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차관급회담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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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차관급회담 평가
  • 글/ 경을현 기자
  • 승인 2005.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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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차관급회담 숙제 미루고 '대화 틀' 복원
지난 16일부터 나흘 간 개성에서 밤샘을 곁들여 출퇴근 형식으로 열린 남북 차관급회담은 10개월만에 재개된 남북 당국간 대화라는 점에서 현지에서 들려오는 회담 상황 하나하나에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다. 당초 이번 회담은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한반도의 명운이 걸려 있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


이번 합의로 남북대화의 틀 복원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미국의 북핵 유엔 안보리 회부 움직임 등 불안한 조짐들이 하나둘씩 커지고 있던 5월 중순에 들려온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소식은 그야말로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북핵 상황이 기로에 서 있는 현 시점에서 작년 말부터 우리 정부가 수면하에서 꾸준히 대화재개를 요구해온 데 대해 북측이 차관급이라는 고위당국자 회담에 전격 호응해 옴으로써 북측의 결심이 선 게 아니냐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막을 내린 나흘간의 남북 차관급회담은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수준의 원론적인 합의에 그쳤다. 정부의 말대로 '1차 목표 달성' 수준이다.

19일 타결된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는 북핵문제를 공동보도문에 포함시키지 못함으로써 향후 북핵 해결의 전도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 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양측의 목표부터 달랐다. 남한측은 회담 첫날부터 '한반도 비핵화'와 '6자회담 조기 복귀' 등을 강조한 반면 북한은 “외무성에 보고하겠다."며 경청하며 시간을 끄는 수준으로만 대응했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이 장관급회담을 수용한 데다 이날 조지프 디트러니 미 국무부 대북협상대사가 "북미 양자회담을 수용할 의사가 있다."고 언급한 점은 긍정적인 기대를 품게 하는 대목이다. 북측이 뉴욕에서 이뤄진 북미간 접촉에서 미국이 설명한 내용에 대해 2주일 이내에 회신을 할 것이라는 일본 교도(共同)통신 보도와도 맥이 통한다. 결국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한이 복귀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조짐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번 합의로 두 차례의 장관급 대좌 자리를 마련했다. 남북 장관급회담과 평양에서 열릴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그것이다. 대화의 틀 복원은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7월 정부의 김일성주석 조문단 방북 불허를 계기로 무려 10개월이나 문을 굳게 걸어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정지상태였다. 그 점에서 이번 회담은 평가할 만 하다. 하지만 장관급회담 개최 합의 외의 모든 숙제는 뒤로 미뤘다.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장성급회담 등 분야별 협의체제 복원문제는 공동보도문에 담는 데 실패했다. 815 이산가족 상봉, 철도도로 연결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15차 장관급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열리지 못했던 여타의 회담들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판 승부' 이끌어내기에 역부족
남북 대화체제를 복원한다는 데 기본적으로 합의가 됐지만, 향후 남북관계가 순풍을 맞았다고 단정키는 어렵다. 이번 회담에서 보여준 북측의 태도를 볼 때 실무회담 등에서 언제든 또 다른 복병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대화 복원을 대가로 북한이 챙긴 것은 비료다. 양측은 "남측은 인도주의와 동포애적 입장에서 5월21일부터 비료 20만t을 제공한다"고 공동보도문에서 밝혔다. 그러나 추가 지원량과 시기 등은 합의하지 못해, 앞으로의 당국간 회담 의제로 남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폐연료봉 추출, 핵실험 징후설 등과 관련해 북측이 '벼랑끝 전술'을 펴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어 6자회담의 조기재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장관급회담에서 비핵화를 또다시 제안하면 북한측이 다음 단계인 핵 사찰을 받아야 하는데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북핵문제는 이번 회담에서 향후 남북관계를 판단하는 '가늠자' 역할을 했다. 남측은 겉으로는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우선 기조라고 강조했지만 회담 내내 실질적인 '화두'로 북핵문제를 거론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북한과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모양새를 보여 북핵문제의 주도적 역할을 확보해야 했다. 외부적으로는 평화적 해결을 위해 추진력있게 이끌어가는 역할자로서 관련국들에 명분을 내세워야 하는 이중 부담이 작용한 탓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남측의 '과도한 욕심'으로는 북측의 양보를 통한 '한판 승부'를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날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 복귀를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는 이봉조 수석대표의 언급에서도 읽혀진다. 결국 첫날 제안했던 ‘비핵화’라는 용어도 '협의중'이라던 표현도 '설명했다.'는 말로 수위가 낮아졌다. 쉽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북핵 문제에 관한한 정부는 '공포탄'만 쏜 꼴이 되고 말았다. 남측은 공동보도문 전문에 '쌍방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키로 했다' 고 언급하는 수준에 그쳤다. 당초 남측이 주장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4차 6자회담 복귀'라는 표현에 비하면 크게 약해진 느낌이다. 이 차관은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야 하고 지금의 핵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력히 전달하고,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이를 함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실무회담 격인 차관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본격 제기하기는 어렵다는 점에도 불구, 정부가 기대를 높여놨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찾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결국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지렛대 역할의 한계 노출은 미국 등 주변국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내 보수세력이 제기할 수 있는 '퍼주기 회담'이란 비판도 정부가 극복해야 할 숙제다.

