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8일 헌법재판소가 인터넷을 통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근거가 됐던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인터넷에 ‘외환보유고가 고갈됐다’는 등의 허위 글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것을 시작으로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전기통신기본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으로, 헌재는 이 사건 결정문에서 “전기통신기본법은 형벌 조항임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어떤 행위가 ‘공익을 해할 목적’인지 사안마다 다르고 법률전문가라도 알기 힘들다. 따라서 명확성의 원칙을 벗어나 위헌”이라고 밝혔다.
사이버 긴급조치 발동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북한 도발 후인 11월23일 오후 ‘정부가 대포폰 문제와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엄청난 사태를 촉발했다’는 내용의 허위 내용을 올린 혐의였다. 인터넷 상에서의 유언비어 확산이 이어지자 방송통신위원회(최시중 위원장)는 “한반도에 긴장상황이 발생하면 포털업체들로 하여금 게시판이나 카페겫疵慣六?올라온 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정부기관이 허위라고 신고한 글은 방통심의위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이미 인터넷자율정책기구 및 포털업체 관계자들과 매뉴얼에 대한 협의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런 매뉴얼 제정이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제한적 조처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사태 때 ‘예비군 동원령 발령’이란 허위 내용의 유언비어가 인터넷 게시판과 이동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퍼져 사회불안을 증폭시킨 것과 같은 상황 발생 때 즉각 대응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는 것”이라며 “긴장상황 때 정부기관이 명백한 허위라고 신고한 글에 대해서만 심의 없이 삭제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이명박 정권의 의회 쿠데타에 이은 사이버 쿠데타 획책”이라며 “인터넷 상에서의 자그마한 의혹제기까지도 사회교란으로 몰아 온라인 암흑시대를 감행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22일 해명자료를 내고 “정부는 향후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긴장상황 발생 시 명백한 허위사실 및 유언비어를 인터넷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조치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현재 포털도 명백한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 삭제 등 자율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익을 위한 개인의 자유 제한 가능
불과 10여 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된 인터넷은 기존의 사법체계와 제도로 규정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양산했다. 정보 소통이라는 기본의 기능에서 벗어나 저작권 위반이나 음란물 유포, 명예훼손, ‘허위 글 유포’ 등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불법행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허위 글 유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와 맞물려 불법 여부의 명확한 판단이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허위 글 유포자 처벌에 대한 찬반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는 헌재의 위헌 판결이 불분명하고 추상적이라고 주장했다.
배은희 한나라당 대변인은 “현실에서는 허위통신으로 인해 심각한 폐해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위헌으로 판명된 부분을 구체화해야 한다”며 “허위통신을 유포하는 것은 선진사회의 양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므로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가 소통될 수 있도록 보다 성숙한 의식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보수단체 역시 위헌판결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법에서 명시하는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는 ‘표현’이란 진실인 경우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정되는 것이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행위까지 무제한적으로 보호되는 것은 아닌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이번 헌재 결정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단국대 김성기 교수는 이번 전기통신기본법 위헌판결에 있어서도 ‘공익’의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나, 현행 법률 315개 중 823개 조문에서 공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시피, 이미 구체화된 개념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선진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미국·프랑스 등을 보더라도 전쟁이나 테러, 항공기나 선박의 운항에 관한 사항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천안함 폭침 사건 때는 “북한의 공격이 아닌 미 핵잠수함과 충돌했다”, 연평도 피폭사건 때는 “현역 대상 징집 명령, 예비군 병력 동원 소집령” 같은 허위사실 유포행위가 이어졌다. 국가적으로 중대한 상황에서 유포된 유언비어로 인해 국가 안보 불안과 국민의 혼란, 그리고 국가 경제의 손실이 빚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수단체들은 “인터넷이나 트위터 같은 매체는 자기를 표현하는 새로운 소통의 도구지만, 신문·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언론 매체와는 달리 부정확한 정보나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주장을 스스로 걸러내지 못한다. 실명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무책임한 주장, 인신공격성 주장을 마음대로 쏟아낼 수 있다. 인터넷 유언비어를 규제할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며 “인터넷·트위터 등 새로운 미디어 도구를 통한 유언비어를 규제할 법적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으로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법 공백이 생겼다. 자유연대소속 박인문 씨는 “새로운 처벌 근거가 마련될 때까지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해 허위 글을 유포하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되면서 대혼란이 예상된다”며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고, 왜곡된 여론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무다. 무책임한 표현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방임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국가보안법 등을 적용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미네르바’ 사건이나 앞서 본 사례들과 같이 피해가 심각한 경우에도 대처할 수 없다는 실상이 명백히 드러난 상황에서 공허한 주장으로 들린다. 위헌판결을 반대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선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 제한 될 수 있다”며 “헌법에서도 국가 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는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게 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 존중한 당연한 결과
