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무슨 게이트다 하는 권력형 비리 사건들의 수사가 연이어 나왔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 같은 수사 과정에서 구속되거나 영장이 청구된 '거물'들만도 열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이권을 챙겨주고 돈을 챙기는 고전적인 수법 등 '권력 브로커'들의 다양한 모습이 망라됐다.
감사원의 특별조사로 시작된 의혹
'오일게이트'라고 불리우는 이번 유전의혹은, 금년 3월말 감사원에서 한국철도공사가 지난해 러시아유전을 인수하기 위해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대해 특별감사를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감사원 관계자는 "유전 개발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한국석유공사도 사업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판단해 투자하지 않은 사업에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철도공사가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것으로 보여 감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이번 유전의혹의 '핵'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람은 이광재(李光宰) 열린우리당 의원이다. 1987년 이광재는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 노무현'과 운명적 만남을 이룬다. 그 후 그는 '노무현의 오른팔'이 되어 의원 보좌관, 대통령후보 선거단 및 당선자 기획팀장,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 요직을 거친다. 말 그대로 '실세(實勢)'인 것이다. 그 '실세'가 지금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검찰이든 특검이든 빨리 자신의 결백을 밝혀 달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찾아온 부동산업자(전대월)에게 '대통령의 선생님'(이기명)에게서 소개받은 유전 전문가(허문석)의 연락처를 알려준 것밖에 없다고 한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모두 "누군가 내 이름을 판 것 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왕영용)이 의욕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광재'를 팔았거나 아니면 '이광재'를 팔고 다닌 사람에게 이용당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의원의 비서관 심모 씨는 검찰에서 5월 19,20일 양일간 강도 높게 조사를 받으며 이 의원 관련 의혹을 일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난해 6~9월 허문석(인도네시아 체류 중)씨를 만나 정책자료집 발간과 관련돼 자문을 구한 사실이 있다고 밝힌 바 있어 검찰은 이 의원을 소환해 이 부분과 외압설의 관련성을 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그동안 이 의원의 비서관 심씨가 작년 10월께 전대월씨와 의원회관 등에서 몇 차례 만난 정황을 확보하고 유전 사업과 이 의원의 관련성을 집중 조사했으나 특이한 징후는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검찰은 심씨가 전씨를 만난 시점은 철도공사가 러시아 유전업체 인수 계약금을 송금하고 계약 승인을 받은 뒤 나머지 인수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라는 사실을 중시해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 의원 소환 후 왕영용 본부장이 작년 10월20일에 이 의원에게 '석유개발기금을 융자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문의 진위를 가리는 등의 방법으로 외압설의 실체를 규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의혹의 중심에 선 이광재(李光宰) 의원 문제를 놓고 열린우리당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현 정권에서 이 의원이 갖는 '상징성'으로 인해 사건의 파장이 여권 전체의 부담으로 번져가고 있지만 열린우리당으로서는 거의 '속수무책'인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열린우리당은 검찰수사에서 이 의원의 '결백'이 입증되면 사건의 파장이 수그러들지 않겠느냐며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현 정치권의 기류로 볼 때 검찰 수사가 어떤 '답'을 내놓더라도 정치적 공방에 휘말릴 소지가 크고 자칫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는데 여당의 고민이 있다. 우리당 관계자는 "검찰수사에서 뭔가 나오면 여권 전체로 공세의 수위를 높일 것이고, 뭔가 안나오면 야당이 특검을 하자고 주장할 것 아니냐"며 "시간이 갈수록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옴치고 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털어놨다. 당내에서 이 의원과 일정한 선을 그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이어 여권 일각에서 이 의원의 거취문제를 포함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심각한 상황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5월23일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에서 이 의원 문제에 대해 일언반구(一言半句)의 말이 없었다. 이에 비해 이 의원은 "또 한차례 태풍이 불고 지나갈 것" 이라며 오히려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 사태에 대한 상황인식을 놓고 당과 이 의원 사이에 뚜렷한 '온도차'가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상황이 '시대유감'
한나라당은 5월 9일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이 지난해 8월 러시아 유전인수 사업을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전해지자 "권력형 비리였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공세를 펼쳤다. 한나라당은 특히 청와대 관련 사실이 뒤늦게 잇따라 공개되고 있는 것에 강한 의혹을 표시하면서 철저한 검찰 수사 및 조속한 특검 도입 압박을 계속했다. 한나라당 '오일게이트' 조사단장인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왕 본부장이 수차례 청와대를 방문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청와대는 근거없는 변명만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 의원은 또 청와대측이 왕 본부장의 보고 사실을 개인적 차원으로 해명한데 대해 "일과 중에출장증을 끊어서 청와대에 찾아가 개인적으로 설명하느냐"면서 청와대는 이런 해명말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이어 "지난해 8월23일 철도청장 주재 회의에서 유전사업에 들어간다는게 보고되고, 이어 31일 왕 본부장이 청와대를 방문해서 행정관에게 보고했고, 이후 9월4일 계약이 체결된다"면서 이런 점으로 볼때 이들 3가지 사안이 각각 독립적이고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의혹을 제기했다.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도 왕 본부장의 청와대 보고 사실에 대해 "예상했던대로 고위층이 다 관련된 권력형 비리라는 사실이 확인돼 가고 있다"면서 "검찰은 확실하고 명명백백히 사실을 밝혀라"고 요구했다. 이정현(李貞鉉) 부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짐작했던 대로 청와대의 조직적 은폐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이 권력실세들이 개입된 대형 권력비리 사건임을 의심치 않는다"고 특검 도입을 통한 진상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또한 5월23일 한나라당 논평을 통해 이광재 의원을 통렬히 비판했다. "이광재 의원은 이제 '언론의 살기 운운'하며 모든 책임을 언론에 돌리는 이 노무현 참여정부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며 "이광재 의원은 이미 정치인으로서 '레드라인'을 넘었다. "고 비난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상황이 '시대유감'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새천년 민주당에서는 오일게이트와 관련하여 열린우리당의 특검 수용을 촉구했다. 오일게이트는 유전(油田)게이트라고 주장하며 "전대월씨 하나 감옥에 가두고 단순 사기사건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오일게이트의 진실은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다."고 논평을 냈다.
