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 했다. 더구나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국운을 좌우할 만큼 큰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청와대는 지난해 마지막 날에 단행된 개각을 둘러싸고 또 한 번 코너에 몰렸다. 후보자들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에는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의 인사를 감사원장으로 내정해 감사원의 독립성에 중대한 훼손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인사인 정동기 후보의 전관예우 수혜 여부도 논란이 됐다. 이로 인해 연초 정국은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 들었고, 급기야 여당에서 정 후보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정 후보는 인사청문회 문턱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사퇴했다. 당청 간 정면충돌로 비춰졌던 이번 갈등은 수습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그 후유증과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사퇴로 현 정부의 낙마자는 총 8명으로 늘어났다. 일각에서는 임기를 2년 이상이나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진입을 제기하기도 했다.
12.31개각 ‘왕의 남자들’의 화려한 귀환
지난해 12월31일 청와대는 8.8개각에 이어 후기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 개각을 통해 지난 7월 청와대를 떠났던 박형준 前 정무수석과 이동관 前 홍보수석이 각각 사회특보와 언론특보로 복귀해 ‘왕의 남자’들의 귀환으로 불렸다. ‘친서민 중도실용’의 입안자이기도 한 박 특보는 연평도 담화문 발표 전날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하는 등 1급 참모 역할을 계속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왕수석으로 불렸던 이동관 특보는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다가 막판에 언론특보로 낙점됐다.
정권창출 멤버인 두 특보의 귀환은 이 대통령 ‘친정체제의 강화’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박형준 사회특보와 정진석 정무수석, 그리고 이동관 언론특보와 홍상표 홍보수석 사이에 역할분담이 어떻게 이뤄질지, 힘이 안배가 어떻게 형성될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한편 1990년대 이후 금융실명제 등 각종 대책반장을 맡아 굵직한 현안 등을 정리했던 김석동 내정자. 관치금융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의 금융위원장 내정은 금융위의 역할 강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특히 참여정부시절 승승장구한 김 내정자의 발탁한 것은 ‘함께 일한 사람’이 아니면 잘 쓰지 않는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상 파격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인수위 간사 출신인 정동기 前 민정수석을 감사원장에 임명에는 애초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감사원과 한국은행, 방송통신위원회, 한국방송의 수장이 모두 대통령의 측근들로 채워지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참모진과 대통령 직속위원회 그리고 여러 정부기구의 수뇌부도 이 대통령의 캠프와 인수위에서 일했던 인물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에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일방독주가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낙마사태 막후
설상가상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를 둘러싼 갖가지 논란이 불거졌다. 정 후보의 법무법인 재직시절 거액 급여 논란을 비롯해 2007년 도곡동 땅 수사 당시의 ‘봐주기 논란’까지 도마 위에 올랐다.
한나라당은 10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정동기 불가론’을 내놨다. 회의에 참석한 최고위원들이 정 후보에 대한 부적격 의견을 내놨고, 안상수 대표 역시 “최고위원의 의견이 수렴됐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혔다.
회의직후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당청 간 사전협의 절차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청와대는 사후통보를 받은 셈이었고 대통령이 지명한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해 여당이 반기를 든 모양새였다. 게다가 여당 지도부가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사퇴의견을 발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청와대는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홍상표 홍보수석은 “당이 보여준 절차와 방식에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이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했다. 다음날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그러면 청와대는 당과 상의한 적이 있는가”라며 “당의 요구에 청와대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 안팎에서는 당청 간 ‘이상기류’, ‘정면충돌’, ‘불협화음’ 심지어 ‘조기 레임덕’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충돌양상이 극단으로 치달을 무렵 사태수습을 위한 당 지도부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마침 중국을 방문 중이던 김무성 원내대표가 11일 급히 귀국해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과 조찬회동을 가졌던 것. 이 자리에서 수습책을 논의했고, 안상수 대표와 점심식사를 나누며 논란 확산을 차단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회동 이후 김 원내대표는 “당이 예의를 밟아 신중히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며 “정 후보는 인격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데 안됐다"고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밝혔고, 안 대표 또한 “당청이 협의해서 잘할 것”이라며 다소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와 함께 청와대에서도 ‘부부싸움론’을 거론하며 화해무드에 동참했다.
이렇게 사태가 수습 국면에 접어들자 정동기 후보자는 12일 자진사퇴했다. 후보자 내정 이후 12일 만이었고, 한나라당의 자진사퇴 입장이 나온 지 이틀 만이었다. 어쨌든 정 후보자로서는 최악의 상황은 빗겨간 셈이었다.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오명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하마터면 당청 간 불협화음의 불씨가 됐다는 불명예까지 안을 뻔했기 때문이다.
