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뭐길래’ 롤러코스터 배추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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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가 뭐길래’ 롤러코스터 배추값
  • 박희남 기자
  • 승인 2010.11.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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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이상기후와 태풍으로 야채 값 폭등, 배추 절도범까지 등장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만약에 김치가 없어진다면 무슨 찬으로 상에 차릴까. 중국 음식 일본 음식 다 차려놔도 김치 빠지면 왠지 허전해.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김치 주제가 中-

뜸을 들이자마자 금방 밥공기에 담은 하얀 쌀밥을 호호 불어 갓 담근 겉절이 김치를 얹어먹는다. 이 순간만큼은 임금님이 즐겨 드시던 12첩 반상도 부럽지 않다. 어디 그 뿐인가. 쫄깃한 면발에 얼큰하고 구수한 국물의 칼국수에 김치를 척척 얹어 먹을 때 그 맛이란. 수려한 외모의 여성이 요염한 자태와 눈빛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짜릿함과도 같다.

요즘 같이 날씨가 쌀쌀해질 때면, 더욱 생각하는 바로 그것. 우리들의 친구이자, 가족이요, 연인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등 먹을거리 ‘김치’. 배추김치, 무김치, 오이소박이, 깍두기, 부추김치, 고들빼기, 나박김치 등 명실상부 김치 종주국으로 불리며 김치천하를 이루었던 대한민국이 때 아닌 김치대란을 맞아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에 결코 빠질 수도 또 빠져서도 안 되는 김치. 2010년 서민의 음식 김치가 ‘금(金)치’로 둔갑했다.
 
배추 한 포기 1만 3,800원 사상 최고가 기록 무·마늘·대파 등 야채 가격 5년 만의 수직상승↑

지난 9월,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강풍을 동반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방심했던 탓일까. 태풍의 끝자락이 몰고 온 폭우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국민들은 속수무책으로 참담한 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도심과 농촌지역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주택과 상가, 농경지가 침수됐고 늦여름 집중호우 탓에 야채 값은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그 중 단연 최고는 ‘배추’였다. 출하 대기 물량이 대폭 줄어든 탓에 배추는 예년 대비 10배 이상의 가격이 오르며 한 포기 소매가격이 1만 3,8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야채 값 폭등의 극에 달았던 추석직전보다 무려 4,000원이나 오른 것으로, 명절이후 평균 수준으로 낮아지며 뚜렷한 내림세를 보인 과일 값과는 달리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야채 값은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육류보다 비싼 야채 값에 시민들 김장고민 깊어져

이처럼 야채값이 상승하자 소비자들의 불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씨(34, 주부)는 얼마 전 집 근처의 대형할인마트를 들렸다가 배추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고 화들짝 놀라 얼음이 됐다. 기껏 해봐야 2,000원~3,000원 정도했던 배추가 무려 1만 원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삼겹살 1인분에 8,000원 정도이니 배추가 육류보다 훨씬 비싼 셈. 이에 A씨는 “살다보니 별별 희한한 꼴을 다 보고 산다. 지금 내 바구니를 봐라. 배추 한 포기, 호박, 고추, 무 야채 몇 가지 샀는데 벌써 3만 원이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중국산 김치를 사 먹자니 찜찜하고. 돌아오는 김장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앞이 막막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결혼 22년 차 베테랑 주부 P씨(48, 여)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찍 감치 배추를 포기한 P씨는 ‘꿩 대신 닭’이라고 깍두기를 담기 위해 장을 보러 갔다. 그러나 이번엔 무가 말썽이었다. 배추 값에 이어 무값까지 가격 전쟁에 동참한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P씨와 같은 생각으로 배추의 대체 김장재료로 무를 찾았고, 덩달아 무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무’ 모시기에 돌입한 것. 무의 가격은 마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개당 3,500원~4,000원 가량에 판매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소비자들의 걱정을 한시름 덜고자 배추 30만 포기를 10월5일부터 20일까지 각 구 전통시장에 경매가격의 70% 수준으로 공급 했다. 배추 특별할인 판매가 처음으로 열리던 관악구 시장 앞 골목에는 배추를 구매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충 어림잡아 계산 해봐도 50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이었다. 

