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로열패밀리 줄줄이 처형…김정은 대안세력 사전 제거 의혹
지난 13일 오전 9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공항에서 2명의 여성에게 독침을 맞고 숨졌다. 이번 김정남의 피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김정은 위원장과 국가보위성 내 충성 그룹이 이번 피살 사건을 계획했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월 13일 오전 9시께(현지시각)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가족들이 있는 마카오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두 명의 여성이 접근했고, 이들은 은밀하게 김정남의 뒤를 쫓다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좁혀지자 한 명이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로 추정되는 스프레이를 분사했다. 직후 다른 여자가 손수건 같은 물건을 꺼내 김정남의 입을 틀어막을 듯이 덮었으며 약 10초가 지난 다음 독극물이 김정남의 기도에 완전히 들어간 사실을 확인하는 동작을 보인 후 도주했다. 독극물 테러를 당한 김정남은 곧바로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살해 방법으로 독총을 택했다는 점에서 북한에서 고도의 훈련과정을 거친 요원에 의한 암살 가능성이 제기된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공작원들이 주로 독살에 만년필 형(型) 단발 독총을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같은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작원들은 만년필 뚜껑을 정해진 방향으로 몇 차례 돌린 뒤 밀면 발사되는 구조의 독총을 자주 사용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1995년 충남 부여 간첩사건, 1997년 최정남 ‘부부간첩’사건 때에도 같은 형태의 독총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독약성분인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은 몸속에 10㎎만 투여 되도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마비 돼 즉시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 역시 손을 쓸 새 없이 현장에서 사망한 점을 볼 때 북한 정찰총국에서 내려져 오는 독총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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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한의 공격을 받은 뒤 공항 내 치료시설로 옮겨진 김정남. 2월 13일 오전 9시께(현지시각) 김정남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가족들이 있는 마카오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탑승하려고 줄을 서고 있는 과정에서 독극물 테러를 당했다. 김정남은 곧바로 카운터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
탄 스티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경찰 부청장은 15일 기자들에게 오전 9시쯤 쿠알라룸푸르 공항의 저가항공사 전용 터미널에서 베트남 여권을 소지한 20대 중반 여성을 체포해 구속했다고 밝혔다. 붙잡힌 여성 용의자는 도주한 남자 4명의 사주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말레이시아 중국어 신문 성주일보(星洲日報)에 따르면 김정남의 살해 당일 쿠알라룸푸르 공항 CCTV에는 도안 티 흐엉이 수배범 1명과 함께 터미널에 들어와 범행 현장에서 김정남을 기다리는 모습이 찍혔다. 도안 티 흐엉이 뒤쪽에서 김정남의 목을 잡고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덮고 시티 아이샤가 바로 김정남의 얼굴을 향해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김정남 피습 당시 도안 티 흐엉과 동행한 남자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도안 티 흐엉과 함께 현장을 떠나 공항 안 모처(Heritage실)에서 다른 수배범을 만났다.
말레이시아의 중국어 신문 동방일보(東方日報)는 이들 여성 용의자는 모두 베트남 국적이며, 경찰은 용의자들이 북한으로 의심되는 ‘한 국가’에 고용돼 청부 살인을 감행했다고 판단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남성 용의자는 체포된 두 번째 여성 용의자 시티 아이샤(25)와 가장 먼저 접촉하고 이후에 연락을 취해 온 사람으로 비밀리에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를 수차례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경찰 당국은 아이샤가 체포된 16일부터 이 남성을 미행해 왔고 그가 다른 용의자와 만나길 기다렸지만 다른 용의자와 만나지 않아 체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김정남 살해 사건과 관련한 북한 국적 용의자 5명 모두 공작원아라고 보도했다. 유일하게 체포된 리정철은 북한 정찰국 소속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장기체류하며 김정남 암살을 계획하고 준비한 현지 책임자라로 리정철이 도주하지 않은 것은 장기체류자가 말레이시아 밖으로 피신하면 북한의 범행이라는 의심을 살 것을 우려해 말레이시아에 남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남 피살 사건 관련 보도를 일체 하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이날 이번 피살 사건 용의자로 북한 남성 리정철을 체포했다고 발표한 점 등에 비춰볼 때 이선 사건을 의도적으로 감추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1997년 남한에 거주하던 김정남의 외사촌 이한영이 피살됐을 당시에도 관련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번 김정남 피살 소식도 외부에 알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정부는 북한 정권을 김정은 국무위원장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2월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어 “정부는 피살자가 여러 정황상 김정남이 확실하다고 본다”며 “용의자 5명이 북한 국적자임을 볼 때 이번 사건의 배후에 북한 정권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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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7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당국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김정남 살해 사건 현장검증을 진행하는 가운데 두 경찰관이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금지선을 치고 있다. |
김정은이 최근 자신의 ‘사냥개’로 불렸던 김원홍 국가보위상을 숙청하고 그의 밑에 있던 간부를 처형하는 등 보위성 길들이기를 진행하는 만큼, 보위성 내 충성그룹이 주도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 유지 차원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 받아온 이복형을 제거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김정남이 해외 망명을 타진하다가 적발 돼 살해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권력 불안에 의한 잠재적 경쟁자에 대한 제거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면서 “오히려 김정남이 한국을 비롯한 제3국으로의 망명을 타진하다가 적발돼 피살됐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김정남은 이메일을 활용해 지인들과 소통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며 “자기 존재감의 과시를 위해 계정을 계속 바꿔가면서 해외에 퍼져있는 다양한 지인들과 이메일을 주고 받아왔는데 관련 내용이 북한의 감시망에 걸렸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남의 장남인 김한솔이 삼촌(김정은)에 대한 독재자 발언 이후 해외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졌고, 생활난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지켜본 김정남이 아들을 위해 망명을 타진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남이 해외로 망명할 경우 북한 내부사회에서는 최고 존엄으로 통하는 김정은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실제 김정남이 귀순할 경우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에는 치명적 악영향이 미친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범행에 나섰을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정은 정권에 충성맹세를 하기 위해 정찰총국 간부들이 김정남 제거를 추진해 왔다는 것이다.
