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 격퇴하고 ‘아덴만 여명’을 거머쥐다
상태바
소말리아 해적 격퇴하고 ‘아덴만 여명’을 거머쥐다
  • 김길수 편집국장
  • 승인 2011.02.08 0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안함 영웅 故 한주호 준위의 후예들, 첫 군사구출작전 대성공

국민의 국가의 부속품이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국가를 이룬다. 그래서 국민이 있는 곳은 또 다른 영토가 된다. 그곳이 외국의 땅이든 하늘이든 바다든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과 영토를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생명의 위험에 빠진 국민을 구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개인의 불행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결과였다. 이런 점에서 ‘아덴만 여명’으로 이름 붙여진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은 가슴 벅차고 뜻 깊게 다가온다. 더구나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 사건 당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던 우리 군에 의한 용맹한 단독 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피랍선박 구출작전, 숨가빴던 146시간

삼화주얼리호(11,000t) 피랍사건은 한국시각 1월15일 오후 12시40분경 발생했다. 아랍에미리트를 출발해 스리랑카로 향하던 중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던 것. 선박에는 한국인 8명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인 2명, 미얀마인 11명 등 총 21명이 승선해 있었다. 오만만을 벗어나 파키스탄 해안을 따라 인도양 북부 아라비아해로 접어들 무렵, 해적들은 소말리아에서 약 2,000km 가량 떨어진 곳까지 진출해 기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피랍 다음날인 15일 오전 12시30분, 에피오피아 지부티항에 있던 청해부대 소속의 한국형 최신구축함인 최영함(4,500t급)이 출동했다. 최영함은 30노트(약 시속 55.6km)의 속도로 항해해 이틀 후인 18일 오전 4시경 아라비아해에 도착했다.

이 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해적들이 약 9km 떨어진 곳을 지나던 몽골선박을 추가로 납치하려고 소형보트를 내렸던 것이다. 이에 작전개시 시점을 저울질 하던 청해부대는 해적들의 전력이 분산됐다고 판단, 1차 구출작전을 개시했다.
링스헬기와 고속단정을 출동시켜 해적들에게 위협사격을 가하며 삼화주얼리호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고속단정을 타고 선박에 접근하던 UDT 요원 3명이 해적들이 쏜 총격을 받아 파편상 등 부상을 입었다. 소형보트에 타고 있던 해적 4명은 최영함의 사격에 놀라 일제히 바다로 뛰어 들었고, 1차 구출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9일 새벽에는 정체불명의 선박 한 척이 삼호주얼리호가 있는 해역 인근 13km 지점까지 접근했다. 이를 해적의 모선(母船)으로 판단한 최영함은 9회에 걸쳐 경고사격을 하고 선박에 올라 검문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는 어선으로 밝혀졌다.
한편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하고 있던 해적은 선장을 위협해 소말리아 쪽을 향하고 있었다. 최영함은 약 1kn~3k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해적들의 불안을 유발하는 차원에서 삼호주얼리오 근처로 간간이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후 최영함은 삼호주얼리호가 해적들의 근거지인 해안에 정박할 경우 구출작전이 더욱 어려워진다고 판단해 21일 오전 최종 구출작전을 돌입했다.

현지시각 4시58분, 새벽녘 어둠이 서서히 걷힐 무렵 작전이 개시됐다. 작전명은 ‘아덴만의 여명’이었다. 조영주 최영함장이 작전개시 명령을 하달하자 20여명의 UDT대원을 태운 3척의 고속단정이 삼호주얼리호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삼호주얼리호 선교에는 수 명의 해적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 작전팀을 눈치 채지 못했다.
이와 동시에 최영함은 삼호주얼리호로 전격 접근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또한 상공에서는 링스헬기가 엄호사격을 퍼부었다. 고속단정의 작전팀이 무사히 피랍선박에 승선할 수 있도록 해적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당황한 해적들이 우왕좌왕하다 선내로 자취를 감췄고, 안전하게 잠입한 UDT대원들의 진압작전이 이어졌다. 대원들은 사전에 팀과 개인별로 부여받은 임무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선교와 기관실 그리고 약 50여 개의 객실을 차례로 장악해 나갔다. 대원들은 개인화기를 비롯해 섬광탄, 최루탄, 소음탄 등을 소지하고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해적들이 저항했고, 우리 대원들과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3시 무렵 해적들은 완전히 제압됐고, 피랍선박에 갇혀 있던 삼호주얼리호 선원들도 전원 구출해낼 수 있었다. 구출과정에서 선장 석해균 씨가 해적들이 쏜 총에 복부 총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선원들을 비롯해 구출작전에 참여했던 우리 대원들의 추가 피해는 없었다. AK소총을 쏘며 저항하던 해적들 중 8명은 사살되고, 5명은 생포됐다.
이로써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던 삼호주얼리호와 선원들은 사건발생 엿새, 146시간 16분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다.