이러한 정치권의 공방에 대해 국민으로서는 그 정치적 득실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권력형 비리냐 단순 사기사건에 불과하냐는 점도 궁금하고, 왜 철도공사가 자신들의 고유 사업과 무관한 사업에 그처럼 무리하게 개입하여 손실을 초래했는가 하는 점도 의문의 대상이다. 사실 의혹이 불거지면서 청와대도 검찰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중요한 것은 의혹이 불거졌다는 점이 아니라, 그 의혹을 정부 여당이 어떤 자세로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여당의 태도는 우선 문제의 의혹을 푸는데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어느 정도의 도덕성을 잣대로 삼는가 하는 문제를 가늠할 시금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정부가 '중이 제 머리를 깎을 수 없다'는 속담이 틀릴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정부 여당이 이번에하는 태도에 따라 '중도 제 머리를 깎을 수 있다'는 새로운 속담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결정될 것이다. 국정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실세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참여와 개혁은 한낱 공허한 구호일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집권 중기(中期)에 드러난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오일게이트의 관건
무엇이 오일게이트의 관건인가? 오일 게이트의 핵심은 유전과 관련이 없는 철도청이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갑자기 중단한 이유, 사업성이 불투명한 유전사업에 은행의 무담보 대출,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와대 및 대통령 측근인 이광재 의원의 개입설 유무가 관건이다. 이 사건은 전대월 하이엔드 사장이 러시아 유전사업에 비교적 밝은 쿡에너지 권광진 대표로부터 사할린 유전사업 제의를 받으면서부터 발단됐다. 전씨는 권력실세인 이광재 의원을 거명하며 철도청의 참여를 장담했고 실제로 상황은 그렇게 진행됐다.
철도청이 유전사업에 뛰어든 경위는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철도청은 전대월씨등의 투자요청에 대해 반신반의 하던 중 대통령과 이광재 의원의 후원회장인 이기명씨와 깊은 친분이 있으며, 그를 통해 이 의원과도 잘 알고 있는 에너지 전문가 허문석(주) 크루아크루드오일 대표가 러시아 유전에 대해 사업성을 보장한 것을 계기로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철도청과 전대월, 권광진, 허문석 등은 공동으로 러시아 유전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공동합작 회사 크루아크루드오일(KCO)을 8.17일에 설립했다. 이후 불과 17일 후인 9월 3일 러시아 석유회사인 알파에코사의 자회사 니미르페트사와 6천 20만 달러 규모의 사할린 유전인수 계획을 맺었고, 계약금 620만달러를 지불했다. KCO 설립당시 지분비율은 전씨가 42%로 가장 많았고, 철도재단이 35%, 권시 18%. 허씨 5%였다.
이 과정에서 KCO와 러시아 알파에코사 측이 유전사업에 대한 정식계획을 체결한 뒤 계약금 대출과 주식양도. 양수과정에서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즉 우리은행이 9월 15일 부도난 사업자 전씨에게 620만달러를 쉽게 내어 주었다는 것이다. 비록 철도청이 KCO 95%의 지분을 나중 확보한 상황에서 전씨에게 대출해 주었다고 하지만, 전씨에 대한 기본적인 신용체크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압의혹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철도청이 전씨의 42%지분과 권씨의 18%지분을 인수하고 120억원을 주기로 한 부분도 석연치 않다. 철도청은 전씨에게 주당 5000원짜리 주식을 20배인 10만원으로 계산해 주었고 전씨는 자기 몫 지분에 대한 84억원짜리 채권을 제 3자에게 팔아 이익을 챙겼다.
이에 반해 권씨는 주식양도에 반대를 하다 주식을 양도하지 않으면 계약금을 송금할 수 없다는 철도청의 말에 주식을 내어놓았으며, 실제로 러시아 송금은 한달 후에 이루어 진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이 과정에서 "120억원은 전대월씨하고 철도재단이 미리 협의를 해서 정한 것"이라며 전씨 지분 42%중 14%는철도재단 관계자와 '보이지 않는 실세'의 몫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철도공사(재단)가 이와 관련 일부참여자가 리베이트 문제로 인하여 투서를 작성하는 등 논란이 일자 러사아 측에 사업포기를 위한 계약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러시아 측이 계약파기 무효를 주장하며 이를 거절하였으나 이후 협상을 통해 270만 달러만 돌려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