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토론과 비판 그리고 자기반성을 통해 성장한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민주주의는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다. 비판과 자기반성이 없는 토론은 비난과 아집을 낳고, 토론이 없는 민주주의는 독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토론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둥이요, 꽃이라 할 만하다. 언제나 새롭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인 대안이 만들어지는 산실이다. 의견과 입장과 견해가 끊임없이 충돌한다는 점에서 싸움과 닮아있지만, 비판과 비난이 다른 것처럼 둘은 구분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기본적이며 온전한 민주주의의 원칙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말았다. 더구나 이 참사는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매년 연말마다 반복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토론과 싸움의 구분하지 못하고 비판과 비난의 경계가 없는 그곳은 다름 아닌 민의의 전당 대한민국 국회라는 점에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파행, 전형적인 ‘날치기 처리’
지난해 12월8일 한나라당은 2011년도 예산안을 비롯한 부수법안과 각종 쟁점법안들을 강행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상임위별 심의겴품?절차를 생략하고 물리력으로 야당을 배제하는 등 전형적인 ‘단독 날치기 처리’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11시 예결위 회의장이 아닌 본청 245호에서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열고 내년도 예산안을 단독의결하고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 과정까지 걸린 시간은 단 2분에 불과했다.
이날 오후 한나라당은 단독으로 본회의를 열어 여야 간 입장 차이로 처리가 지연되어 온 쟁점법안 10건과 전날 재정위에서 단독 처리한 예산부수법안 등 24건을 직권 상정해 예산안과 함께 처리했다. 여기에는 UAE 파병 동의안을 비롯해 친수구역활용특별법, 서울대 법인화 관련 법안 등이 포함됐다. 이들 법안들은 상임위에서 상정조차 되지 않아 심의가 이뤄지지 못한 상태였다.
예산안은 정부가 제출한 것에서 4,951억 원이 삭감된 309조 5,518억 원 규모다. 찬성 165명, 반대 1명으로 통과시켰다. 최대 쟁점이었던 4대강사업 예산은 2,700억 원을 깎았다. 당초 야당이 주장했던 6조 7,000억 원 삭감에 비해 미미한 금액이다.
이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장외투쟁에 돌입하는 등 대여투쟁에 나섰고, 연말정국이 급속히 냉각됐다.
폭력, 헌정사에 추가한 불미스러운 또 하나의 기록
정기국회 회기(2010년 12월9일) 안에 예산안이 통과된 것은 지난 2002년 이후 8년 만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여야 간에 욕설과 고성 그리고 육탄전이 오가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성과라 할 수는 없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단 한 번도 여야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는다. 2008년 이후 3년 동안이나 제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예산안이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에 또 하나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된 것이다.
야당이 본회의장을 1박2일간 점거해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아 나섰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물리력으로 밀어붙이면서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던 야당 의원들은 30분 만에 의장석을 빼앗겼다.
본회의장 안에선 한나라당과 민주당·민노당 의원들이 충돌했고, 본회의장 입구와 로비에서는 양측 보좌진과 정당 관계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이에 일부 의원과 보좌관이 부상을 입어 후송되었으며, 본회의장 입구 부근의 대형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다.
