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술국치 일백 주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에 강제 병합되는 비운과 함께 남북으로 분단된 후 전쟁을 겪는 등 비운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도약이 있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약소국의 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91년에야 유엔에 가입했을 정도로 국제사회 외교무대의 변방 국가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11월11일부터 이틀 간 서울에서 열리는 ‘G20정상회의’는 사뭇 깊은 의미가 배어 있다. 국제 경제협력의 최상위 논의 장으로 불리는 G20정상회의 개최국이 된 우리의 위치가 새삼 감격스럽기 때문이다.
올림픽, 월드컵에 버금가는 정치축제
정부는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 G20정상회의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의제 개발과 행사장 마련 등 서울 G20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다. 서울 G20정상회의 준비작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성공적인 회의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될 회의 의제다.
우리나라는 토론토 회의에서 우리 주도의 ‘개발 이슈’와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서울 G20정상회의 의제로 확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국제적인 평가와 위상 변화 이외에도 서울 G20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 가져올 효과는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9월15일 발표한 ‘서울 G20정상회의와 기대효과’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회의 개최를 통해 발생하는 유무형의 경제효과가 21조 5,500억 원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행사 자체의 직접효과와 국가브랜드 위상제고에 따른 각종 간접효과가 포함된 금액이다.
이 같은 서울 G20정상회의의 경제적 파급효과는 우리의 경제성장률(2009년 기준) 2%에 해당되는 규모이며, 현대 쏘나타를 기준으로 자동차 100만 대, 30만 톤급 초대형 유조선 165척 수출효과와 맞먹는다. 하지만 이보다 주목할 것은 이를 통해 국민의 자긍심이 고취, 글로벌 마인드 함양, 기업의 신성장동력산업 확충, 한국경제의 구조적 불안요인 완화 등 측정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는 유형의 가치에 대한 부분이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의 신명이 대한민국의 성장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면 2002 한일월드컵의 신명난 붉은 함성은 크게 자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렸다. 2010년 11월11일 열리게 될 서울 G20정상회의는 선진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신명나는 축제로 엄청난 무형의 가치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주 G20재무장관 회의 통해 ‘환율전쟁’ 일단 휴전
지난 10월22일부터 다음날까지 경주에서 열린 G20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 등 회원국들이 인위적으로 환율 수준을 높게 유지하거나 끌어올리는 것”을 자제키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미국이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위해 무역 흑자국들을 견제하는 데 일단 성공한 셈이다. 중국도 영향력이 큰 글로벌 금융기구인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차지하는 지분율을 6위에서 3위로 늘리는 합의를 도출하면서 세계 3대 경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게 됐다. 반면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으로 경제력이 약해진 유럽국가의 IMF 지분은 축소돼 세계경제에서 발언권이 작아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주 회의에 직접 참석해 ‘환율전쟁’ 억제를 위한 중재를 주도했다. 이에 유럽국가들을 설득해 IMF지분 조정을 이끌어내는 등 G20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렇듯 가장 민감한 환율문제와 국제통화기금(IMF) 개혁 등이 에 대한 극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서울 G20정상회의에 대한 성공전망이 더욱 밝아졌다.
하지만 이번 환율전쟁은 완전히 끝났다기보다 잠시 휴전에 그쳤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에 따르면 11월11일 서울에 모인 각국 정상들은 경주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중 토론을 펼친다. 원칙 중심인 경주회의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자리다. 일단 환율이란 큰 난제는 실마리를 찾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환율 논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이제 환율논쟁은 종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경주선언에서는 환율에 대한 언급이 진일보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환율제도에 대한 공동성명 문구는 토론토 정상회의 때 ‘시장 지향적(market oriented) 환율 결정과 환율 유연성을 제고한다’에서 ‘시장 결정적(market determined)인 환율제도 이행과 경쟁적인 통화 절화를 자제한다’로 바뀌었다.
변한 것은 단어 하나지만 차이는 크다는 것이 정부의 해석이다. G20준비위 고위관계자는 “‘지향적’은 시장에 맡겨서 노력하다 안 되면 개입하겠다는 정도지만 ‘결정적’은 개입을 상당히 안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당분간 각국이 앞다퉈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G20은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다. 이는 작은 변화나 변수에도 회의에서 결의된 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외환정책은 금리문제와 달리 비공개로 이뤄진다. 어떤 정책이 ‘시장 결정적’이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중국 등은 고정환율체제여서 ‘시장 결정적’이라는 문구 자체가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번 합의로 환율전쟁이 끝났다고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얘기다.
