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리고 자동차 딜러 한재님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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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자동차 딜러 한재님이라는 이름으로
  • 공동취재단
  • 승인 2010.12.1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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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이래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않는 그녀의 세일즈 STORY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여성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었다. 학창시절 3년 내내 우수한 성적을 보이며, 사범대학을 졸업한 그녀가 택한 것은 ‘중학교 교사’가 아닌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이었다. 아쉬움은 있어도 후회는 없는 선택이었다. 결혼 이후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학원을 운영했다. 시간은 흘러 2003년. 정부의 교육 방침이 바뀌면서 학원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고, 총 1억 5,000여만 원의 돈을 학원에서 모두 탕진하고 나와야 했다. 참으로 안쓰럽다 못해 암담하기까지 한 그녀의 인생. 순간 그녀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곧장 그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똑똑 계십니까?”

한걸음에 내달려온 길이지만 막상 그 곳에 도착하니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더 나은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다. 쑥스럽게 미소 지으며 들어선 그 곳은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대리점이었다. 학원을 운영하면서도 제일 잘했던 상담과 카운슬링 재주가 떠오른 그녀는 영업도 같은 상담이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동네 대리점에 면접으로 보러온 것이었다.

하지만 부푼 기대감과는 달리 그녀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자동차에 ‘자’짜도 모르는 40대 아줌마가 무턱대고 찾아와 자동차 영업을 하겠다고 하니 그 누가 좋아할까. 냉담한 반응에 쓸쓸히 발걸음을 돌리던 그때, 누군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잘 오셨습니다. 우리 함께 일해 봅시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그녀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소장의 목소리. 그녀는 달랑 교사자격증 하나만 가지고 면접에 참가한 자신을 받아준 소장의 말에 너무나 고마운 나머지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고 했던가. 의기소침해진 그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까짓것 부딪혀 보지. 이 정도쯤이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자동차 영업. 첫해가 지나고 연 80대, 연 100대, 연 130대를 돌파한 그녀는 정확히 입사 이후 3년 만에 학원에 투자했던 돈을 모두 탕감했다. 대한민국 아줌마 파워를 여실히 보여주며 여느 남자 직원보다 열정적으로 업무에 솔선수범하고 있는 그녀는 현대자동차의 꽃 ‘한재님 딜러’이다.

진심을 전달하는 두 마디의 말

그녀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자동차 컨설턴트이다. 연간 100대를 훌쩍 넘는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 한재님 딜러는 묶기가 아닌 1인 1대를 판매하며 남자직원들로서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거뜬히 소화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러한 괴력이 나오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한재님 딜러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기”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런 그녀에게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월 10대 판매를 넘어 월 15대 판매에 도전하는 것. ‘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도 오늘부로 안녕이다. 이제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 “제 나이 50이예요. 사실 이 나이가 영업을 하기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나이잖아요. 하지만 전 바꿔 생각해보려고요.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또 그러한 믿음으로 꾸준히 고객의 마음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새 강북지구 여성 딜러의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요? 3년 터울로 목표대수가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노력하다보면 제 꿈에 한 발짝 더 다가서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이를 위해 한재님 차장은 오늘도 고객들을 만난다. 입에 발린 코멘트 보다는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그녀는 새 차를 인도하면서 꼭 당부하는 두 마디의 말이 있다. ‘음주운전차량이 아닙니다.’, ‘안전벨트 없는 에어백은 쓸모가 없습니다.’ 미소와 함께 두 마디를 전달하면 고객들이 그 자동차를 타면서 반드시 지켜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객들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차량에 대한 질문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그녀는 거래가 아닌 사람으로서 고객을 대하며 ‘情’을 쌓아가고 있다.

“사실 업무가 많은 편이예요. 가끔 시간을 내서 동네를 도는 편인데, 조금 돌다보면 가끔 꾀가 나기도 해요.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라며 혼자 질문을 하곤 해요. 그리곤 혼자 마음속으로 대답하죠. 1시간만, 2시간만. 그러다보면 어느새 가망고객을 만나게 돼요.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저는 지금도 새벽 6시30분에 나가 한 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출근을 해요. 세일(sale)은 학교공부와도 같아요. 조금만 방심하면 금세 성적이 떨어지니까. 영업만큼 정직한 직업도 없다고 하잖아요.(웃음)”

상품이 아닌 나의 가치를 판매하다

대개 신입사원일 때 명함을 받고 판촉을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한재님 차장은 손수 고객들에게 명함과 판촉을 돌리며 홍보에 여념이 없다. 특히 그녀는 어떤 할부, 어떤 차종, 가족 몇 명이서 사용할 차인지 언제쯤 구매할 것인지 고객의 사소한 바람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 두었다가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고객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워 하지만 “고객님 한 달 전에 가족 5명이 탈 차량을 문의하셨죠. 그 내용 변함없이 생각하고 계세요”라는 한재님 차장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 이내 만족하고 기뻐하는 눈치이다.

그녀가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는 세일(sale)은 자신이 상품인 ‘나를 파는 것’이기 때문.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지금의 선택이 이익이 안 될지언정 고객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그녀가 고수하는 영업 철학이다. 

“영업은 직장상사뿐 아니라 고객과 가족에게도 골칫거리예요. 모임에서도 싫어할 때가 분명 있고, 때로는 서로 간에 문제를 일으키기도 해요. 개인이나 집단에서도 또 어떤 모임이나 회의에서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엄청난 욕을 먹거나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죠. 이렇게 소란스럽고 실수를 많이 한 듯 보이지만 진정한 영업은 남을 배려하고, 격려하고, 실수를 정정하고, 이견을 조정하는데 앞장서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한재님 차장은 험담의 차이를 설명하고 고충을 들어주면서 싸움을 말리는 탓에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편이지만, 그 와중에도 화를 자제하는 편이다. 이에 대해 그녀는 “물론 힘들게 하는 고객도 더러 있죠. 하지만 고객님이 비싼 돈을 투자해 구매한 자동차를 제가 선물한 것처럼 오히려 고마워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며 더러는 가끔 안부전화를 드리는데 되레 감사의 표시를 전하는 고객들도 있다며 고객들의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감사의 말을 전했다.

자신이 선택해서 온 길이기에 그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못했던 한 차장.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그렇게 발품을 팔다보니 어느새 한 명, 두 명의 고객이 생겼고 그 누구보다 어렵게 만든 고객이기에 더 소중하게 대하는 그녀는 오늘도 6시30분에 집밖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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