후유증, 갈비뼈 부러지고, 뇌진탕 등 ‘병동국회’
폭력사태 다음날인 9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의 피해사례를 공개하고, 서로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부상이 확인된 사람은 15~16명이며, 부상자 중에는 여성의원들이 많다”고 밝혔다. 최영희 의원은 손가락 골절, 김유정 의원은 심각한 다리 부상을 입었으며, 김재윤, 박선숙, 전혜숙 의원 그리고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손겧蔘炷?삐거나 피부가 베이는 상처를 입었다. 민주노동당은 8일 본회의장에서 실신한 이정희 대표가 다음날 퇴원했지만 후유증이 매우 큰 상태라고 전했다. 의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보좌진들도 넘어져 뇌진탕 증세를 보이거나 발에 밟히는 등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에 따르면 “여당 의원 10여 명을 포함한 40여 명이 다치거나 옷이 찢어졌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일부 의원 보좌진과 사무처 직원들 역시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 재산피해도 적지 않다. 여야가 본회의장 부근에서 충돌하는 과정에서 의자와 탁자 등 집기들이 파손됐으며, 대형유리창이 깨지는 등 최소 3,000만 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들 또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광경을 TV생중계를 통해 지켜보며 분기를 다스려야 했다. 가슴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린 듯 휑했고, 그 상처는 수치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냉소, “與野 힘 있는 의원들, 챙길 건 다 챙겼더라”
한파가 유난히 기승을 부리는 올 겨울, 국회를 바라보는 여론은 더욱 싸늘하다. 파행으로 점철된 상임위와 본회의 통과과정에서 보여준 폭력사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정기국회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과정에서 ‘부실심사’를 면치 못했다는 평가다. 예산을 증액하거나 감액하기 위해 여야는 정책위와 예결위에서 의견을 조율한 뒤 정부와 논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시한 맞추기’에 급급했던 한나라당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졸속’과 ‘날치기’까지 감내하며 예산안 통과를 강행해야 했던 한나라당의 ‘절박함’은 여권 내에서 벌어진 ‘템플스테이 예산누락 논란’에서 여실히 배어나왔다. 어찌나 급했던지 당초 불교계에 철썩 같이 약속했던 예산마저 빼놓은 채 예산안을 통과시켜 버렸던 것. 이에 불교계는 크게 반발했고, 급기야 전국 사찰에는 “한나라당과 정부관계자들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여권 지도부는 크게 당황했고, 임태희 대통령실장까지 나서서 진화에 나섰지만 불교계의 반발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을 전망이다.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은 이번 예산안 단독처리 사태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마저 내놓아 또 다른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기국회 마감 전 예산안 처리를 강력히 주문했고, 이에 따라 당 지도부가 예산안 통과를 강행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여권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강기정 민주당 의원과 폭행공방을 벌였던 김성회 한나라당 의원이 예산안 강행처리 직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수고했다”는 격려 전화를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청와대 배후설’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비록 이번 예산안 국회가 폭력사태로 오점을 남겼지만 2011년도 예산의 씀씀이를 줄이는 등 오직 국민들을 위한 ‘정의’를 실천했다고 자부한다”는 말을 남겼다. 물론 단순 수치대로라면 그의 말대로 정부 제출안 309조 5,218억 원보다 4,951억 원이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용시한 만료가 돌아오는 상당수 비과세 및 감면제도를 예산관련 법안 심의과정에서 부활시켜 국세 등으로 걷히는 수입예산을 2,000억 원이나 줄였다. 난장판을 연출하면서도 “국민들을 위한 정의의 실천”이라 말했던 예산안이 실제로는 0.1%에 불과한 3,000억 원을 줄인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나마도 ‘일반 공공행정 경직성 예산’에서 9,000억 원을 줄였다. 반면 당초 정부가 배정하지 않았다고 했던 도로예산은 심의과정에서 약 2,000억 원이나 늘었다. 주문진-속초 구간 고속도로 건설에 50억 원, 부산외곽순환고속도로에 100억 원 등 적게는 10억 원에서 많게는 300억 원이 은근슬쩍 늘어난 것이다.
또한 논란이 됐던 4대강사업 예산 역시 석연치 않다. 금액만 봤을 때는 2,700억 원을 삭감해 2010년도의 4,250억 원에 비해 약 절반 수준에 머무른다. 하지만 보나 준설 등 4대강사업 핵심 예산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국토해양부 소관의 국가하천정비 예산을 비롯해 농림수산부의 영산강유역 하구둑 구조개선 및 농업용저수지 둑 높임 예산 등을 깎았을 뿐이다.
이렇듯 얄팍한 눈속임 속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소위 ‘힘 있는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치밀하게 진행됐다. 예결특위 위원장으로 있는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내에 있는 창원지법 마산지원 증축 예산 72억 원, 창원겦떻?진해 고속도로 건설 예산 10억 원 등 무려 10여 개 사업에서 증액했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역시 포항-삼척 철도건설에 700억 원,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 50억 원 등 적지 않은 예산을 통과시켰다. 또한 포항의 특산품인 과메기 산업화 가공단지 조성예산 10억 원도 포함돼 이른바 ‘형님예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외투쟁에 돌입해 연일 ‘예산안 무효’를 주장하고 있는 야당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목포 고기능수산식품지원센터 예산 40억 원과 목포신항 건설 예산 25억 원을 확보했다. 민주당의 예결위 간사인 서갑원 의원 또한 순천만 에코촌 조성비 12억 원과 순천 우회고속도로 건설 예산 10억 원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각, 의원들은 ‘어제’를 잊고 국민들은 ‘오늘’을 잊고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던 시기였다. 도발 직후 각 정당과 의원들은 속속 연평도 현장을 방문해 이 땅의 평화유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불과 며칠 뒤 평화를 이야기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와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력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선거철마다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보이며 조국과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던 약속도, 현장까지 찾아 직접 확인한 백척간두의 위기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어제’는 없고, ‘오늘’만 있는 듯 했다.