故 한주호 준위의 후예들과 최첨단 장비의 조화

대성공으로 막을 내린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인공은 UDT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해군 특수전 여단 대원들이다. 이번 작전에는 총 22명이 투입됐다. 구출작전에 15명, 해상과 공중엄호에 7명 등이다. 이들은 해상침투와 수중 폭파, 대테러 등 특수임무 수행을 위해 24주간의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인간병기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들은 천안함 수색 작업 과정에서 순직한 故‘한주호 준위에게 교육을 받은 제자들로 밝혀져 작전을 지켜본 국민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했다. 故 한주호 준위는 35년 동안이나 현장에서 활약한 ‘UDT의 전설’로 불린다. 그의 영결식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제자들이 첫 군사 구출작전을 훌륭하게 수행해낸 것이다.

한편 각종 최첨단 특수 장비도 작전 성공에 큰 몫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작전이 새벽 무렵에 개시된 만큼 적외선 투시경과 레이저 조준경이 사용됐고, 우리 기술로 개발한 K-1 소총과 MP-5 기관단총 그리고 기선 제압용 섬광폭음탄, 최루가스탄, 크롬탄 등 최고의 장비들이 투입됐다.
또한 작전의 핵심으로 평가되는 삼호주얼리호 접근에는 3척의 고속단정이 투입됐다. 이는 자동차 속도에 맞먹는 최대 시속 99km의 신속함을 갖췄고, 한 번에 15명의 대원이 탑승할 수 있는 전투선박이다. 하늘에서는 링스헬기가 활약해 대원들을 엄호했다. 기관총 사수와 저격수가 탑승한 링스헬기는 K-5 중기관총과 공대함 미사일로 무장해 해적들의 저항 의지를 꺾어 놓았던 것이다.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

‘아덴만 여명’ 작전은 외국에서 실시한 국내 첫 군사구출 작전이었다. 정부는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작전을 결정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그러나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단호하고 강한 조치가 있어야 앞으로 우리 선박을 납치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전의 대성공으로 ‘돈으로 인질을 구출하는 국가’라는 오명을 씻어냈다. 실제 삼호주얼리호 피랍 이전에 우리 선박이 7차례나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지만 군사작전으로 해결한 적은 전무하다.
우리 정부는 “해적 퇴치 임무를 띠고 파견된 군함이 인근해역에서 활동하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 이번 작전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작전 개시를 결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이 뒤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군사작전으로 인해 인질과 대원들의 인명피해 발생이 우려됐다. 작전지역 연안 국가들의 불안 가중과 작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박 파손으로 인한 해상오염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보다도 앞섰던 것은 더 이상 해적과의 협상을 통해 고액의 몸값을 지불하는 국가로 인식돼서는 안 되고, 작전으로 인한 메시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도발사건 등으로 군의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파병활동 중인 청해부대가 더욱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고려됐다. 이에 군 관계자는 “작전 실패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전 국민의 지탄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작전돌입을 결정하는 데 많은 부담이 있었다”며 “만약 작전이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전 국민이 믿고 성원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우리 군이 더욱 용맹스럽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6차례의 피랍사례는 모두 해적과의 협상을 통해 몸값을 지불하고 구출했다. 지난해 4월 삼호드림호가 납치되었을 당시 정부는 청해부대를 현장으로 급파했지만 해적들이 인질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져 철수해야 했다. 이후 삼호드림호는 우리 돈 약 107억 원의 몸값을 주고 216일 만에 석방된 바 있다.
한편 지난해 10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현재까지 억류 중인 금미305호와 선원 2명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미305호는 241t급 통발어선으로 케냐 해상에서 조업 중 납치됐다. 선원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협상에 진척이 없어 사태의 장기화마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호주얼리호 구출 직후였던 지난 1월21일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해 “아직 특별한 진척이 없는 상황”이라며 “해적들과 케냐에 있는 선박 대리점 간에 전화 연락이 이루어지는 정도”라도 밝혔다.
금미305호의 석방협상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는 선사인 금미수산이 영세업체이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케냐 현지에서 금미305호 한 척만을 운영해 왔는데, 대표인 김모 씨까지 억류돼 사실상 파산한 상태다. 해적들이 요구하고 있는 거액의 몸값은 고사하고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마땅한 창구조차 없는 셈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군사작전을 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억류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데다 해적들이 선원들을 하선시켜 자신들의 근거지에 억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삼호주얼리호 구출과정에서 자신들의 동료들이 사살된 데 앙심을 품고 선원들의 신변을 위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을 통해 보여준 우리 정부의 단호한 입장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석방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프랑스, 미국, 러시아 선박이 안전한 이유

