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거리에는 늘 사람들이 붐빈다. 각자 생업이나 볼 일을 위해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길은 언제나 단정하게 정돈되고 있고, 길가에는 사시사철 빛나는 빌딩들이 자리를 잡았고,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그곳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빌딩이 높고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크고 짙을 수밖에 없다. 그 빛의 사각지대에도 사람들이 있다. 석상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누운 사람들. 흔히 노숙인이라 불리는 홈리스들이다.
감기몸살처럼 찾아오는 경제위기, 지병처럼 이어지는 불황 탓에 노숙인들이 다시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다만 이 반갑지 않은 뉴스가 조금 덜 씁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들을 돕는 따뜻한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다. 노숙인들이 주로 모이는 기차역 주변이나 공원 등에서 식사나 의료봉사를 하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노숙인들에게 돈이나 밥을 주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그들이 자활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게 하는 것이며, 삶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북돋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스스로를 ‘거지왕초’라고 소개한 사회복지재단 거광의 정 훈 이사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런데 그것이 차갑거나 매섭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자에게 “만약 가족 중 노숙인이 있다면 단지 그에게 얼마간의 돈과 밥만 줄것이냐”는 정 이사장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정 이사장은 1979년 故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서 살아난 것을 계기로 삼아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후 신학교를 설립해 경찰 복음화에 앞장서왔다. 이후 사회복지재단 거광을 설립해 노숙인 자활복지를 위해 쓰고 있다.
노숙인들이 자활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신앙의 힘이 가장 절실하다고 믿는다는 정 훈 이사장. 그는 거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제 때 학업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꿈과 비전을 선물하며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실천해나가는 중이다.
“대학으로 진학한 사람만 5명입니다. 그리고 목사 3명, 전도사 100명을 배출했지요. 이들은 다시 노숙현장으로 돌아가 전도와 구제사업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순환고리라 할 만 하다. 다만 그 순환고리는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희망적이다. 노숙인이 없다면 그 순환고리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숙인 복지사업을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편견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을 계도하고 계몽하려 들면 관계가 틀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사회복지재단 거광과 정 훈 이사장의 소리 없는 행보는 끝이 없고 한도 없는 듯 보였다. 서울 서대문 현저동, 전남광양시, 전북 남원과 익산에 노숙자 자활공동체인 ‘사랑의 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익산시 낭산면에 23개의 복지 아파트를 구입한 후 자활에 성공한 노숙인들의 보금자리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더욱 뜨겁게 다가오는 것은 대부분의 사업에서 정부나 단체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거나 최소화한다는 것. 힘에 부치지 않으시냐는 물음에 그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건 순전히 주님의 힘일 뿐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랍니다.”
수도권 노숙인들을 위한 노숙인센터를 준비 중이라는 정 이사장은 짧은 인터뷰를 마친 채 또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분주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이 지우개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발길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도심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가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