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자살률 전년대비 36% 증가
최근 잇따른 청소년 자살이 충격을 던지고 있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로 일컬어지는 청소년기는 어느 나라에서건 자살률이 높아 사회문제가 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입시위주의 교육과 평가 등 획일적인 가치관으로 인한 억압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를 반영이라도 한 듯 최근 고교 내신등급제 강화를 골자로한 '2008 대입안'이 발표되면서, 청소년들의 자살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일 보도되고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청소년들의 잇따른 성적비관 ‘자살’
지난 4월 10일 학교 성적을 비관한 서울의 한 과학고 학생회장 이모 군(17)은 아파트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 같은달 21일 대전 정림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박모 양(17) 역시 성적비관으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으며, 27일 인천과학고 2학년 김모 양(17)은 학교 기숙사에서 쓰러진 채 누워있는 것을 본 같은 학교 친구 박모 양(17)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숨지고 말았다. 김 양은 평소 시험성적 때문에 고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같은달 29일 학교 건물에서 투신 자살한 서울 모고 김모 군(17)은 자살당일 수학 중간고사 시간에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감독 교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시험이 끝난 뒤 곧바로 학교 5층에서 몸을 던졌다.
올 한해만도 벌써 2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자살을 했다. 이처럼 최근 성적비관을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면서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벼랑끝으로 몰고 있는 입시경쟁 교육
최근 잇따른 청소년 자살에 대해 교육 및 청소년 전문가들은 "유명 대학을 나와 출세하겠다는 뿌리깊은 경쟁풍토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참교육전국학부모 노원제 상담부장은 "초.중.고교 교과과정이 입시정책 위주로 편성돼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점수 1점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급증했다는 학부모의 상담전화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좋은교사운동의 김현섭 교사는 "고질화된 학벌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어떤 입시제도를 도입하건 학생들의 자살이나 폭력을 통한 일탈은 계속될 것이다"라며 "학벌주의 철폐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서울교대 남경희 사회학과 교수는 "어릴 때 외국에 나간 학생들은 한국의 교육제도에 편입되지 않으려 한다"고 꼬집었으며, 한국교육개발원 정현철 박사는 "학교가 한줄 세우기란 단일한 가치로 치열한 경쟁을 요구해 학생들을 바탕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변호사 역시 "아이들이 매년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다. 모두 잘못된 교육 탓이다.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큰 손실이다"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최근 발표된 내신등급강화를 골자로 한 2008년 대입안이 발표되면서 잇따른 청소년들의 자살이 연일 보도되면서 학생들은 물론 각 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6일 EBS에서 방송된 '2008 대입안'에 대한 공개 토론장에서의 김유림 학생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기 친구의 공책을 찢어 버린다든지, 그 책을 없앤다든지 하는 비윤리적 행위도 있는 것 같다"며 "내신 등급제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평가라는 악조건 하에서 친구들끼리 경쟁해야 하니까 친구간에 멀어지는 것도 있다. 또한 상대평가는 노력한다고 나아지는 것이 아니고, 친구가 (시험을) 잘보면 노력의 결과가 없어지는 거니까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1학년생 자녀를 둔 이용호 씨는 "거주지가 비평준화 지역이라 고입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이 더 힘들다. 일년에 4번씩 내신성적 때문에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한다. 교실에 친구도 없고, 친구가 시험 망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까지 와서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한다"고 토로했다.
이에 교육부 인적자원관리 이종갑 국장은 "고1학생들이 내신 등급제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신만으로 대학간다' '과목 한개 시험 잘못 칠 경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잘못 알고 있는 말인거 같다. 네 번 시험이 수능처럼 12번 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1~3학년 성적 반영 비율을 달리하고 있다. 고 1성적은 계산을 해보니 1개 과목이 대학에서 실질 반영률이 30%라고 할 경우, 지금 30%인 경우가 하나도 없다. 3~7%이다"고 말했다.