세계 각국 역시 소말리아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적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초기에는 인질들의 안전을 우려해 해적들이 요구하는 몸값을 협상해 구출해냈지만, 최근 들어서는 협상보다 소탕작전을 펼치는 나라가 늘고 있다.
프랑스는 해적 소탕작전에 가장 모범을 보이는 국가다. 신속한 작전으로 자국의 선박을 구출하고, 해적에 대한 단호한 응징으로 해적들 사이에서는 공포의 국가로 통한다. 지난 2008년 30명의 선원을 태운 유람선이 납치되자 프랑스 정부는 일주일 만에 특수부대를 투입했다. 이 결과 해적 3명을 사살하고 모든 인질을 안전하게 구출해냈다.

같은 해 9월 또 다시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당시에도 지체 없이 군사작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인질 한 명이 숨졌지만 당시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해적과의 협상은 없다”며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2009년 한 차례 더 납치사건이 발생했지만 프랑스 군은 원칙적인 대응으로 해적을 격퇴했다.
미국과 러시아 역시 해적격퇴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지난 2009년 미국 화물선 머스크 알라바마호가 납치되자 미 당국은 특수부대를 투입해 닷새 만에 해적 3명을 사살하고 인질을 구출해냈다. 러시아는 2010년 5월, 유조선이 해적에 피랍되자 역시 특수부대를 투입해 선원 23명을 구출한 바 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 2008년 6월 결의안을 통해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한 무력사용을 공식적으로 허용한 바 있다. 해적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강경한 자세로 군사작전을 펼치는 프랑스, 미국, 러시아 국적 선박에 대해서는 해적들도 납치를 꺼린다는 점에서 향후 이러한 군사작전을 통한 인질구출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소말리아, 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국가인 소말리아는 해적들에 의한 선박납치로 악명이 높다.
해적들은 주로 세 집단으로 한 팀을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근 해역의 해로와 기상을 잘 아는 전직 어부 출신들이 해적 활동의 브레인 역할을 하며, 오랜 내전에서 참전한 바 있는 전직 무장요원들이 행동대원을 맡고 있다.

여기에 해적 행위에 필요한 각종 첨단장비를 다루는 기술전문가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들은 납치조, 관리조, 협상조로 나눠 ‘효율적 납치사업’를 자행하고 있는데, 최근에 와서 기업화 및 지능화 양상을 띠고 있다. 소말리아 내부에서는 이러한 납치산업이 활황을 보이자, 심지어 투자자들까지 나타나는 형편이다.
해적들은 AK-47 소총과 휴대용 로켓포로 무장하고 있으며, 40~50t급 모선과 두 세 척의 소형 보트를 이용해 20,000t급 이하 선박을 주로 납치한다. 이 때 저속으로 움직이는 선박들이 주요 타켓이 된다.
이들은 배와 선적물품 가격의 10% 정도를 몸값으로 책정해 요구한다. 협상이 성사돼 돈을 쥐게 되면 절반은 배와 무기 그리고 장비를 공급한 투자자가 갖고 나머지는 납치에 참여한 해적들이 나눠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는 해적단은 10개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대부분 전직 소말리아 해군 출신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이 200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만 우리 돈 약 1,800억 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적단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전문투자가나 해외펀드까지 생기고 있는 추세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제 해운기구 관계자들을 매수해 선박 운항경로를 미리 입수한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유독 소말리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해적들이 창궐하는 이유는 뭘까. 원인은 소말리아 정부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 데에 원인이 있다. 1991년 종족 간 내전이 시작된 이후 20여 년에 걸쳐 전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해적들을 소탕할 수 있는 공권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무정부상태로 인해 국민들은 극한의 빈곤과 기아에 내몰린 상황이다. 이에 소말리아 해안 주민들아 자구책으로 이른바 해적산업에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소말리아 해적들의 확산에는 외국어선의 불법어획과 일부 국가의 독성폐기물 무단 투기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을 원인으로 제기했다. 소말리아 정부가 정상적인 활동을 중지한 틈을 타 유럽을 비롯한 아시아 국적 어선들이 불법어획을 자행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소말리아 국민들이 더욱 큰 생계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 독성이 강한 각종 산업폐기물을 투기해 소말리아 해역의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일부 국가와 외국 어선들의 불법행위로 소말리아 국민들이 더욱 고통 받게 되며 타국에 대한 적개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결과적으로 생계곤란과 분노로 내몰린 소말리아 양민들이 해적의 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피랍방지대책은 없나

