 신뢰를 통해 업계 강자가 되었다.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이베이의 역할이었고,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온라인경매 시장을 창출했다. 구매자는 판매자에 대해 등급을 매기고,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등급을 매겨 판매자에 대한 만족도를 경매 물건 옆에 명시, 신뢰 마케팅도 실현했다.

2005년 9월, 이베이는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인수자금만 무려 26억 달러가 투입된 거대 프로젝트였다. 이로 인해 이베이의 주가는 급격히 떨어졌고 당시 CEO였던 맥 휘트먼(Margaret C. Whitman)은 너무 비싼 값에 인수했다는 투자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 경매와 인터넷 전화는 상관이 없다”, “인터넷 전화가 활성화되면 이베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들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카이프 인수는 대성공이었다. 스카이프를 인수해 인터넷 상거래에 적용한 이베이는 순이익이 31%나 증가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베이가 스카이프를 인수해 투자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성공사례로 남게 된 것도 바로 이 신뢰 때문이었다.

전자상거래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신뢰성에 대해 이베이는 스카이프에서 해결방안을 찾았다. 구매자와 판매자를 스카이프라는 인터넷 전화로 연결해 신뢰할 수 있도록 했으며, 판매자가 상품 게시물에 ‘스카이프 미(Skype Me)’라는 아이콘을 달게 해 구매자는 전세계 어디서나 스카이프를 활용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결제대행사 페이팔 인수 역시 인터넷 경매시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이베이는 웹3.0 기업으로 하루하루 성장해나가고 있다.

이베이를 위한 휘트먼, 휘트먼을 위한 이베이

지금의 이베이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도, 빼놓아서도 안 되는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설립자인 오미디야르도, 초대 사장인 제프 스콜도, 현재의 존 도나호(John Donahoe) 회장도 아니다. 바로 2008년 퇴진한 맥 휘트먼 前 회장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선정한 ‘2005년 주목할 여성 CEO’, 포춘지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재계 여성’에 2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명실상부 최고의 여성 CEO로 인정받았던 맥 휘트먼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이베이의 사장을 역임했다.

휘트먼은 1979년 ‘마케팅의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P&G에서 브랜드 관리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컨설팅 회사 베인 앤 컴퍼니(Bain & Company)에서 컨설턴트로 8년, 디즈니, 스트라이드 라이트, FTD, 하스브로 등에서 일하며 일터를 옮길 때마다 자신의 가치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시키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왔다.
휘트먼이 이베이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이베이는 회원 수 50만 명, 직원 수 30명으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회사였다.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던 오미디야르는 브랜드 관리에 탁월한 경영인을 수소문하던 중 휘트먼을 영입, 그녀를 선택한 것이 최상의 선택임을 단기간에 깨달을 수 있었다. 취임한지 불과 4개월 만에 휘트먼은 이베이를 나스닥에 상장시켰고 그 때부터 이베이는 급행열차를 탄 듯 초고속성장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베이의 이러한 성장과 함께 휘트먼도 성장했다. 여성 CEO의 절대적 1인자일 줄로만 알았던 HP의 칼리 피오리나 前 회장과도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해 6년 연속 ‘영향력 있는 여성’ 순위에서 1위를 지키던 피오리나 회장을 추월하기도 했다.
피오니아 회장이 스타CEO로 이름을 떨친 것과 달리 휘트먼의 리더십은 ‘조용한 리더십’으로 정의되곤 했다. 그녀는 통제하지 않고 조용히 이끌며, 명령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해답을 제시하기 전에 질문을 던졌으며, 의견을 공유하며 끊임없이 합의를 도출해냈다. 이러한 경영 스타일은 회사의 투명성을 높였고, 그로인한 신뢰도 덩달아 쌓여만 갔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를 두고 월가에서는 ‘오프라인 경영철학을 온라인에 가장 잘 접목시킨 CEO’, ‘인터넷 드림의 마지막 보루’라고 칭하기도 했다.

