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으로 따뜻해야 할 세밑을 앞둔 어느 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예기치 않게 날아들었다. 국민들의 마음을 모아 사랑의 열매를 맺어오던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예산을 유흥비로 유용하고 이취임식 행사비로 사용했는가 하면, 관리를 소홀하게 해 기부되었던 성금마저 돌려줘야했던 웃지 못 할 각종 비리와 부정에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기껏 공들여 쌓아온 기부문화에 대한 인식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보건복지부(진수희 장관)는 지난 10월11일부터 11월10일까지 한 달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 중앙회와 지회를 대상으로 예산집행 실태 등 기관 운영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직원을 부적정하게 채용하고, 예산을 과다 집행하거나 목적 외로 사용했으며, 배분사업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밝혀냈다.
관리소홀로 배분사업 중도 포기하거나 반납
보건복지부가 공동모금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공동모금회는 공개경쟁시험에서 탈락한 사람을 계약직원으로 특별 채용했으며, 지회는 중앙회 인사위원회에서 의결한 직원 징계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회는 공개경쟁시험에서 탈락한 8명을 정당한 절차 없이 계약직원으로 특별채용한 뒤 이 중 4명에 대해서는 정규직원으로 다시 채용했다. 중앙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계분야 계약직을 채용하면서 특별한 사유 없이 다른 분야와 달리 특별채용을 했고, 광주지회에서는 필기시험에서만 합격한 사람을 자격증 가점을 부여해 채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공동모금회 부산지회에서는 자체 인사위원회를 통해 직무소홀 및 태만 등 13가지 혐의로 모 직원을 면직처리하고 중앙회에서도 이를 승인했으나, 후에 당사자로부터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고 반성과 재기의 기회를 부여하자는 내부결재로 아무런 징계조치를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6월부터 이 직원은 중앙회로 인사이동을 해 현재 중앙회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공공기관이 최근 3년간 3%의 인건비 인상률을 보인데 비해 공동모금회는 사무총장 7.9%, 직원 9% 등 인건비를 과다하게 인상했고, 성과연봉의 최고등급과 최저등급간의 지급률 격차가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 예산지침인 50%에 비해 현저히 낮은 7%에 불과해 성과가 연봉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었다.
배분사업 관리도 엉망이었다. 배분대상자의 사업수행계획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2006년 이후 92건의 배분사업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반납하는 등 관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았다. 실제로 2003년 모 기업이 철거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모 구청을 지정해 1억 5,000만 원을 기부했으나 해당구청에서 2010년 2월까지 사업을 수행하지 않고 서울지회에서도 이를 관리하지 않고 있어 기부자의 반환요청에 따라 성금을 되돌려준 사례가 있었다. 또한, 배분대상자의 비리 등에 따른 제재수준을 배분분과실행위원회에서 임의로 하향 조정하고, 특정사업에만 조건부 제재조치를 한 후 다른 사업에 배분했으며, 배분 제외기간 중에도 지원한 사례가 확인되었다.
복지부, 부당집행 7억 5,000여만 원 회수 촉구
인사 운영, 관리 소홀도 문제지만 그 중에서도 국민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것은 바로 예산집행이었다. 공동모금회는 업무용 법인카드를 단란주점, 노래방 등에서 사용했으며, 수감기관과의 업무 협조를 이유로 노래방 및 맥주집 등지에서 감사 업무비를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가 공동모금회의 2006년부터 2010년 9월까지의 업무용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한 결과, 중앙회 및 11개 지회에서 업무와 관련 없이 집행한 예산은 총 136건으로, 2,124만 6,300원이었다. 그 중 단란주점, 유흥주점, 노래방에서 사용한 것이 124건 1,996만 8,000원이었으며 나머지는 화환, 선물구입 비용 등으로 집행했다. 뿐만 아니다. 공동모금회 워크숍을 실시하면서 예산을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스키장, 래프팅, 바다낚시 비용 등에 2,879만 8,000원을 사용했으며, 9개 지회가 유흥주점 등에서도 총 24차례에 걸쳐 498만 4,000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도 지회장 이·취임식 축하공연, MC 진행 비용 등으로도 부적정하게 집행했다.