침묵의 청와대, 이 대통령의 심중은
모양새는 잘 정리된 것 같지만 당청 간 불편한 기류는 여전히 냉랭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정 후보의 사퇴 회견문을 읽고 난 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 대통령의 침묵이 여당과 안상수 대표에 대한 불만표출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놨다. 정 후보가 인사청문회에서 직접 해명하고 이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은 여당에 대한 서운함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정동기 낙마’ 이후 당청이 사태악화 방지를 위해 표면적인 봉합을 이뤄냈지만 감정의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청와대는 이번 인사파동 이후 1월26일로 예정되어 있던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만찬을 전격 취소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 연기됐지만 다시 일정이 잡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이 대통령의 심기가 어떠한지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청와대는 이번 사태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집권 4년차에 접어드는 초입에서 발생한 불상사인지라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의 악화로 비춰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야권이 현재의 정국을 ‘레임덕의 진입’으로 몰아가고 있고, 여권 일각에서조차 ‘레임덕’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청와대의 조기 수습 의지는 더욱 절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고위직 후보 1명이 낙마한 사실을 두고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차질을 운운하는 것은 정략적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높은 만큼 주요 국정과제를 착실하게 풀어가면서 여론을 추스르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단발적 사안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정가에서는 이 대통령의 정치력과 국정 장악력의 시험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제부터 이 대통령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기에 진입했다는 풀이다.
연이은 낙마의 원인은 폐쇄적 인사검증
현 정부에 들어 국회에 제출된 각종 인사청문 요청안은 총 60건이다. 이 중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동기 감사원자 후보를 포함해 총 8명. 이로써 이명박 정부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3.3%로 늘어났다. 이는 참여정부의 낙마율 3.4%와 비교하면 네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국무위원에 대한 현행 국회 인사청문회 제도는 참여정부 때 처음 도입됐는데, 당시 5년 동안 국회에 제출된 인사청문 요청안은 58건이었다. 이 중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2003년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와 2006년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 두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유독 이명박 정부에 있어서 인사청문회의 벽이 높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폐쇄적인 인사시스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오직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실장 그리고 인사비서관에 의해 진행되는 최초 인선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풀이다. 나머지 수석들은 1순위 후보자가 선정된 이후 발표 직전에야 통보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검증을 책임지는 민정수석조차 부분적으로만 관여할 뿐 전체적인 틀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대규모 낙마사태로 불거진 8.8개각 파동 이후 청와대는 내부 인사청문회 시스템까지 도입했지만 이번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경우 청와대 내부 청문위원들에게 통보된 것은 발표 당일 아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에 내부 검증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정무수석을 비롯해 정책실장 그리고 여당 최고위원들에 이르기까지 인사후보군에 대한 윤곽이 공개되었다. 공개적인 분위기 덕분에 필요에 따라서는 야당과의 물밑 조율도 가능했다. 이러한 과정은 후보에 대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검증이 가능했고, 상대적으로 인사청문회 낙마율을 줄일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에 비해 현재의 청와대는 후보군에 대한 공개가 이뤄질 경우 최종 과정에서 탈락한 인사들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후보에 대한 배려’가 연이은 낙마사태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게 됐다.
‘아니면 말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이렇듯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이 잇따라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인사 참모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2.31개각 발표 당시 청와대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를 내정한 배경에 대해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국가기강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관장으로 손색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인사 참모진은 이미 정 후보가 법무법인 근무 7개월 만에 7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내부에서 실시한 자체 인사청문회에서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정 후보가 수령한 7억 원의 급여 중 2억 2,900만 원의 세금을 납부했으므로 탈법이나 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는 것. 정 후보가 이른바 ‘전관예우’의 관행에 편승해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국민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한편에서는 대통령이 낙점한 인사라 하더라도 따질 것은 세세하게 따지고, 아닌 것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참모진이 이를 직언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인사파동이 연이어 발생해도 후속대응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참모를 감사원장으로 지명해 독립성을 훼손하고, 과도한 전관예우에 의해 적지 않은 거액을 보수로 받았다는 점이 낙마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지만 이에 대한 어떠한 유감이나 사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선에 관여한 참모의 인책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 대통령은 인책론이 제기된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직접 찾아가 “흔들리지 말고 일에 집중하라”고 격려한 사실도 알려졌다. 임 실장 입장에서는 일종의 재신임을 받은 셈이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격려는 파문을 딛고 갈 길을 가자는 변함없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 대응양상은 이번 사태가 인선 자체의 문제보다는 여당의 정략적 사퇴압박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인식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향후 험난한 당청관계를 예고하는 징후이기도 하다. 정가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어 당청 간의 급격한 관계악화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협력과 갈등 그리고 봉합의 구조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측근 중심의 회전문 인사를 시작으로 검증부실, 민심악화, 버티기, 낙마로 이어지는 인사난국이 반복되는 일방통행식 인사에도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선 후 인사청문회 전후에 낙마한 인사가 8명에 이르렀음에도 입장표명이나 문책이 없었다는 것은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향후 인사스타일 바뀔 수 있을까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 자진사퇴 이후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일종의 침묵모드에 돌입했던 것. 여당에 대한 서운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파동으로 인해 대통령의 권위가 적지 않게 훼손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현 정부가 천거한 인사들의 낙마율이 급격히 치솟으면서 향후에도 인사문제로 대통령과 정부가 발목을 잡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당청 간 갈등봉합 여부와 함께 이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 인사의 가장 큰 문제는 ‘대통령과 가장 가깝고, 잘 알는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측근, 폐쇄, 밀실, 회전문식, 돌려막기식 인사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번 12.31개각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정동기 낙마파동’을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장관급 이상 인사가 철저한 보안 속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극소수의 참모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인선과정을 과감하게 손 봐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인사시스템 내에서 참모진이 아무리 꼼꼼하게 챙긴다고 하더라도 직언이나 진언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다. 신년 특별연설에서 밝혔던 내용을 중심으로 경제와 안보를 챙기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정국을 전환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카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여당 내에서 ‘소통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 뿐이다. 이 대통령이 ‘국정’보다는 ‘정치’에 보다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구나 총선과 차기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이러한 외부의 압박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몇 차례의 인사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정가에 나도는 정권 실세들의 파워게임설
한편 집권 초반부터 이와 같은 인사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정권 실세 사이에 파워게임으로 인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돈 바 있다. 이번 낙마파동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대 임태희 대통령실장, 이상득 의원이 정면충돌했다는 설이 흘러나왔다.