마침내 오전 11시가 됐다. 배추 판매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 관계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들은 줄을 선 순서대로 간이 판매대로 나와 1만 4,000원을 지불했고, 자원봉사를 맡은 시장 부녀회원은 배추 3포기가 들어간 망을 건네주었다. 배추를 건네받은 소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어린아이마냥 기뻐했다. 일각에서는 “배추 심봤다”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끝끝내 배추를 구매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탄성소리가 새어나왔다. 일부 시민들은 부족한 판매량은 지적하며 서울시 측의 판매방식이 어설프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총 판매된 배추는 2,700포기. 약 5억 명(2009년 기준)이 넘는 관악 구민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배추였지만, 이날 이곳을 찾은 소비자들은 너무나도 행복한 하루였다. 한편 같은 날 중랑구 망우도 우림시장에서도 오전 11시부터 배추를 팔기 시작해 1시간40분만에 1,700포기를 완판하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배추보다 저렴한 포장김치 ‘대박 행진’

추석 이후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홈쇼핑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몰, 대형할인마트 등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포장김치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포장김치의 경우, 미리 원재료 산지와 계약 재배를 통해 안정적인 가격에 재료를 공급 받기 때문에 시중의 원재료 상승과 무관하게 가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배추대란이 계속되자 소비자들은 직접 김치를 담그는 것보다 포장김치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포장김치는 물량이 없어서 못 팔정도. 특히 온라인상에서의 포장김치 인기는 연일 뜨겁다. C쇼핑몰은 TV홈쇼핑 김치방송 매출이 전월대비 29% 증가함에 따라 5월부터 포장김치 방송을 주 1회 이상 편성했으며, 판매 20분 만에 완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L홈쇼핑 역시 김치방송을 한 결과 매출이 급격이 증가해 주 1회 김치 방송을 고정 편성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김치 할인 행사를 실시, 소비자들의 니즈를 100% 충족시켰다. 각 쇼핑몰들은 브랜드 별 김치를 최대 30~40%까지 할인하고 다양한 사은품 증정 행사를 펼쳤다.

배추대란에 중국산 배추 각광, 아무리 저렴하다지만

한편 정부는 배추에 이어 믿었던 포장김치마저 비싼 몸값을 자랑하자, 응급처치 방안으로 중국산 배추 160톤을 수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중국산 배추가 언제까지 공급될지는 미지수다. 중국 산둥성 지역의 배추 작황이 좋지 않은데다 재배 면적이 축소되면서 물량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과연 ‘중국산 배추와 김치를 믿고 먹을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중국산 배추는 지난 3년 간 기생충 파동을 겪으며 1600t를 폐기처분해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당시 인터넷상에서는 ‘중국산 배추 괴담설’이 퍼지며 ‘중국산 배추는 거름으로 분뇨를 줬다’, ‘기생충이 우글우글한 배추 먹고 싶나’, ‘농약범벅 배추’ 등의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 추측성 글들이 게재됐다. 식품의약청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검역 과정에서 병충해 검사와 잔류 농약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통관된 배추는 전혀 위생상에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중국산 배추가 일반 가정보다는 대량으로 사용되는 식당 등 요식업소에 보급될 가능성이 높다지만, 이 경우에도 중국산 배추를 이용한 김치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돼 중국산 배추의 실효성 문제에 대한 논란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식당, 도시락 등 요식업체에서는 과거 한 차례 말썽을 일으킨 중국산 배추 보다 위생 관리시스템이 더 안전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과 미국산 배추의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치대란 속 식당주인 왈 “김치 더 못줘” 금(金)치를 먹기 위해선 추가비용을 더 내야 한다?

