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지났지만 평화 '제자리걸음'…막대한 민족 역량 낭비
올해는 일제 36년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60주년 되는 해이다. 3년 동안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서 동족끼리 400만여 명이 피를 흘린 전쟁.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이 엄청난 희생도 모자라 분단만 강화된 민족 최대의 비극은 서로를 향한 원한과 폐허로 변한 국토, 38도선 대신 휴전선이라는 이름만이 녹아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6.25를 거론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냉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허리 잘린 한반도, 분단의 역사 시작
한국전쟁은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고 있던 일본의 패망에 따라, 미·소의 한반도 분단정책에 의해 비롯됐다. 북한 공산 정권의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 하에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으로 38도선을 불법 기습 남침한 전쟁. 이는 공산 세력의 세계적화 의도를 참전국과 함께 저지한 세계자유수호 전쟁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대표한 전쟁이다.
1945년 35년간 일제의 모진 수탈과 압박을 받다가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당시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점령함에 따라 남북 분단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5년 후인 1950년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과 북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이로 인해 한 민족이 겪는 아픔은 더 커갔다. 분단은 민족적 차원에서 번영과 발전을 저해했으며 불필요한 경쟁과 군사적 대치, 자원의 분할 사용 등과 같은 막대한 민족 역량의 낭비와 손실을 초래하였다. 무엇보다 혈육과 헤어지는 아픔 그리고 망향의 한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
북한 김일성은 1946년부터 북한을 공산체제로 만들고 소련의 계획과 지원 하에 북한의 모든 역량을 전쟁준비에 동원하였다. 따라서 북한군은 6·25전쟁 발발 당시 소련제 전차 등 최신예 장비로 중무장되었고, 중국내전을 통해 전투경험이 축적된 막강한 전투 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6·25전쟁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남한의 군사력은 상대적 열세에 있었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국군은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되어 있었고, 체계적인 전술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은 겨우 국경을 경비하고 내부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치안군 수준의 장비로 경무장 되어 있었고 한반도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남북한의 군사력 불균형은 전쟁 발발 초기에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은 북한의 기습남침 3일 만에 함락되었고, 국군은 북한의 전차를 대전차 무기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1945년과 1950년 초에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설명하고 전차 및 야포 등의 지원을 스탈린으로부터 받아냈고, 중공군에 편성된 한인 약 4개 사단의 병력을 북한군에 편입시킨데 성공하였다.
미군 또한,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대전차 무기도 재대로 갖추지 않은 채 전투에 투입되어 막대한 손실을 당하였다. 미군과의 초기 전투에서 자신감을 얻은 북한군은 기세가 높아져 더욱 공세를 강화하였으나, 전투력을 재정비한 국군과 미군은 지연전을 전개하여 최후의 방어선인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피난민으로 가장,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혔고, 특히 미군은 피난민과 북한군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피난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정도로 피난민을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적의 총공격을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재정비를 통해 반격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적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승기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유엔 결의안에 따라 10월 1일 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100여만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6.25 전쟁이 발발된 지 1년이 경과된 1951년 6월에는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모든 전선이 소강상태를 이루는 상황에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그 후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이 끝났으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족의 분단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끝나지 않은 비극의 노래, 전쟁의 참혹한 피해만 남아
6·25는 결국 지금의 휴전 체제가 의미하듯 무승부로 끝난 것이기 때문에 남북 어느 쪽도 역사의 주류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한국이 입은 폐해의 규모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6·25 전쟁의 3년간에 걸친 동족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었다.
전투 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 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전쟁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 지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인민재판 등의 무자비한 방법에 의하여 '반동계급'으로 몰려 처형당한 희생이었다. 또 전쟁 기간 중 북한은 8만 5000명에 달하는 각 계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납치해 갔다. 이 가운데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저명한 학자·종교인·공무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었으며 남북한 이산가족 1천 만명이 생겨났다.
한국전쟁으로 입은 물질적인 손실도 엄청났다. 남한과 북한 모두 사회·경제 기반이 거의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인적, 물적 손해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정신적인 상처였다. 한국전쟁은 서로 상대방을 미워하고 복수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서로 사상의 차이 속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동포애를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분단 반세기, 우리의 비극은 어디까지인가
조국이 분단된 채 남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와 사회 속에서 살아온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해방당시 풍설에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게 속지 말아 일본 놈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해라"라는 말이 떠돌았다. 반세기가 훨씬 넘긴 현재 이 땅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해방 3년 후에 남북은 각자의 정부를 세우고 서로를 괴뢰정부라고 하면서 미소의 냉전 사슬로 스스로를 묶었다. 단일민족으로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우리는 반드시 공존·공영해야 할 동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로 남아있다.
지금도 북녘, 땅에는 국군포로를 비롯해 납북자 등 약 2,486명이 억류된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분단의 비극적인 현실을 방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1950년 6.25 전쟁은 남북과 관련 참전한 외국인의 희생을 포함하여 사망 수백만, 부상 수백만,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남기고 치열한 전쟁 1년여와 대치교섭 2년여, 합 3년여 만에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엄밀히 말해서 현재도 휴전일 뿐이다. 이 전쟁의 희생자 수는 어떤 자료에도 정확한 숫자를 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1970년의 '7.4 공동성명' 발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조인,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 등 남북 당국간 몇 차례의 정부간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합의문서는 휴지화의 위기에 놓인 채로, 아직 남과 북이 적대적 군비경쟁을 추구하는 냉전대결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지구촌의 범세계적 조류는 도도한 탈냉전의 흐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만년 평화를 사랑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만이 유독 남과 북의 7천만 민족 구성원 자신들의 고혈을 짜내는 적대적 군비경쟁체제를 유지하며 '냉전의 빙산'으로 남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세계의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 자주적 민족국가를 건설하고, 민족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계사의 요청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운명은 민족 구성원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언제라도 강대국 산군 복합체의 욕망에 따라 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젠 정전 상태에서 벗어나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정치적인 평화와 민족의 참된 화해가 필요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촌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를 향해서 변화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대 진영간에 조성됐던 적대적 냉전 상태도 이미 해소되었고, 지구촌의 모든 나라와 세계시민은평화로이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찾아가기에 분주하다.
한국전쟁에서 약 3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생명을 잃었고 3만7000여 미군이 전사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하는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인지 깨달아야 하며 다시는 동족끼리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누구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