이 소문의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안 대표가 이 장관과 전화통화를 나누며 ‘정동기 후보 자진사퇴’를 논의한 후 다음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전격적으로 상정했다는 것. 이 대통령의 직통라인으로 분류되는 이 의원, 임 실장에 비해 이 장관과 안 대표가 상대적으로 인사 관련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일종의 복수이자 반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던 연초, 이 장관이 각종 공식석상에서 많은 연설을 했지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을 뿐 정 후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 역시 석연치 않다는 것. 한편에서는 각종 발언파문으로 논란에 휩싸인 안 대표가 청와대 일각에서 흘러나온 당 대표 교체설에 대응에 역공을 펼친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와 같은 소문에 대해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발원지가 청와대라는 점에는 특히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방통행, 돌려막기식 인사와 검증시스템의 부재, 그로 인해 도덕성과 각종 자격논란으로 이 대통령의 인사난맥이 집중 포화를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이와 같은 권력투쟁설을 통해 물타기를 시도한다는 주장이다.
만약 앞서 언급했던 친이계 내부의 갈등에서 이번 사태가 출발한 것이라면 그 파장과 후유증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일시적인 봉합은 가능하겠지만,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거사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내부갈등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오 장관은 이에 대해 “특임장관의 임무상 정당 간부와 수시로 통화할 수 있는 것인데, 이를 두고 근거 없는 음모설을 만들어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며 항간의 파워게임설을 일축했다.
민주주의 종주국, 미국의 인사청문회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등 총출동 그물망 검증
제약 없는 검증기간으로 중도 낙마 사례 드물어
우리의 국회 인사청문회는 미국의 제도를 근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행방식이나 절차는 전혀 다르다. 미국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저한 검증 시스템과 제약 없는 검증기간에 있다.
우선 대통령이 인선하는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사전 검증에는 백악관 인사국을 비롯해 연방수사국(FBI), 국세청(IRS),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총 동원된다.
이 부서들은 철저하게 매뉴얼화 된 시스템을 통해 후보자의 과거와 현재를 샅샅이 찾아내고 검증한다. 총 233개로 구성된 항목을 2주에 걸쳐 파헤치는 것이다. 개인과 가족에 대한 배경에 관한 내용(61개항), 직업 및 교육적 배경에 관한 내용(61개항), 세금 납부에 관한 내용(32개항). 교통범칙금 등 경범죄 위반 내용(34개항), 전과 및 소송에 관한 내용(35개항)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꼼꼼한 사전조사를 무사히 통과해도 무조건 상원에 인준신청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해당 상임위원회의 위원장, 의회 지도자, 각 정당 지도 등과 협의를 거치게 된다. 상원 인준 거부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도 바로 이런 과정 때문이다.
그리고 비로소 상원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상원은 각 항목별 서면 질의서를 후보자에게 발송한다. 만약 답변서의 내용 중 미심쩍거나 부실한 항목이 있을 경우 위원회 차원에서 자체 조사를 벌인다. 이 경우 사전조사보다 더욱 철저하고 집요하게 조사가 진행되는 까닭에 제 아무리 치밀하게 은닉했다 하더라도 모두 탄로가 나게 된다.
미국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특징은 검증기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사전 인선에 평균 270여 일을 소요하고, 행정부가 인준을 준비하는 데 평균 28일, 상원의 최종 인준에 50일 등 총 350여 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보자를 선정하고 검증한 후 최종 인준을 받기까지 거의 일 년이 걸리는 셈이다. 상원에서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따위의 도덕성 검증이 아니라 철저한 정책검증을 벌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인사청문회 제도 덕분이다. 따라서 대통령과 행정부는 철저히 검증된 사람만을 요직에 임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인사청문회 제도를 기준으로 우리의 후보자를 검증한다면 인선과정에서 거치게 되는 첫 번째 과정인 FBI조사에서 모두 탈락될 가능성이 높다. 후보자에 관한 일상은 물론이고, 교통범칙금과 음주운전 여부, 친인척 관계에 대한 범죄적 성향, 심지어 이성관계까지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