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8.29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두 달여 가량이 지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주택매매시장은 여전히 한산하고 전세시장은 여전히 어수선하다. 집 값 하락의 우려로 사람들은 매매를 꺼리고 대신 보다 안전한 전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세 수요가 높아지다 보니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이를 충당하지 못하는 서민들은 서울 도심에서 외곽으로 또 경기도 쪽으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전세난민이라는 웃지 못 할 말까지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김포에 사는 주부 김모 씨, 내 집 마련 적금이 만기가 되었지만, 당분간 집 살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집을 사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불안한 부동산 시장에서 집을 산다는 건 전 재산을 건 도박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덜컥 내 집 마련을 했다가 오히려 손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최근 김모 씨처럼 집을 살 만한 자금여력이 되어도 전세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이 전셋집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집값 하락이다. 내리기가 무섭게 떨어지는 집값으로 주택 매매시장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반면 주택 전세 시장은 물건이 나오기가 무섭게 계약된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 오히려 수요를 공급이 따라주질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전세값 상승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어 형편에 맞는 전셋집 구하기도 쉽지 않다.
직장인 정모 씨. 최근 서울 마포구에서 경기 부천시로 집을 옮겼다. 정 씨가 살던 마포구의 아파트 전세금이 2년 전 2억8,000만 원에서 최근 3억 4,000만 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1억 6,000만 원짜리 전세를 찾아 서울을 떠났다.
“도대체 얼마까지 오르려나…”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
수도권 전세 가격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8월 중순 이후 상승세로 반등한 전세 시장은 이번 주 오름세가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수도권 지역의 전셋값이 상승한 것은 서울의 전세 가격 수준이 이미 한계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기 지역은 신규 단지 입주로 물량에 여유가 있는 파주와 고양을 제외한 28개 지역이 보합세 혹은 상승세를 기록했고, 전주(0.07%)보다 상승폭도 커졌다. 반면, 매매시장은 8.29 대책 이후에도 관망세가 이어지면서 약세를 이어갔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달 용산구 전셋값 상승률은 1.33%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중구도 1.16% 올랐고, 성동구도 0.78% 뛰었다. 경기 및 신도시 전세가변동률은 각각 0.16%, 0.07%며 인천은 0.09%다. 지역별로는 용인시(0.43%)가 가장 큰 폭으로 올랐고, 이어 남양주시(0.37%), 화성시(0.30%), 시흥시(0.21%), 의왕시(0.20%), 인천 서구(0.19%), 중동신도시(0.16%), 안산시(0.15%), 분당신도시(0.13%), 인천 계양구(0.13%) 등이 올랐다.
용산구 한강로와 문배동 일대 전용 85㎡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2월 2억 2,000만 원이었으나 지금은 2억 9,000만 원으로 7,000만 원이나 올랐다.
강동구 암사동 롯데캐슬퍼스트 168㎡가 2,000만 원 상승한 4억 3,000만~4억 5,000만 원, 고덕동 고덕아이파크 85㎡가 1,000만 원 상승한 2억 7,000만~2억 8,000만 원이다.
용인시 동천동 동문굿모닝힐5차 108㎡가 2,000만 원 오른 1억 7,000만~2억 2,000만 원, 보정동 포스홈타운 161㎡가 1,500만 원 상승한 2억 2,000만~2억 4,000만 원이다.
반면, 매매는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및 수도권 집값은 모두 0.2%씩 내렸다. 서울 및 수도권 모두 6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성북구(-0.28%), 금천구(-0.12%), 은평구(-0.09%), 서대문·성동·동대문구(-0.07%), 중랑구(-0.06%) 등이 하락했다.
성북구는 길음뉴타운내 래미안9단지 입주로 기존 아파트 처분 급매물이 나오면서 큰 폭의 하락세를 기록했다. 매수심리 위축으로 거래가 드물고, 특히 중대형 아파트의 매수세는 더욱 줄어 하락폭이 크다. 석관동 두산은 면적별로 3,000만~3,500만 원 가량 가격이 빠졌고, 길음동 길음뉴타운8단지도 1,000만~1,500만 원 정도 내렸다.
금천구도 전반적으로 매수세가 끊기면서 저렴한 급매물도 거래가 어렵다. 독산동 금천현대 122㎡가 1,000만 원 내려 3억 3,000만~3억 7,000만 원 선이고, 가산동 두산 79㎡는 250만 원 정도 하락해 2억 6,500만~3억 3,500만 원 선에 시세가 형성됐다.
은평구는 은평뉴타운3지구와 북한산래미안, 북한산힐스테이트 등 불광동 재개발 입주 물량으로 인해 기존 아파트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불광동 홍현솔레디움 76㎡가 500만 원 떨어져 2억 4,000만~2억 6,200만 원 선이다.