배추 가격 폭등은 식당 문화마저 바꿔놓았다. 배추 가격이 상승하자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식당에서는 김치를 추가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1,000원~3,000원 가량 추가 비용을 받고 있다. 식당 주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입원의 30%로 식자재를 구입하는데, 배추 값이 상당히 오른 요즘은 인건비도 뽑기 어렵다는 것. 폭염과 폭우로 야채 가격이 폭등하면서 외식 업체와 식자재 업체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특히 김치찌개나 야채 위주로 만든 한식 메뉴가 주력인 식당의 걱정은 배가 되고 있다. 올해로 김치찌개 전문점을 10년 째 운영하고 있다는 S(56, 남)씨는 연실 “죽겠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치찌개의 주재료는 김치인데, 배추값이 금값이니 음식 자체를 조리할 수 없는 상황. 이에 S씨는 “타 식당은 대체 재료라도 사용해서 만들면 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김치찌개 집에서 양배추를 사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라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민들 역시 김치를 더 달라고 말하기 민망해했다. B(25, 여)씨는 “얼마 전 한식당을 갔는데, 다른 반찬은 다 있는데 김치만 없는 게 아닌가. 마침 뉴스에서 배추값 상승 뉴스가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 표정을 보니 완전 울상을 짓고 있더라. 예전 같으면 당연히 더 달라고 주문했겠지만 왠지 더 달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반면 J(32, 남)씨는 “돈을 지불하고 먹는데도 눈치 보면서 김치를 먹어야 한다니. 매우 불쾌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금(金)치’가 뭐라고, 배추모종·마늘까지 절도해

식당가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각지에서는 차마 웃을 수 없는 배추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9월29일 경기도 수원 장안구에서는 햇볕에 말리려고 대문 앞에 펼쳐 놓았던 5㎏ 분량(약 3만 원)의 통마늘을 들고 달아나던 C(50, 여)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최 씨는 “버린 마늘인 줄 알고 가져갔다”고 주장했지만 이달 들어 4차례에 걸쳐 일대 이웃집에서 마늘을 비롯해 양파, 고추, 등 김장재료와 한약재료 등 170만 원 상당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수원에서는 이에 앞서도 S(78, 여)씨가 텃밭에 파종한 배추모종 120여 개를 도둑맞았다며 순찰을 강화해 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배추 재배지의 본 고장 강원도에서도 배추 절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10월4일 강원 원주경찰서는 타인의 밭에서 배추를 훔친 혐의로 S씨(45, 남)를 체포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S씨는 주민이 재배하던 밭에서 배추 10여 포기를 훔쳤으며 검거 이후 “김치를 먹고 싶은데 배추 값이 올라 배추를 훔쳤다”고 진술했다. 평창에서는 L씨(73, 남)을 포함한 3명이 고랭지 배추 420포기를 1톤 화물차량에 싣고 도주하려다 밭주인에게 발각돼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말. 말. 말. “양배추 김치가 맛있다고요?”

MB 양배추 김치 언급, 국민들 반감 샀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그런데 요즘, 말로 천냥빚을 굳이 사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그는 바로 대한민국의 수장 이명박 대통령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가 올라가고 있어 화제다. 사연인 즉 김윤옥 여사로부터 배추 1포기에 1만 원을 넘는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이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 주방장을 불러 배추가 비싸니까 자신의 식탁에는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올리라고 지시한 것이 화근이 됐던 것. 단 청와대 직원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에는 특별히 양배추 김치를 강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지난 9월30일 경주에서 유정복 농림부 장관으로부터 배추 값 대책을 보고 받은 후, 배추 값 폭등이 서민가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관계 수석실에 치밀하고 효과적인 대책을 세워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양배추 발언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 대통령의 양배추 김치 지시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 등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는 “비싼 배추김치 먹기 싫으면 300원 싼 양배추 김치 먹으라는 이야기임?”, “양배추는 싼 줄 아나보지. 배추 값 내릴 생각은 안하고 뭐하자는 건지” 등의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배추나 양배추나 비싼 것은 마찬가지였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가격정보에 따르면 9월29일 기준으로 양배추 상품의 1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8,020원이다. 2,333원이던 예년에 비해 무려 3.4배가 상승한 가격으로 양배추 최고가는 1만 170원, 최저가는 5,000원 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9월30일 방송된 SBS 8시 뉴스에서 신동욱 앵커는 “요즘 김치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대통령이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를 식탁에 올리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네티즌들이 논란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라며 “대통령이 물가를 잘 모르고 엉뚱한 말을 했다는 건데 설혹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렇게까지 해석하고 논란으로 볼 일인지는 의문이 듭니다”라고 클로징 멘트를 해 네티즌들의 원성을 샀다.

뉴스가 끝난 후 시청자들은 관련 게시판에 “공영방송에서 대통령 편을 드는 것이냐”, “사심방송도 아니고 아나운서 자격도 없는 사람”, “대놓고 편드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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