새로운 선장과 새로운 항해

인터넷 사이트가 자주 다운이 되어 항의가 계속 들어오자 1주일에 100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며 시스템 개선 작업을 지휘하고 사용자들에게 일일이 사과하고 환불해준 사례는 휘트먼의 경영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다. 고객을 먼저 배려한 그녀의 경영 덕분에 이베이가 기록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성공비결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 그러나 잘 알기 때문에 간과할 수 있는 것을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그녀의 비결이었다.

첫 번째가 바로 고객의 의견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베이는 매달 고객 20명을 본사에 초대하는 행사를 열고 있는데 휘트먼은 당시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해 고객들의 의견을 청취하는데 열중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라면 사업 계획도 바꿀 만큼 휘트먼은 고객 중심 경영을 실천했다.
빠른 전략 수정도 그녀의 경영 키포인트였다.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실수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 실수를 인정하고 얼마나 빨리 궤도를 변경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한 판단에 따라 전통공예전문 경매회사인 버터필즈 경매 하우스를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매각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회사 인사가 전략적으로 실수였음을 인정하고 신속하게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이처럼 휘트먼이 이베이에 머무는 동안 이베이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온라인 경매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왔다. 2002년에는 최고의 인터넷 기업으로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S&P 선정 5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8년 3월, 휘트먼은 취임 10주년을 맞아 이베이에서의 10년 생활을 청산했다. 그리고 그녀의 뒤는 휘트먼이 경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05년 직접 스카우트했던 경매담당 사장 존 도나호가 이어나가고 있다. 퇴진이유로 ‘개인적인 사정’을 내세웠지만 몇 년간 사업이 정체상태에 머물러 획기적인 계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매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이베이가 30%의 낮은 성장률을 보이면서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이를 뒷받침했다.

1998년 취임 당시, 휘트먼은 “회사의 참신한 전략과 성장을 위해서 CEO는 10년 이상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녀는 취임 10주년이 다가오자 그 약속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후계자 양성에 공을 들여왔다. 임원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돌아가며 맡도록 해서 나중에 어느 부문을 맡게 되더라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사업의 큰 방향만 제시하면서 임원들 스스로 세부적인 내용들을 결정하도록 해왔다. 그렇게 그녀는 10년의 세월을 이베이와 함께 했다.

그리고 지금, 존 도나호 회장은 휘트먼이 일궈낸 성과들을 이어가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비롯 취임 첫해 성적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기대 이하였지만 “이베이의 핵심 사업을 위해서는 3∼4년을 기다려야 한다”라고 말했던 자신의 취임사처럼 시행착오의 3∼4년을 지나왔다. 그리고 이제 존 도나호가 이끄는 이베이는 서서히 시험대 위에 오를 것이다.  

이베이의 ‘황당경매’ TOP 5

ㆍ 한 남성의 인생 전부
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하는 이언 어셔가 자신의 직업, 자신의 친구들 만날 기회 등 자신의 삶 전부를 이베이에 내놓았다. 일주일간의 경매 끝에 39만 9,000 호주 달러에 낙찰 되었다.

ㆍ 영혼
지난 2001년 미국의 대학생 아담 버틀이 자신의 영혼을 판매하려했으나 물질적 교환행위가 부재한다는 이유로 실패한 바 있다. 2008년 7월 텍사스주에 거주하는 케리 크레인도 영혼을 경매한다는 광고를 낸바 있다.

ㆍ 마이클 잭슨의 속옷
2008년 9월,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의 속옷들이 경매에 붙여졌다. 경매시작가는 무려 100만 달러(약 11억 원). 잭슨의 속옷은 지난 2003년 그가 아동 성추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증거물로 압수됐던 것이었다.

ㆍ 아기
독일의 젊은 부모가 7개월 된 아기를 경매에 부쳤다. “신생아 판매.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 없기 때문. 남자 아이. 키 70㎝. 유모차로 데리고 다닐 수 있음”이라고 문구를 게시, 독일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23세의 엄마는 “장난이었다”고 주장했다.

ㆍ 일리노이 주 닮은 시리얼
버지니아 주에 거주하는 매킨타이어 자매가 내놓은 일리노이 주 모양과 꼭 닮은 시리얼 조각이 1,350달러에 팔렸다. 구매자는 시리얼 조각을 여행 박물관에 전시하기 구매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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