한편 국민들에게도 ‘오늘’은 너무나 선명했다. 격투기장과 다를 바 없는 국회상황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며 좋아했을 사람이 있었을까. TV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 되는 그 참담한 모습이 우리 정치수준임을 깨달은 뒤 분노하지 않고, 서글퍼 하지 않았을 사람이 있었을까. 하지만 기이하게도 온갖 욕설과 폭력으로 뒤엉킨 그 무리들 속에서 재선이 나오고, 3선이 나오며, 4선을 거머쥐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자화상, 심장에 맺힌 분노의 굳은살
국회에서 일어난 폭력사태는 처음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단 의원들이며, 그래서 그들이 일하는 곳을 민의의 전당이라 부르지만, 정작 의원들은 토론과 싸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비판이 아닌 비난이 난무했으며, 허언과 메아리 같은 자기반성만 가득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격투기장에서나 볼 법한 주먹질, 발길질이 번번이 일어났으며, 햇수를 더해갈수록 우리의 민주주의는 병들고 있었다.
하지만 끝내 국회의원들 탓만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무력으로 국회를 찬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거해 선거를 치렀으며, 다수표를 받은 이가 정정당당하게 그곳에 입성했다. 결국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에 국민들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거친 노동으로 단련된 손바닥과 발바닥에 굳은살이 자리 잡듯 거친 분노를 반복적으로 겪은 심장에도 굳은살이 맺힌다. 충격과 상처에 둔감해지며, 굳은살이 맺히게 한 분노로부터 멀어지려는 본능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 탓에 선거 때마다 50%를 밑도는 참담한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준미달의 정치현실을 논함에 있어서 국민들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2년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하는 의원들과 ‘오늘’을 잊어버린 유권자들의 향방을 관심있게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이에 굳은살은 결코 살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치문화가 성숙해지고, 민주주의가 더욱 풍요로워지기 위해서는 가슴을 뒤덮은 먹먹한 굳은살부터 도려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고 민감한 이성으로 국민의 대표를 뽑아야 할 것이다.
청렴도 최하위 직업은 ‘국회의원’
국회의원 연봉 5% ‘기습인상’…“염치도 없네”
지난해 6월 국민권익위원회는 직업별 청렴수준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국회의원이 꼴찌를 차지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전화설문을 실시해 각 직업군에 대한 청렴성과 윤리의식을 묻는 조사였다.
총 25개 직업군 가운데 청렴성과 윤리의식이 가장 높다고 응답한 직업분야는 교사(47.8%)였다. 그리고 종교인과 군 장교, 대학교수, 의사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비해 가장 낮은 청령성과 윤리의식을 기록한 직업은 지방의원과 건설회사 임직원. 각각 23위와 24위를 차지했으며, 꼴찌의 영예(?)는 국회의원들이 차지했다.
한편 주먹질과 발길질이 난무했던 지난 예산 국회에서 여야가 사이좋게 합의한 법안이 있어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의 연봉을 의미하는 ‘세비’의 5% 인상안. 국회의원이 1년 동안 받는 세비는 수당과 입법활동비로 구성되는데, 2010년 1억 1,300만 원에서 2011년 1억 1,870만 원으로 인상하는 안에 합의해 통과시킨 것이다.
또한 의원 정책홍보물 발행 등을 위한 비용을 의원실당 1,200만 원에서 2,000만원으로 인상했고, 고속열차(KTX)가 통과하지 않는 지역에 대한 의원 공무수행 출장비도 총 2억 7000만 원 증액했다. 게다가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헌정회’ 지원금도 1억 9600만 원 올렸다. 이번 증액안은 2008년 이후 3년 만에 인상되는 것이다.