탈북민 출신 박사인 현인애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2월16일을 며칠 앞둔 시점에 김정은의 정적인 김정남이 제거됐다”며 “공교롭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는지 아니면 제거 날짜까지 계획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피살을 주도한 정찰총국 간부는 김정은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독재자들은 자기 권력에 저항하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제거하려는 특성이 있다”며 “김정남의 피살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권력암투가 있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집권한 지 오래됐지만 경제역량이 무너진 상태에서 북한 내부에서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군 당정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불안이 깔려 있고, 김정남과 연계해 저항을 꾀하려는 무리들도 있을 수 있으니 싹을 자르는 차원에서 본보기로 김정남을 쳐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공산당 기관지 런민르바오 해외판의 웨이신(微信) ‘샤커다오(俠客島·협객도)’는 “이번 사건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데 특히 ‘고도로 정밀한 일치’가 의심스럽다”면서 “암살 수법, 시행 가능성 등으로 볼 때 증거들이 일제히 북한을 가르 키고 있다는 점을 한번 의심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일본 산케이신문은 경호팀 없이 홀로 있다가 변을 당한 것에 대해 중국이 김정은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김정남을 버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정남은 2000년 경부터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로 이동 할 때에는 중국의 경호팀이 동행했다. 김정남이 김정은으로부터 암살될 수도 있어 만반의 태세를 갖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호팀 없이 김정남 혼자 공항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산케이는 밝혔다.
산케이는 이번에 김정남이 중국 경호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김정남을 저버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사드 배치가 한국과 미국에 미칠 경고의 메시지로 가장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인 것이 북한과의 관계회복이며, 이를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는 김정은의 방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중국의 ‘김정남 보호’에 불만을 품고 있어, 중국이 김정남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게 된 것 일 수 있다고 산케이는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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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솔은 해외에서 지내며 외부 노출을 최대한 피해왔으나, 지난 2012년 핀란드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가지면서 신변위협이 있었을 거란 관측이다. 당시 김한솔은 김정은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
김정남은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을 받는 등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북한권력 세습의 후계자로 떠올랐으나, 1996년 이모인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입지가 흔들렸다. 또 2001년 4월 도미니카공화국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적발돼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아버지 김정일 전 위원장 눈 밖에 나면서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난 채 중국과 일본, 동남아 등을 전전했다. 주로 중국과 마카오 등지에 머물면서 김정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무기 수출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으며,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책임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2010년 해외 망명생활 당시 김정남은 3대 세습을 반대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등 돌출 행동을 보여 북한 당국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그러다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전 위원장이 사망 후 동생인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개혁개방을 주장한 김정남은 아예 북한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동생에 의해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남에 대한 암살 시도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직후인 2012년부터 지속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2012년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공작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습격당했지만 현지 경찰 덕분에 암살을 모면한 적이 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김정남은 김정은에게 “저와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갈 곳도, 피해갈 곳도 없고 도망갈 곳은 자살 뿐”이라는 내용의 서신을 발송한 것으로전해진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자신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편지를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21일 보도한 편지 내용에 따르면 “얼마 전 저와 제 가족과 연관 있는 사람이면 모조리 살생부에 올려 국가 안전보위부 것들이 잡아갔다”며 “저는 빠빠의 아들로 태어났을 뿐 혁명 위업을 계승할 후계자 반열에 서 본적이 없다. 자질 부족과 자유분방하고 방종 스런 생활습관으로 심려 끼쳐드리고 엄청난 사고도 많이 저질렀다. 지금처럼 해외에서 가족들과 살아가는 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숙연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권력 의지’가 없음을 명확히 밝혔다.
