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작은 변화로 시작된 큰 돌풍
윤은기 원장은 지난 5월13일 취임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이하 공무원교육원) 61년 역사상 최초의 민간 출신 원장이었던 까닭에 세간에서는 그의 등장 자체가 큰 화제였다. 그는 ‘시(時) 테크’로 명성을 쌓은 경영컨설턴트이자 KBS 제1라디오의 ‘생방송 오늘’을 수년 간 진행하며 MC로 활약한 방송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무원교육원은 대표적인 국가인재개발기관임에도 공무원의 역량 향상을 위한 후방지원기관이라는 인식이 컸다. 이런 점에서 그의 취임소식은 변화와 혁신의 신호탄이었다.
그 후 윤 원장은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공정하게’라는 기치를 내걸고 원내 분위기는 물론 교육전반에 걸친 대혁신에 착수했다. 이 결과 ‘강사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딱딱하고 무료했던 강의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관료주의에 입각한 일사분란이 아니라 공무원 개인의 자율과 개성에 의한 신속함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단지 원장이 바뀌었고, 6개월여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그 변화의 정도나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했다.
“민간에서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는 각종 교육기법을 도입했습니다. 주로 감수성을 증대시키고 동기부여를 극대화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강화했지요. 특히 신경을 썼던 분야는 단지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원이 새로운 지식을 학습하는 21세기형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시스템 전반을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공무원 조직 역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그의 저서 ‘권력이동’을 통해 “세상은 이제 빠른 자와 느린 자로 나뉠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전통적 산업사회에서는 큰 것과 작은 것, 그리고 강한 것과 약한 것으로 우열이 결정되었지만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얼마나 빠른가가 우열은 물론 생존을 좌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인터넷과 각종 모바일 기기의 대중화 이후 우리가 직접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주목할 만 한 점은 이런 구분이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즉 빠른 기업이 느린 기업보다 유리하고, 빠른 국가가 느린 국가가보다 유리하다는 것. 윤 원장은 자신이 제시한 세 가지 기치 중 ‘더 빠르게’에 더욱 짙은 방점을 찍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 | ||
“이러한 ‘속도’의 문제가 개선된다면 민간 부문의 유연성과 성과 지향적 업무구조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실제 공무원 개개인의 역량은 탁월한데 관료시스템 특유의 경직성 탓에 역량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펼치기엔 여러 한계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결국 공무원 조직 역시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직적인 개편에 앞서 공무원 개개인의 변화가 절실하며, 이를 통해 전반적인 조직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윤은기 원장은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좌뇌가 발달해 논리력과 분석력이 뛰어나지만 공간 지각력과 창의력 등 우뇌의 기능은 약하다”며 “공무원의 잠자는 우뇌를 깨워 양뇌형 인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눈에 띄게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교육프로그램이 이러한 윤 원장의 의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민간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대폭 도입해 강의실의 활기를 불어 넣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추천을 받아 각 기업의 최고경영자와 고위공무원들이 함께하는 ‘민관합동정책세미나’를 마련했고, SBS의 교양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에서 착안한 ‘달인교실’ 역시 공무원교육 분야의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달인이 되는 데에는 학력이나 자격증이 중요한 게 아니죠. 목표를 극상 한치로 잡고 부단한 연마와 수련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 사람이 바로 달인이 아닙니까. 달인 정신의 프로세스를 잡아내 공직의 달인, 공공서비스의 달인을 만들고 싶습니다.”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팽배한 학력중심주의가 수많은 폐해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와 지식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지는 시대다. 결국 업무현장에서 얼마나 노력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윤은기 원장의 새로운 시도는 변화를 위한 변화, 혹은 시선을 끌기 위한 깜짝쇼가 아니라 국가의 체계의 근간이 되는 공무원 조직의 근본적인 혁신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신뢰와 기대를 보내게 된다.
그 자연스러운 웃음의 의미 그리고 기대
이제 공무원교육원은 정부과천청사에 자리 잡은 건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다. 윤은기 원장이 이야기하는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공정하게’를 실현해나가는 살아있는 조직인 까닭에 그 뜻이 머무는 자리는 모두 공무원교육원이 된다. 이는 활발한 대외교류 활동이 방증하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교육원 앞에 ‘소통의 집’이라는 텐트를 치고 동남아, 아프리카, 러시아 등 각지에서 온 외국 공무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소통을 통해 교육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녹색성장, 전자정부시스템과 더불어 우리나라 문화역사체험도 함께 진행해 외국 공무원들을 친한파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죠.”
이를 테면 공무원계의 ‘한류열풍’을 주도하고 있느냐는 말에 윤은기 원장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의 웃음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강사들의 무덤가에 핀 꽃이었으며, 전국은 물론 온 세계로 퍼져나갈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그가 지난 6개월여 동안 이뤄낸 성과보다 앞으로의 시간이 더욱 기대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공무원교육원에서 시작된 돌풍은 공직사회의 태풍으로 옮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도 그즈음이었다.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얼굴들. 그들이 바로 돌풍의 씨앗이며, 태풍의 눈이었다.
경직된 공직사회, 융통성 없는 관료주의, 스마일 버튼을 가슴에 단 채 어색하게 웃음 짓는 공무원들. 이 모든 것이 옛말이 될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가까운 관공서를 찾았을 때, 한없이 자연스럽고 환하게 웃는 공무원들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이제 우리도 웃는 연습을 틈틈이 해두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