소말리아 국내 상황이 수습되고, 정부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종족 간 내전에 대해 국제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각종 원조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또한 일시적인 대책일 뿐 소말리아가 직면해 있는 경제적 붕괴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각국의 자구책만이 유일한 방안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도 이번 구출작전을 계기로 해적에 대비한 예방적 조치가 얼마나 절실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구출작전 과정에서 청대부대 소속 장병 3명과 선장이 부상을 입었던 사실을 볼 때 사후 군사작전이 얼마나 큰 위험을 동반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철저한 예방을 통해 아예 피랍 자체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지난해 삼호드림호 피랍사건을 겪은 후 구체적인 대책마련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국토해양부, 국방부 등 유관부처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했고,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 골자는 해운사들이 해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자구책을 강화하는 데 있다.
우선, ‘피난처’ 마련을 의무화하는 것을 입법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선박 내에 강철 등으로 밀폐된 공간을 마련해 해적들의 공격 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선원들은 총기 등으로 무장한 해적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뒤 구조요청을 하고 하루이틀을 버티게 된다. 이후 인근에 주둔 중인 함선이 출동하여 인질들의 인명피해 없이 해적들을 제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피난처에는 식량, 식수, 통신수단 등이 갖춰지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방안의 결정적인 걸림돌은 설치비용이다. 중소형 선사들 입장에서 2억~3억 원에 이르는 피난처 설치가 마음처럼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에 정부는 보험요율을 하향 조정하는 방안 등으로 선사들의 부담을 최소화해 의무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총기 등으로 무장한 민간요원의 탑승, 철조망 및 물대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삼호주얼리호 피랍 경과

ㆍ15일  12:40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 발생
ㆍ16일  00:30  지부티항에 정박 중이던 청해부대 최영함 출동
ㆍ18일  04:00  피랍해역인 아라비아해 입구에 최영함 도착
       20:00  몽골 선박 추가 피랍 저지, 1차 구출작전 개시
               구출작전 실패, 우리 해군 3명 파편상
ㆍ19일  03:25  이란 국적의 미상 선박 삼호주얼리호로 접근
       10:20  작전 지원을 위한 오만 해군 함정 도착
       11:40  삼호주얼리호 북동쪽으로 이동 시작
       12:46  이란 국적 선박 검문·검색(해적과 연관성 없었음)
               해군 부상자 3명 오만의 한 병원으로 후송
       13:20  삼호주얼리호 소말리아 해안으로 이동
ㆍ21일  04:48  구출작전 ‘아덴만 여명’ 개시
       15:00  해적 8명 사살 및 5명 생포, 선원 21명 구출 완료

‘아덴의 여명’ 대성공 비화

지그재그 운항으로 시간벌기, 해적 굶기기 등 기지발휘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빛나는 리더십, 작전 성공에 큰 역할
큰 인명피해 없이 성공리에 마무리된 소말리아 해적 피랍 어선 구출작전의 숨겨진 뒷이야기가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특히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발휘한 기지와 위기대처 능력이 주목을 끌었다.
석 선장은 자신 또한 인질상태에 있었음에도 피랍 이후 일부러 배를 정박시키거나 지그재그 운항을 통해 구출작전을 위한 시간벌기에 나섰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무장해적들에게 “식량이 사흘치 밖에 없다”고 속여 해적들의 진을 빼놓기도 했다.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기 위해 피랍된 엿새 동안 석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도 거의 굶다시피 하며 버텼다.

정부 관계자는 “구출작전에 투입된 최영함의 감청 결과에 따르면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적들이 본거지와 통신하며 배가 고파 힘들다고 호소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피랍선박 내부에서 시간끌기와 굶기기라는 또 다른 작전이 실시된 셈이다. 이에 따라 해적들은 우리 군의 전격 구출작전 당시 엿새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석 선장의 눈부신 활약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가 은밀하게 보내준 정보가 작전수행에 결정적인 자료로 활용됐다. 선박이 통상적으로 실시하는 교신을 가장해 삼호주얼호 내부 상황과 해적들의 상태 그리고 해적들의 취약점 등을 군에 알렸다는 것.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기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기지를 발휘한 석 선장의 리더십이 빛나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이는 오랜 항해 경험에 선박을 책임지는 리더로서의 용기가 더해져 발휘된 것이었다. 이로써 그는 이번 작전 성공의 숨은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