그래도 지난해 단 20분을 일하고 1억 연봉을 챙긴 이라크의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염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올해 3월 이라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역사적 총선을 치렀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각 정당과 종파 간 갈등으로 새 정부조차 꾸리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6월14일 개원했지만 새 정부 출범 협상을 둘러싼 정파 간 갈등으로 의장단도 선출하지 못한 채 7월27일 첫 회기를 마쳤다. 첫 회기 동안 의원들은 단 20분간 회동했다. 물론 물밑에서 정부 수립을 위한 협상이 이뤄지고 있지만 의원들의 본 업무인 입법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라크 의원들은 한 달급여 2만 2,500달러에 주택수당과 보안유지비, 그리고 바그다드의 고급호텔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고스란히 누렸다. 이에 이라크 국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부와 명예, 권력과 격리된 스웨덴 국회의원들
“희생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마다 수많은 이들이 가산을 털어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스웨덴에서 국회의원은 정반대의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년 동안의 계약기간에 주당 8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기피직종이라는 것. 게다가 엄밀히 말하자면 국회의원은 직업이 아니다. 대부분 별도의 생업을 가진 이들이 일종의 봉사활동 차원에서 의원직을 수행한다는 것. 그래서 스웨덴 국회의원 중에는 어부도 끼어 있다.
하지만 임시직이라고 해서 임무를 소홀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사명감과 열정으로 성실히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부나 명예, 혹은 권력을 갖고자 국회의원을 되고자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따라서 우리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이 그들에게는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것은 일상화 되어 있고, 의정활동을 포함한 모든 스케줄은 의원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 근무시간 역시 주당 80시간 이상으로 일반 직장인 근로시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렇듯 생활의 불편과 업무하중에 시달려야 함에도 급여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고된 직업을 연이어 선택하는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그것은 부와 권력에 의한 명예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서의 명예로 그 일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를 통해 인터뷰한 스웨덴의 한 재선의원이 남긴 말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처음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할 때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나서게 된 것은 얼마간의 희생을 감내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또한 유권자들이 저를 뽑아주었으므로 제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神이 내린 직업, 국회의원의 세계
의원 1인당 유지비 연간 5억 원, 각종 특권의 천국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으로서 의원에 당선되는 순간 의전상 장관급의 예우를 받는다. 매달 840여만 원에 달하는 세비를 받고 83㎡ 규모의 사무실과 국회사무처 별정직 공무원 신분의 보좌진 6명을 채용할 수 있다. 또한 가족수당을 비롯한 각종 보조수당 등도 지급된다. 이렇듯 수당과 상여금 그리고 특별활동비 등을 포함하면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 2,000만 원을 상회한다. 또한 4급 보좌관 2명, 6급 비서관 1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의 연봉을 합하면 2억 8,000여만 원이다. 의원 차량 유지비와 KTX 이용 등 각종 부대 지원까지 포함하면 국회의원 1인당 연간 5억 원 이상의 세금을 쓴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최소한 장관 등 소위 ‘나라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막중한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본인은 물론이고 해당 부처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거나 심할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국회의원의 경우 이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헌법 45조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해 국회 외에서 책임 지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누리고 있는 대표적인 특권인 면책특원이다. 또한 헌법 44조 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불체포 특권이다.
헌법이 정하고 있는 이러한 특권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의원들은 특권만 누릴 뿐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권한은 막강하고 누리고 있는 특권은 화려하지만 책임질 일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국회의원을 사직하기 위한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본인이 의원직에 의사가 없어 그만두려고 해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현행 국회법 135조는 의원의 사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국회는 의결로 의원의 사직을 허가할 수 있다. 다만 폐회 중에는 의장이 이를 허가할 수 있다. △의원이 사직하고자 할 때에는 본인이 서명 및 날인한 사직서를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사직의 허가 여부는 토론을 하지 아니하고 표결한다.
결국 국회의원이 사퇴하기 위해서는 동료의원들의 표결에 의해 ‘동의’를 얻거나 국회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물론 국회의원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횡행하던 군사독재시절 의원들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자진사퇴를 가장한 타의에 의한 사퇴를 원천봉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잇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성숙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오늘날, 이렇듯 권력자의 외압에 의한 사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의원직 사퇴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