G20공동선언 실질적인 실천이 관건
한편 외신들은 G20재무장관들이 경주에서 열린 실무 회의에서 그 동안의 난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한 만큼 서울에서 열리는 정상회의는 사전에 논의한 내용을 추인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말끔히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앞서 회원국 재무장관들에 보낸 서한에서 G20 회원국은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또는 흑자 비율을 4% 아래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G20 재무장관들은 경상수지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당장 미국의 제안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패배라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사안의 우선순위를 조정한 결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의 경상흑자는 GDP의 4.7%이고 2015년까지 이 비율이 8%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가이트너 장관의 제안이 수용됐다면 중국은 경상흑자를 낮추기 위해 획기적인 조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의 격렬한 반발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가이트너 장관이 10월24일 중국으로 날아간 점이 주목된다. 가이트너 장관은 왕치산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미·중 전략대화를 갖는다. 양측은 전략대화를 통해 환율 정책에 대한 담판을 시도할 전망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던 미국과 중국이 자칫 G20정상회의라는 판을 깰 수 있는 정면충돌을 피하는 대신 양자 접촉이라는 우회 돌파를 시도하는 셈이다.
한편 시장 전문가들은 공동성명 가운데 환율정책에 대한 표현이 광범위해 시장 참여자나 각국별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일본이 엔 환율과 관련, 추가개입 여지를 열면서 시장 결정적 환율이란 선언을 무색하게 했다.
노다 요시노코 일본 재무상은 “엔고가 지속되면 일본 경제에 좋지 않다”며 “필요한 경우 적절하고 과감한 행동을 취하겠다는 우리 입장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영국 텔레그라프는 모두가 G20정상회의의 성공개최를 전망하는 가운데 일본이 즉각 이런 평가에 제동을 걸었다고 전했다. 환율전쟁은 각국의 공통된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잠시 포격을 멈출 수는 있어도 종전을 선언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긴장감 감도는 서울 강남 코엑스, 인천국제공항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행사장인 서울 강남 코엑스와 인천국제공항 주변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다. 회의시설 설치공사가 한창인 행사장 입구에는 금속탐지기와 엑스레이 투시기 등 검색대가 설치됐다. 경찰은 단계적으로 코엑스 주변 경계를 강화해 행사 기간인 11~12일 코엑스를 중심으로 반경 2㎞를 3중으로 둘러싸는 저지선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각국 정상과 주요 인사들이 들어오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 역시 긴장감이 감돌기는 마찬가지다. 각국 정상 등 행사 참가자들이 도착하기 하루 전부터는 폭발물탐지견이 항시 여객터미널 내부를 감시하며 폭발물 처리반은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갈 방침이다.
인천공항경찰대 관계자는 “평상시에는 테러 협박이 있어야 폭발물탐지견이 청사 내부를 수색한다”며 “G20을 앞두고 최고 수준의 테러대비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공항 주변 역시 철통같은 경계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경찰은 정상회의 개최 5일 전부터 경찰관 800여 명과 기동대 2개 중대 등 1,000여 명을 추가 투입해 공항주변 경계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이렇듯 코엑스와 인천공항 등 G20정상회의 관련 주요시설 경비에 전체 경찰력의 약 40%에 달하는 5만여 명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조현오 경찰청장은 10월25일 기자간담회에서 “UDT(해군 특수여전단 수중폭파대) 동지회의 일부 회원들이 도심 과격시위를 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조 청장에 따르면 UDT동지회의 일부 강성회원이 “비정규군인 특수임무수행자회 등에는 혜택을 주는데 정규군인 우리에게는 왜 지원을 안 해주느냐”고 주장하며 서울 한복판에서 시위를 준비 중이라는 것.
경찰이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30∼40대 회원을 중심으로 100여 명이 테러에 나설 예정이며, 이들 중 30여 명은 경기도 모처에 모여 훈련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경찰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며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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