전기통신기본법 위헌 결정에 시민단체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언론인권센터,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은 판결당일 성명서를 내고 “그간 ‘허위의 통신’ 규정을 적용해 형사 처벌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보고 반대했다”며 “이번 헌재의 결정을 크게 환영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조영택 의원은 “전기통신기본법이 위헌이라는 결과에 환영한다”며 “민주국가의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할 수 없음을 이 정권은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진보단체는 이번 위헌판결을 현 정부의 표현의 자유 탄압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그들은 현 정부가 그동안 얼마나 표현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명쾌하게 확인 한 것으로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허위의 통신 자체가 사회적 해악 발생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에도 ‘공익을 해할 목적’과 같은 모호하고 주관적 요건을 동원해 처벌하는 국가의 개입 필요성에 의심이 간다”며 우려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허위사실유포’라는 죄목은 2008년 촛불 시위 이전에는 시민들의 의견을 처벌하기 위해 사용된 바가 없다고 주장하며, 촛불 시위 이후 경찰과 검찰은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나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형사 소추하는데 이 조항을 악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네르바’ 사건에도 이 조항이 적용됐다며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건 당시에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장난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포함한 다수의 시민들이 기소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헌재의 결정은 정부의 이러한 시도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제라도 잘못된 법률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이번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하지만 우려의 시각도 여전하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정부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검열하고 싶었던 것을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도 ‘걱정되는 점은 정부가 다른 명분으로, 또 다른 검열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라고 설명했다. 장여경 활동가는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들이 이번 위헌 결정으로 구제의 길이 생겨났지만 검찰은 형법상 다른 조항을 적용해 기소를 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며 “헌재의 취지를 살려 검찰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헌법학계와 시민단체 등에선 “‘허위사실의 표현’까지도 헌법의 보호영역으로 끌어안은 헌재의 결정이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표현의 자유’의 개념과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했다.
‘공익’의 기준 명확하게 제시해야
미네르바 박대성씨는 “헌재의 결정을 통해 표현의 자유가 지켜져 기쁘다”고 말하면서도 천안함 폭침 및 북한의 연평도 포격 관련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해서는 모질게 비판했다. 박 씨는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며 “국가안보나 특정 사실에 대해 거짓을 퍼뜨리지도 않았고 공익을 해할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이어 유언비어의 가장 큰 통로인 포털의 자정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포털이 논란을 확대-재생산하는데 골몰한다”며 “포털이야말로 인터넷 유언비어의 최대 수혜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씨는 “시민사회와 네티즌이 포털에 자구책을 만들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라며 “이런 시도들이 실패했을 때 정부가 조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해악성 유무를 국가가 1차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기능, 사상과 의견의 경쟁메커니즘에 맡겨야 한다. 세계적인 입법례를 살펴봐도 허위사실 유포 자체를 처벌하는 민주국가의 사례는 찾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 헌법 제21조에서는 언론겷酬?집회겙沼瑛?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이를 총칭하여 ‘표현의 자유’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을 실현하는 불가결한 요소이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형성하는 불가결 요소이기 때문에 다른 기본권에 비하여 중요성을 갖는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다른 기본권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고 한다.
위헌 판결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의 개정 시한은 올 12월31일로, 이때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국가안보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허위 사실을 유포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법 공백이 생겼다. 법무부는 ‘입법적 공백을 하루빨리 해소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반영한 법 제정을 통해 전쟁·테러 등 국가적·사회적 위험성이 큰 허위사실 유포사범에 대한 처벌 규정 신설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보단체 역시 정치권에서 법 개정 등 후속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 “정부와 여당은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과 같이 꼼수 부리지 말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거나 감시당하는 국민이 없도록 법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공익의 목적을 해할 목적을 요건으로 한 것은 불명확한 기준이기 때문에 위헌 결정이 타당하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법 개정에서 ‘공익’의 기준에 대해 더욱 무게를 뒀다. 개인의 권리와 공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느 쪽을 강조할 것인지는 위헌 상 의미가 유명무실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포괄적인 공익보다는 구체적인 보호법익을 밝혀 두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공익의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고 하나 현행 법률 315개 중 823개 조문에서 공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시피 공익은 이미 구체화된 개념이라며 위의 주장을 반박했다.
미국 프랑스 등 선진 외국들 또한 전쟁이나 테러, 항공기나 선박의 운항에 대한 사항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사문화된 전기통신기본법을 대체 입법하기보다는, 형법 개정이나 특례법 신설을 통해 법률상 공백을 메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특히 처벌이 가능한 허위사실 종류와 유포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해 헌재의 결정 취지를 최대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인터넷이라는 무제한적인 공간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 기준을 마련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