남북장관급 회담이 타결된 것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비료 20만t을 북측에 지원하고 평양에서 열리는 6.15 공동선언기념행사에 남측이 장관급 대표단을 파견키로 합의한 것과 관련, "비료 지원과 특정 정치인의 행보를 맞바꾼 것 아니냐"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강재섭(姜在涉) 원내대표는 이날 당사에서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지난 10개월동안 남북관계는 식물인간 상태와 비슷했는데 이번 회담이 이런 '동맥경화증''을 풀어준 의미는 있다"고 평가한뒤 "핵문제와 6자회담 복귀에 대해 여러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반영된 흔적이 없는게 아쉽다"고 꼬집었다. 강 원내대표는 "6.15때 장관급이 간다는 것과 비료를 준다는 것에 대해 이의는 없지만 할말은 하고 얼굴 붉힐 것은 붉혀야 한다"면서 "정부가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욱 힘을 쏟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이번 협상을 통해 막혀있는 남북대화가 뚫렸다는 의의는 있지만 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에 대해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문제"라며 "비료를 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줘 놓고 나서 합의문에 '핵'자 하나만 넣어달라,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협상은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맹 정책위의장은 "이번 회담을 보면 비료 20만톤과 특정 정치인의 행보를 맞바꾼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차관급이라고 하고 저쪽은 조평통 실무국장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끌려다녀서야 무슨 의의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구상찬(具相燦)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이번 회담은 남한의 차관급이 북한의 국장급을 모시고 한 회의였고, 북핵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 등 우리측 요구가 완전히 묵살되는 등 형식과 내용면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했다"면서 "국민의 세금으로 대북지원을 하면서 정치적 의제에 묻혀 고맙다는 인사도 못받고 오히려 사정하고 애원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공은 내달 열리는 장관급회담으로
'공'은 다음달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장관급회담으로 넘어갔다. 격이 높아진 데다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의 회담이라는 점에서 의제 마련도 쉽지않으며, 논의되어야 할 사안도 많다. 당장 6월 말로 잡혀 있는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북 강경책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제고된 안이 나와야 한다. 최소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수준까지는 합의해야 남한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회담에서는 장관급회담을 서두르는 바람에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는 문제 등이 뒤로 밀려났다. 다음 달로 예정된 장관급회담에서 보다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위해서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조절하는 자세를 견지해 줄 것을 당부한다.



<정동영(鄭東泳) 통일부장관 인터뷰>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내달 21~24일 서울에서 열릴 15차 남북장관급회담의 의제와 관련, "정치군사 부문에 중점을 두고 남북 장관급회담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20일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간담회에서 남북 차관급회담 결과를 보고하면서 "비무장지대(DMZ)를 둘러싼 남북간의 선전전을 중단하기 위해 시설 철거가 진행되다가 장성급 회담 중단으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장성급회담 속개를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 장관은 특히 북핵 문제에 대해 "6자회담을 통한 북핵해결이 북한에 유익하고 유일한 해법임을 강조해서 설명하고, 설득하겠다"며 "북한은 핵문제를 미국과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살려내기 위해서도 장관급회담에서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또 "11개월째 답보상태인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815에 재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인도주의 문제를 추진해야 할 적십자 회담 등 각 회담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장관급회담부터 풀어가는게 중요하다" 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와 함께 "개성공단 사업을 비롯해 금강산관광, 경의선동해선 도로개통 등 3대 경협을 궤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장관급회담에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차관급회담 공동보도문에 북핵문제가 제외된 것과 관련, "북핵위기와 관련해 우리의 의사를 가감없이 명료하게 북한에 전달할 수 있었다"며 "북한도 매우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고 북한의 정책결정에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이날 회의장에 배포한 '남북차관급회담 성과와 의의'라는 자료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보유 주장 및 연료봉 인출 등 상황을 악화시킨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며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거론하면서도 우리측의 설득에 호응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데 합의함으로써 남북대화 채널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유용한 통로로 기능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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