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조각은 그녀의 매만짐으로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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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조각은 그녀의 매만짐으로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된다
  • 김정현 기자
  • 승인 2011.01.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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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예술 그리고 현대적 美를 아우르는 어느 여신의 손길

‘전통’을 지키며 ‘예술’을 하는 분을 만나러 갔다. 수수한 한복에 후덕해 보이는 미소를 떠올렸으며, 전통찻잔을 사이에 둔 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장인정신에 대한 다소 ‘무거운 인터뷰’를 각오했었다. 하지만 섬유작가 최애자 교수의 작업실에 들어선 순간 그 예상은 얇은 유리창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아마도 기자의 머릿속에는 ‘전통’과 ‘예술’ 그리고 ‘장인정신’에 대한 얇은 유리벽이 존재하고 있었나 보다. 사람과 공간이 모두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현대적이며 글로벌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역시 전통과 예술 그리고 장인정신이 흠뻑 배어 있었다. 다만 화려하고 아름다운 오늘날의 ‘시간’을 고스란히 덧입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고, 기능적이며, 세련된 아름다움을 내포한 섬유예술. 아직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이 눈부신 예술을 이끌고 있는 건국대학교 최애자 교수를 만났다.

Q. 섬유예술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분야이지만 일반인들이 아직 생소해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이는 섬유염색에서 출발한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실과 천을 비롯해 한지, 밀집, 동선 등 갖가지 재료를 한 화면에 도입한 작업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마다 추구하는 색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매우 다채로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죠.

Q. 최 교수님은 어떤 계기로 섬유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나요?
A. 대학 때 의상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섬유디자인 전공을 하고 전통 복식 학과 박사학위를 수료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에 스며있는 멋과 매력에 매료 되었습니다. 마치 커다란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가 돌아가듯 마음 깊은 곳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이게 바로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이를 ‘운명’이라고 짧게 표현하더라고요.(웃음)

Q. 최 교수님의 데뷔작이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문화부장관 대상을 수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구어도’라는 작품이었지요. 말 그대로 아홉 마리의 물고기들이 가열 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첫사랑의 손을 맞잡듯 참 달콤하고 다정한 손길로 작업을 진행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작품을 통해 다산(多産)과 다복(多福)에 대한 상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특히 물고기들의 비늘이 살아있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는 한지로 비늘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작업해 구현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단청색 배경 등을 사용한 게 이 작품의 콘셉트였는데, 다행히 물고기들과 아주 잘 어우러졌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하셨던 시절, 충청도에 있는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거실에 전시되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작품의 행방을 아시는 분은 연락 부탁드립니다. 제게는 아련한 첫사랑처럼 가슴 속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거든요.(웃음)

Q. 소재는 물론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세계로 매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님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듣고 싶습니다.
A. 신윤복 선생님의 미인도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입체적인 염색종이모형이 있습니다. 오래된 가죽을 녹색 빛의 모시로 커버링 한 소파를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이를 붙여 완성한 풍경화도 있지요. 대형 컬러 칩 같은 염색종이 작품, 패치워크 한 모시 작품을 패널조명과 접목한 인테리어 공예, 종이와 모시를 배접해 만든 조명, 조선시대 흉배를 모티브로 제작한 침실 베닝과 헤드보드, 팔팔하게 허공을 헤엄치고 있는 닥종이 조명도 있군요. 저는 주로 전통 공예와 인테리어를 접목시키는 것을 작품코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소재를 찾고 작품을 표현하는 범위가 넓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떠올려 보니 참 많이도 만들었군요.(웃음) 그렇게 정성스레 고이 만든 작품들은 어디론가 사람들을 만나러 떠나죠. 방금 말씀드린 작품들도 세종호텔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울산현대호텔, 성신여대, 서울사이버대학 등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Q. 최 교수님의 말씀처럼 다양한 소재와 표현범위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다채롭고 많은 작품들이 오묘한 일체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교수님만의 작품관이 배어 있어서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데요.
A. 요즘 거의 모든 분야가 서구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가진 정서적 본능은 바뀔 수가 없지요. 세 끼를 모두 양식을 먹고, 양복을 걸치며, 영어를 구사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정서의 저변에는 ‘한국의 美’가 깔려 있는 셈이죠. 그래서 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연구하고 심화하는 한편 현대적인 감각과 섞어 친숙하면서도 세련된 작품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를 접목한 생활 인테리어 분야에 주력하고 있지요. 이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의 ‘그린 혁명 인테리어’와 맞닿아 있습니다. 참 현명했던 우리 조상님들도 양잿물을 볏짚에 태워 나온 맑은 물을 매염제로 사용했지요. 과거 왕실을 꾸몄던 화려한 색들이 전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20여 년에 가까운 연구를 통해 드디어 ‘나 자신만의 색’을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내가 남을 찾아다녔는데, ‘나의 색’을 찾고 난 이후엔 남들이 저를 찾아와 주셔서 참 흐뭇하고 뿌듯합니다.