보건복지부는 이와 같은 감사결과에 따라 직원 채용 및 업무용 카드를 부적정하게 사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는 직원 48명(중복자 포함)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고, 기타 예산을 부당하게 집행한 관련자 113명(중복자 포함)에 대해서는 경고·주의 등 신분상의 조치를 구했다. 한편, 부당하게 집행된 7억 5,453만 여원에 대해서는 회수 조치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그 밖에 지적사항에 대해서도 엄중 경고해 재발을 방지하도록 공동모금회에 촉구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전문가들과 협의해 모금기관 투명성 강화 및 국민신뢰도 제고를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장과 이사회 사퇴, 개혁쇄신안 마련
공동모금회는 보건복지부의 감사결과에 즉각 윤병철 회장과 이사회 사퇴를 발표했다. 11월21일 공동모금회는 “이번 사태로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의 손길이 줄어들어 고통과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해 책임을 통감하고 전원 사퇴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동모금회가 환골탈퇴 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들로부터 다시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윤 회장은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롭게 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모금 단계부터 최종 전달에 이르기까지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산화하고 공개해야 한다”면서 다시는 부정과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퇴 발표에 앞서 공동모금회는 11월10일 임시이사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결정한 바 있다. 비대위에서는 개혁쇄신안을 마련하고 시민감시 청렴위원회 구성 및 운영, 차기 이사회 구성, 기타 발전방안에 관한 사항을 맡기로 했으며, 이 같은 역할을 위해 공동모금회는 성진 前 법무부장관(위원장), 장명수 한국신문협회 부회장, 강지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대표, 와 공동공동모금회 부회장인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신영무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이긍희 前 MBC 사장 등 6인으로 비대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같은 달 25일, 공동모금회의 쇄신방안을 내놓았다. 정성진 비대위 위원장은 “이번 쇄신안을 공동모금회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인적 쇄신, 시민감시와 투명성 강화, 자정능력 제고가 주요 내용”이라면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비대위는 16개 시·도 지회장 및 사무처장의 재신임을 묻기로 했다.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는 대로 중앙회 및 16개 시·도 지회 징계 관련자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키로 했으며,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지회 사무처장 및 중앙회 간부의 의무적 순환근무를 실시키로 결정했다. 이 밖에도 ▲시민감시와 투명성 강화 ▲정보공개 및 대외협력 확대로 투명성 높이기 ▲조직체계 쇄신으로 자정능력 높이기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시민감시와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는 ‘시민감시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이를 통해 공동모금회는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모두 공개하게 되며, 중앙회와 16개 지회에 모두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사이버 신문고’ 등 공동모금회 직원의 부정·비리행위를 상시 고발할 수 있는 제도도 운영하고 공동모금회 운영 전반에 대해 한 눈에 알 수 있는 온라인 경영공시도 16개 지회까지 확대하게 된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윤리교육도 실시할 예정이다.
정보공개 및 대외협력 확대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부자가 자신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진행 사항을 온라인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온라인 피드백 서비스’를 금년 상반기부터 실시하고, 모금·배분 공시시스템도 내년 상반기부터 운영해 누구나 언제나 인터넷 홈페이지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공동모금회의 자정능력을 높이기 위해 ‘즉시 퇴출제(원스트라이크 아웃제)’도 도입한다. 환수금액과 별로로 해당금액 3배의 징계부가금을 부가하는 ‘징계부가금제’를 도입하고, 사고발생 가능성이 높은 취약부문에 대해 사전 일상검사 실시, 공익신고제도 활성화, 유흥 목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클린카드’도 16개 지회까지 포함해 전면 확대해 문제점과 비리를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비대위는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부당 집행된 관리·운영비를 회수조치하고 관련 직원에 대한 징계는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되는 대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사안에 따라 엄중 책임을 묻기로 했다.