한편 김정남과 가까웠던 일본 아사히신문의 미네무라 겐지(峯村健司) 기자(현 워싱턴 특파원)는 그를 ‘박식하고 온화한 성격을 소유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공항에서 김정남을 취재한 뒤 10년 가까이 연락을 이어온 그는 작년 2월 김정남과 메신저 앱에서 영어로 나눈 대화 내용을 공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2008년 아사히신문 베이징총국 소속 기자였던 겐지는 평양에서 돌아오는 김정남을 베이징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말을 걸었고 이후 겐지는 김정남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마카오의 한 식당에 겐지를 초대한 김정남은 술자리에서 상대방의 술잔이 비면 먼저 채워주고, 음식점 여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기기도 하는 장난스러운 면도 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겐지는 김정남의 능통한 영어실력과 박식함, 객관적인 시각에 놀랐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던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한복판에서 독침으로 피살됨에 따라 그의 아들 김한솔(22) 등을 비롯해 이복동생 김평일 주체코 북한대사와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 그리고 자신의 친형 김정철 신변에 대한 위협도 커졌다. 일각에서는 김정남이 망명을 시도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은 위원장이 정찰총국에 피살을 지시했을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만약 김정남이 망명을 타진하다가 피살됐다면 그의 아들인 김한솔과 가족의 안전 또한 보장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한솔은 해외에서 지내며 외부 노출을 최대한 피해왔으나, 지난 2012년 핀란드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가지면서 신변위협이 있었을 거란 관측이다. 당시 김한솔은 김정은 위원장을 ‘독재자’라고 부르며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김한솔은 지난 2011년 보스니아의 유나이티드월드칼리지 모스타르분교에 다녔으며, 지난 2013년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에 입학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던 해 12월 김정은 위원장의 고모부이자, 김정남의 조력자로 알려진 장성택이 총살되면서, 신변에 영향이 미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김한솔은 프랑스 정부의 경호 덕분에 신변의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솔은 오는 9월 옥스퍼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중국 당국은 김정남 암살 수개월 이전부터 김정남과 김한솔에게 북한 공작원에 의한 암살 위험성을 경고했으며, 이에 김한솔은 옥스퍼드 진학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정남의 첫째 부인과 아들은 중국 북경에 머물고 있으며 둘째 부인 이혜경 씨와 아들 한솔은 마카오에서 중국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평일 대사는 현재 숙청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는 관측이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닐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김 대사는 김정일 후계 구도가 정해지지 않았을 당시 북측에서 후계자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를 공관장으로 내세워 서방 세계와의 창구로 사용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볼 때 독재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도 불안해 할 수 있다. 김정철은 공개 활동을 자제하면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어 당장 신변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란 평가다. 그는 영국 등지에서 개인적 관심사에 몰두하며 ‘평양’과 완벽하게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 긴장이 고조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동복이라는 이유로 파편을 맞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은 모두 ‘로열패밀리’로 분류되면서도 세습 과정에서 권력 중심부에서 멀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피살된 김정남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향후 신변에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항상 있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한 2011년 중국에서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과 접촉해 편의를 봐주던 주재원 최소한 5~6명이 처형됐다. 2003~2010년 초 베이징에 주재한 곽정철 전 북한대사관 당비서가 김정남과 왕래한 혐의로 2011년 처형당했다고 전했다. 탈북자 소식통은 김정은이 후계자 자리를 굳힌 2011년 김정남 주변 인물로 분류된 인사들에 대한 숙청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북한 무역성(대외경제성) 당비서를 역임한 뒤 노동당 부부장급으로 중국에 근무한 곽정철은 당시 김정남을 3차례 만났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곽정철의 가족은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
또한 같은 해 고려항공 베이징지사 대표와 부대표 등 3~4명의 직원들이 처형되고 가족들도 수용소에 갇혔으며, 김정남의 여행과 탁송물 운반 등을 돕던 실무자들도 숙청됐다고 소식통은 밝혔다. 이밖에 베이징에서 노동당 지시에 따라 김정남을 보좌하던 강모 등 노동당 대외연락부 (225국) 소속 요원 여럿도 비슷한 시기에 처형된 뒤 간암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 [사진_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