Q. 경기도 인근에 갤러리 건축을 계획하고 있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분들이 기대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진행상황이나 방향은 어떠한지요.
A. 공기 좋고 물이 맑은 곳에 아담한 작업실 겸 갤러리 하나쯤 갖고 싶다는 꿈을 오래 전부터 꾸고 있었습니다. 그 오랜 꿈이 이제 곧 현실 속에서 펼쳐질 예정이라 저 역시 매우 설렙니다. 경기도 아신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양평군 옥천면 ‘옥천냉면’ 인근에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이곳은 오래 전에 사둔 땅이기도 하지요. 너무나 오랫동안 꿨던 꿈인지라 남편도 선뜻 지원해 줘서 참 고마웠습니다. 건물은 현대식으로 건축 하되 내부 중 일부는 가마솥을 걸어 황토방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 앞으로는 30m에 이르는 개울이 흐릅니다. 옛 선조들이 개울가에서 천연 염색을 하고 흐르는 물에 씻어 내던 모습이 그려져 너무나 기대되고 흥분된답니다. 기획과 콘셉트가 너무나도 맞아 떨어지는 장소예요. 섬유예술작품들을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섬유예술을 공부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민족의 우수한 전통 섬유예술을 전수해 세계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각계 인사들과 외국인들, 일반인들도 편안하게 찾아오실 수 있는 명소로 꾸며보겠습니다.

Q. 작품활동과 갤러리 준비 등 2011년도 한 해도 바쁘게 지내실 것 같습니다. 올해 최 교수님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요?
A. 가을 무렵에 토털인테리어 작품으로 인사동에 있는 인사아트센터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또한 신윤복 선생님의 미인도 작품 전시회에 참여해 간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이 들러주셔서 뜻 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Q.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최 교수님은 예술분야의 여성리더로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과 같은 여성리더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전해 주십시오.
A. 스스로를 리딩할 수 있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끊임없이 한 곳만 바라보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담담하고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는 꿈과 희망은 물론 미래를 잘라내는 가위와도 같은 것이랍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인 김춘수 선생님이 쓰신 ‘꽃’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그랬다. 최애자 교수가 만져주기 전에 그것은 다만 평평한 천 조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가 매만지고 이름을 붙여 주었을 때 그것은 사람들에게로 와서 경이롭고, 감동적이며, 애틋한 하나의 작품으로 살아 숨 쉬게 되었다. 

최애자 교수
▶학력 
*건국대학교 의상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섬유디자인학과 대학원 졸업
*성신여대 의류학과 졸업(박사학위 수료)
*미국 FIT MD과정 수료
*한국미술협회회원

▶수상경력
*대한민국공예대선 특선
*전국종이모형공모전 문화관광부장관 대상
*현대미술대전 현대미술상 수상
*2010 빛고을공예대전 장려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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