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화 경쟁력 높인 국제문화교류의 선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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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화 경쟁력 높인 국제문화교류의 선봉장
  • 공동취재단
  • 승인 2010.12.08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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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 화풍과 양식으로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장를 열어가는 ‘이두식 교수’

훤칠한 키에 세련된 스타일. 호탕한 웃음소리와 시원시원한 성격. 한국의 대표적 추상화가 이두식 교수(홍익대 미대)의 첫인상은 이랬다. 그와의 진솔한 대화가 이어지자 외모에서 품어져 나오는 카리스마 뒤에 숨겨진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그의 주위에는 그를 좋아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다. 각종 권위 있는 상을 수없이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인터뷰 내내 겸손함으로 일관하는 그에게서 중후함 속에서 묻어나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문화교류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중 미술 교류 증진을 위한 그의 활약

이두식 교수는 지난 2009년에 중국 베이징 다산쯔(大山子) 798 예술특구의 ‘갤러리 아트사이드 북경’과 베이징의 대표적 미술관인 ‘금일(Today Art Museum)미술관’ 두 곳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의 그림은 빨강, 초록, 파랑, 노랑, 검정 등 오방색을 사용해 거침없이 그린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마음 심(心)자며 사람 인(人), 생각 사(思)자 등이 상형문자처럼 들어가 있고 여성의 얼굴이며 물고기 등이 자유롭게 부유한다. 그는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의 방식을 조금 달리해 색채가 다소 빠져나간 추상화, 수묵 그림, 대학시절부터 1987년까지 그렸던 드로잉 작업들도 선보였다. 이렇듯 그의 동양적 추상 그림은 중국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두식 교수의 작품이 중국에 알려진 것은 2002 베이징 올림픽 당시부터다. 올림픽 기간 중 자금성 내 미술전에 참여했던 그는 2003년 베이징비엔날레를 기점으로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 베이징 국립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컬렉션 했고 지난해에는 상하이시 정부가 그에게 10년간 아틀리에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의 미술 교류 증진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월 27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정부로부터 ‘외국인 전문가 영예상’을 받았다. 이 교수는 2008년부터 선양(瀋陽)의 루쉰(魯迅)미술대 명예교수로 임명된 뒤 해마다 특강을 통해 한국 미술의 특징과 한중 미술교류의 필요성을 강의했으며 베이징과 상하이, 선양 등을 순회하며 작품 전시회를 개최, 한국 미술의 흐름을 중국에 소개했다. 또 상하이 칭푸(靑浦)구 정부의 예술 고문으로 활동하며 한중 미술 교류 증진에도 힘써왔다. 그는 오랜 교류를 통해 친분을 다져온 중국 미술계 인사들과 내년에 한국에서 공동 전시회를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다.

2010 부산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뤄 낸 장본인

이두식 교수는 경북 영주 출생으로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했다. 사진관을 운영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화가의 꿈을 키웠다. 적·청·황·흑·백색의 전통적인 오방색을 이용한 원색적인 ‘추상표현주의’를 거쳐 동양적 수묵화 개념을 도입한 추상회화를 추구했다. 40대 후반에 최연소로 제17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직을 맡은 것을 비롯해 외교통상부 자문위원 역임하는 등 사회적 활동도 매우 활발하다. 1995년 보관문화훈장, 2001년 MANIF(서울국제아트페어)대상, 2007년 한국미술공로대상 등을 받았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지미 카터 재단(미국), 올란도 시청(미국), 플라미니오 지하철역 벽화(모자이크, 이탈리아), 불가리아 국립미술관, 중국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는 2008년도 비엔날레를 진두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0 부산비엔날레까지 연이어 진행을 맡아 부산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진화속의 삶’이라는 주제로 지난 9월11일부터 11월20일까지 71일간 열린 이번 행사는 부산시립미술관, 광안리 해수욕장, 요트경기장에서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부산문화회관, 부산시청 전시실, 금련산 갤러리 등에서 특별전이 이어졌다. 지금껏 국내에서 보았던 비엔날레와는 다른 시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부산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두식 교수는 “2010 부산비엔날레는 새로운 미술의 모색과 함께 시민 혹은 세계인과 소통하고 함께 호흡하는 장을 만드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과 적용을 통해 교육적 효과뿐만 아니라 전시주제와 출품작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도록 도와 현대미술과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식지 않은 열정으로 작품활동에 매진

이두식 교수의 작품세계는 답습으로 지어낸 그림들하고는 거리가 멀다. 우리 민족 특유의 오방색과 동양화용 모필을 이용한 그의 작품은 동서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서양화이면서 추상화이기도 하고, 거기에다가 동양적 성격까지 가미돼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음과 양, 강과 약, 명과 암, 빠름과 느림, 긴장과 이완이라는 다소 상반되는 이미지들이 구상과 추상의 대립과 조화, 융합과 절충을 이루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습득한 동양적인 사상에 대한 이해는 그의 작업에 대한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러한 세계관은 오방색이라는 특수한 색의 체계를 통해 체화(體化)되어 표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흐름에서도 초연한 태도를 지키며, 동양적인 사상 및 철학을 중심에 두고 한국적인 정서의 발현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그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실험을 계속해 왔으며, 그러한 실험정신은 그의 작업의 기저가 되고 있는 오방색의 체계를 통해 부단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는 그 누구보다 그림을 많이 그리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도 매일 새벽까지 붓을 놓지 않는다. 이 교수가 그동안 역임한 직함만도 100여 개가 넘고, 현재도 대여섯 개를 관여함에도 불구하고 그림 작품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고 개인전을 비롯해 각종 단체전 및 국제전에 참여하는 그의 모습에서 영원히 식지 않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고 단 5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그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다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한편 그의 특징 중에 하나는 다분히 직관적인 성향으로, 붓을 잡으면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빠르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그가 살아 온 옛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그는 생계유지를 위해 ‘수출화’, 소위 ‘이발소 그림’을 매일 대여섯 점정도 그려냈다. 그 시간을 통해 순발력과 화면의 구도를 빨리 잡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뛰어난 교육자이기도 하다. 서울예고 미술과장을 역임했고 현재 홍익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많은 사회활동을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회활동이 한국 미술계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한다면 제자들, 후배들이 자신보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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