고액과외 등 사교육이 입시경쟁 부추겨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5월 2일 발표한 '초등학교 과외학습 실태' 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3,440명의 초등학생 중 76%가 학교 공부 이외에 개인과외, 그룹과외, 학원수강, 학습지 과외, 통신 및 인터넷 과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무려 84.3%가 과외를 받고 있으며, 특히 서울 강남지역은 과외 학생이 89.9%나 됐다. 도시 규모별 과외 초등학생 비율은 대도시가 78.8%, 중소도시 75.3%, 읍.면이 59.9% 순으로 나타나면서 도시 학생들이 과외 중압감을 더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중학교 진학에서도 대입과 직결되는 국어, 영어, 수학, 과외를 10명 중 6명 꼴로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이라도 한 듯 실제로 서울대 입학생들의 출신을 보면 부유층 집안의 학생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한 듯 서울대의 문은 치솟는 사교육비와 족집게 과외비를 충당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 넓게 열려있다. 이른바 상위권 대학들이 집안 출신을 배경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치열한 입시경쟁 현실속에서 청소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과외수업 등으로 성적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2008학년도부터 대입제도가 크게 달라지는 등 잦은 입시제도의 변화를 고려할 때 그 중압감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 교육 계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에 입을 모으고 있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수시로 바뀌는 입시 제도를 비롯, 고액과외 등의 사교육의 풍토가 청소년들간의 이질감을 조성하는 한편, 학생 스스로가 '점수'라는 것에 얽매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은 능력있는 학생을 뽑는 방법으로 논술을 도입해 그나마 수능공부만으로도 벅찬 고교생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으며, 교육부는 변별력 없는 수능출제와 학교 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내신적용을 고수함으로써 학생들을 ‘자살’이라는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특정 청소년만의 문제 아니다
최근 성적 중압감을 이기기 못한 청소년들의 잇따른 자살소식이 전해지고 있지만, 과거 청소년들의 자살을 볼 때 청소년들의 자살을 오늘날만의 문제로 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유럽이나 미국의 청소년들이 가정 불화, 마약이나 알코올 복용 등에 따른 심리적 충동이나 정서적 장애로 자살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과중한 학업 부담이나 집단 따돌림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2008년 새로운 대학 입시를 대비한 고등학생 1학년생들의 내신점수 경쟁으로 인한 잇단 자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학업에 대한 부담감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다. 이렇듯 청소년들이 부담감으로 인해 결국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지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좀 더 깊숙이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곳곳에서 성적 비관을 비롯, 사랑이나 우정, 부모의 이혼을 비롯한 가정 내 갈등 등 청소년들의 자살 이유는 다양했다. 최근 잇따른 성적 비관 자살을 비롯, 이들의 공통점은 막다른 심정에서 손쉬운 해결방법으로 죽음을 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직접 자살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괴로울 때면 한번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이제 '자살'은 특정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얘기다.
청소년들의 자살 대부분 '충동적'
심리학자 엘카인드(Elkind)는 "사회적으로 많은 기대와 요구가 청소년 자살의 원인이 된다. 이러한 자살은 주변의 기대가 자신의 능력보다 높을 때나 실패를 경험할 때 증가한다"고 말했다. 대개 청소년기를 신체적, 정신적 급변과정을 거치는 과도기이며, 또한 외적 스트레스가 많고 감정기복이 심한 격동의 시기라고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시적으로 정신적 불균형 혹은 부적응에 처하게 되어, 자살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시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자살로 사망한 청소년 수는 약 250여 명 정도로 이는 1만 명당 1명 꼴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또한 지난 5월 3일 통계청이 내놓은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03년 15~19세 청소년 10만 명당 사망률은 운수사고 12.3명에 이어 자살이 8.2명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비해 자살률이 36%로 증가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10대 사망원인 중 세 번째,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 번째를 차지할 정도로 자살은 청소년 사망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한편,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교육연구회'와 '전교조 보건위원회'가 지난 4월 28일 전국 초.중.고 학생 2,177명을 상대로 공동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4명 정도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자살 특징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격과 가족관계, 살면서 겪는 사건 등 소인이 우발적 요인과 만나면서 충동적으로 결행하는 '즉각반응형 자살'이 많다고 지적한다. 청소년기에는 자신에 대해 거는 기대치가 높아 현실과 거리가 큰 만큼 좌절감 역시 깊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자기 파괴행위로 나타내기 쉽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상태에 이르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부모와의 대화가 자살 방지에 효과적
자살을 하게 되는 청소년의 약 50~60%는 우울증 상태에 있다고 한다. 특정 상황으로 인해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들도 그 중 절반 이상은 우울증 상태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한다면 청소년들의 자살률을 낮출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구 몇 나라에서는 청소년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로 자살률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한다. 이렇듯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살이 우울증 및 충동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충분히 청소년들의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 보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우울해 보이고 학업 성적이 떨어지거나 식욕이 없어 하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듯한 기색이 있으며 ▲점차 대인 관계에서 떨어지고 혼자 떨어져 고립되어 간다. ▲죽음, 실존, 자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거나 글을 쓰고자 하며 ▲과거에 심각한 자살 기도의 전력이 있다. 이러한 행동을 보인다면 정신과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그 행동 및 동태를 세심하게 지켜보며 개인적인 면담과 가족 면담을 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고교생 대상 설문결과 부모와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청소년의 자살 방지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어머니 못지 않게 아버지지와의 대화도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대 심리학과 이지연씨가 '스트레스와 부모-자녀간 의사소통이 청소년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서울과 경기 소재의 고교1~3학년 학생 6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결과 이같이 조사됐다고 밝혔다. 또한 스트레스와 자살 생각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학교생활 ▲본인문제 ▲가정생활 ▲환경문제 ▲대인관계 등 5개 영역 중 가정생활과 본인문제, 학교생활이 자살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이 씨는 "청소년의 경우 부모와의 관계 변화로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어 새로운 관계적응과 상호이해를 위한 개방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어른들과 학생간의 대화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는 것을 볼 때 어른들과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자살과 자살충동 경험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두 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의 자살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자살의 원인과, 대책마련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의 자살이 대부분 충동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볼 때 청소년이 자살은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한 학생들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 교사, 학생들이 청소년기의 특성과 심리적 갈등의 해결방법, 자살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올바르게 알고 있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런 자살에 대한 얘방교육이 선행되면서 가정, 학교, 사회의 각 측면에서 예방대책이 강구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