“2억 원 올려 달라” 부르는 게 값
주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8.29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 가량이 지났지만 부동산 시장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아파트 매매가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전셋값만 급등하고 있다.
지난 10월7일 KB국민은행 부동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올 들어 9월 중순까지 아파트 매맷값은 2% 떨어졌으나 전셋값은 4% 올랐다. 올 가을 이사철인 8월2일∼9월27일 두 달 간 전셋값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서울은 1.3%, 수도권은 1.4% 올라 예년 수준을 기록했지만 수도권의 경기 남양주(4.2%), 광명(3.9%), 시흥(3.2%), 용인(2.5%) 등에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여전히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 수요자들이 매수보다는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닥터아파트 김주철 팀장은 “일반적으로 전세가가 상승을 하면 매매가와 차이가 좁혀짐에 따라 많은 수요자들이 매매 수요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적어 자금적으로 여유가 있는 전세입자라도 아직까지는 매매수요로 넘어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전세 재계약률도 늘면서 공급이 적어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아쉬울 게 없는 공급자들은 너도나도 전셋값을 올리기에 바쁘다. 서울 강남과 강북지역은 물론 분당 등 경기도 등지에서 전셋값이 1억 원 이상 폭등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부르는 게 값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 그렇다 보니 전셋값을 2억 원이나 올려달라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나오고 있다.
이사철이란 계절적 특성도 전셋값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전셋값 비중은 매맷값의 60%를 넘어선 곳이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9월30일 현재 서울의 전셋값 상승률은 0.16%로 한 달 전(0.08%)보다 배나 뛰었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지난 2008년 하반기 세계 금융위기 당시 전셋값도 최저점으로 떨어졌다”며 “당시 계약한 수요자들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고 있어 내년 1~2월까지 구조적으로 전셋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전셋값은 당분간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전세 수급불균형… 내년이 최대고비
전문가들은 내년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급불균형이 가중되면서 전세시장은 내년 상반기 최대 고비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올해 말까지는 서울, 수도권 내 아파트 입주물량이 크게 줄지 않으나, 내년 상반기부터는 아파트 입주가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전세시장 수급 불균형이 가중될 전망이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연구소장은 “올해 전세시장은 10월말까지 상승하다 11월 계절적 비수기에 접어들면 잠시 주춤할 수 있지만 내년이 문제다”며 “서울 및 수도권 입주 물량이 급감함에 따라 전세 매물 부족과 가격 오름세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주철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10월 수도권 입주 물량은 7,950가구로 전월대비 50%가 줄었으며, 전년 동기보다는 55%나 줄었다”며 “여기에 월세 전환사례가 늘고 있어 전세대란은 내년 봄 이사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업계에 따르면 하반기 중 서울에서 1만 9,342가구가 입주예정이다. 경기도와 인천에서도 각각 5만 8,657가구와 1만 2,736가구가 입주한다. 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11월 입주 예정인 전국 아파트는 총 1만 3,918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10월 1만 8,187가구 대비 4,269가구 감소한 것이며 올 들어 최소 물량이다.
수도권 입주물량은 8,585가구로 그중 서울의 경우 이달 3,326가구보다 1,142가구 줄어든 2,184가구가 집들이에 나선다. 경기는 11월 들어 물량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11월 2,999가구가 입주 예정으로 지난 10월보다 1,073가구 감소한 수치이다.
내년 입주물량은 올해의 1/3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내년 전국 입주 예정 물량은 12만 450가구 수준으로 올 입주물량 32만 1,081가구의 37.51%에 그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입주 물량은 올해 17만 채에서 내년 11만 채로 급격히 줄어든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10만 가구가 넘는 미분양이나 재개발·재건축 등이 변수가 되겠지만, 내년에는 집값하락 기대감이 불식될 경우 매매와 전세시장이 모두 불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8.29부동산 실패? 추가 대책 고심 중
아직 8.29부동산대책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하기에는 이르다. KB국민은행이 부동산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달 매매시장이 ‘매수자 우위’라고 대답한 비율이 7.8%로 전달의 5.7%보다 높다. 서울에서도 ‘매수세 우위’라고 답한 비율이 0.7%로 전달(0.4%)보다 개선됐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가을 이사철 수요 및 신혼부부 수요 등의 영향으로 매수 심리가 다소 개선돼 지방 집값은 소폭 상승했고, 서울 및 수도권은 집값 하락세가 둔화됐다”며 “8.29 대책에 대한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세난에 따른 우려의 목소는 여전히 거세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서민 주거난을 우려하자 정부는 9월30일 “종합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로 전세시장을 비롯한 주택시장 상황 전반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요청이 있을 경우, 여당이나 관계부처 등과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흥길 정책위의장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셋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조치할 수 있는 사항은 수도권 공급량을 늘리는 방법 외에 제한적”이라며 “현재 시장동향을 워치하며 효율적인 대안이 마련되도록 조속히 당정협의를 갖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