기부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주의 확산 우려
하지만 온정의 대명사 격으로 간주되던 ‘사랑의 열매’ 공동모금회가 저지른 비리와 부정에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12월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은 “우리나라 유일의 법정 모금창구인 공동모금회 직원들의 공금유용과 성금분실 등 각종 비리와 부정행위가 국민들에게 많은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다”면서 이번에 밝혀진 비리나 부정행위가 다양할 뿐 아니라 이미 상당기간 진행됐고, 다른 부정사건과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도덕불감증의 결과로 인한 범죄라는 점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공동모금회는 기금의 출발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이고, 불우이웃돕기사업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우리 사회에 가장 소외된 사람, 가장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목적을 가진 사업이니만큼 다른 공공기관보다 높은 도덕성과 엄격함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소외계층에게 전달되어야 할 지원이나 도움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파렴치한 행위가 된다”고 지적한 경실련은 이번 사태로 우려되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가 민간사회복지사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 공동모금회의 성금 규모는 3,000억 원에 달하고 개인 기부액이 이중 40%를 차지할 정도로 민간사회복지사업으로 성장하며 국민의 기부 문화를 변화시키고 사회보지에 대한 성숙한 의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최근의 밝혀진 각종 비리행위로 국민의 불신이 커지면서 기부에 대한 냉소주의가 확산돼 연말 모금에 영향을 끼치는 게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공동모금회 자체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면서 그동안 어렵게 축적해 온 기부문화의 사회적 성과가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전문 모금기관을 양성해 현재를 독점체제를 다양화하고 이후 ‘복수 모금회’의 명분과 근거로 삼으려 한다는 것도 경실련이 우려하는 문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모금단체 간 경쟁을 유도해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하에 의료 구제 목적의 모금단체를 따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에 경실련은 “정부와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는 모금기관의 복수화는 불우이웃돕기성금을 복지부의 통제 하에 마치 정부 예산의 일부인 것처럼 사용하던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동모금회의 비리문제가 마치 모금기관의 복수화로 해결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나 이는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주장이며 복수의 공동모금기관을 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제2, 제3의 기관이 생겨난다고 해도 회계부정과 투명성의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못할 것”이이라고 밝힌 경실련은 이렇게 되면 기부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모금액에 대한 관리비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면서 “공동모금회를 쇄신해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며, 사태를 기회로 현실을 왜곡하는 모금기관의 복수화는 시기상조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끝으로 경실련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비대위가 발표한 쇄신안이다. 지난 11월25일 비대위가 발표한 ‘시민감시위원회’, ‘온라인 피드백 서비스’ 제공,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등 시민감시와 투명성 강화, 자정능력 제고를 위한 쇄신안에 대해 경실련은 “공동모금회가 내놓은 자체쇄신안은 모금 이후에 자세한 기부내역이 공개되지 않고 외부의 피드백이 전혀 되지 않는 현재보다는 조직 활동의 투명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나은 방안일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발전방안이 요구된다”고 제기했다.
경실련, 회계 관리 시스템 전면 개선안 제시
경실련은 개선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회장과 이사회 모두 비상근인 현재의 체제를 바꾸어 회장이 기관의 전반적 업무를 파악해 관리할 수 있도록 상임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으며, 회장의 경영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연임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임기가 제한돼 있는 현재 상황으로는 ‘한번 거쳐 가는 곳’으로만 여겨 나눔 문화와 공동모금회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갖고 책임성 있게 일을 추진하지 못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회계 관리 시스템의 전면적 개선에 대한 방안도 내놓았다. 2∼3년 전에 도입이 제안되었다가 비용문제로 보류된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과감히 도입해 공동모금회 업무와 재무관리 등이 중앙회 및 지회와 연계되어 관리,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경실련은 주장했다.
공동모금회의 비용지출이 모금액의 10%로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비용 부담이 있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으로 큰 이익이 되고 새로운 경향의 경영정보 체계를 구축해 전국적 연계가 필요한 업무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입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회계책임자 및 직원에 대한 전문성과 도덕성 강화, 중앙회 및 지회 모든 임직원에 대한 윤리강령 강화, 공동모금회의 관리운영 비용에 대한 사용 규정 완화 등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돌이킬 수 없다. 성난 민심은 당연한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이번 사태의 문제점은 실망과 분노로 끝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애써 쌓아온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자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성난 민심을 어르고 달래는 데에만 급급하지 말고, 지금이야 말로 공동모금회의 쇄신안과 시민연대의 개선 방안을 안(案)이 아닌 실행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