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선생은 “가슴 속에 청고고아(淸古高雅)한 뜻이 없으면 글씨가 나오지 아니한다. 문자향(文字香·문자의 향기)과 서권기(書券氣·서책의 기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즉, 명필은 단순히 글씨 연습만 반복한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문적 교양이 그 사람 몸에 배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인문적 교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일강(一江) 전병택 선생을 만나보았다.
대전 중구 문화동에서 일강서실을 운영하는 일강(一江) 전병택 선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券氣)’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누구보다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2년 전까지 금강풍류제를 주도해 올 정도로 평소 옛 선인들의 우아하고 멋스러운 정취(情趣)를 느낄 수 있는 풍류(風流)를 즐겼지만, 현재 서울 예술의전당과 한국 서예박물관의 서예 강사로 활동하는 등 바쁜 생활 때문에 큰 행사는 잠시 미뤄 둔 상태이다. 풍류에 대해 설명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 마치 한편의 잘 만들어진 영상을 보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풍류문화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일강(一江) 전병택 선생, 서예와 인연을 맺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글씨가 좋아 자연스레 붓을 들게 된 일강 전병택 선생은 이미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일강 선생은 “서예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집안의 내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증조부와 당숙, 사촌 형님들 모두 명필이었습니다”라고 전했다.
누구의 가르침 없이 자신만의 감각으로 글씨를 써 온 일강 선생은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오며 2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대전의 고등학교 서예동아리 모임에서 처음으로 정통서예를 알게 되었다. 일강 선생은 그 시절에 처음 샀던 서예교본을 꺼내들며 “처음 이 책을 봤을 땐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보고 또 봐도 새로웠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서예인생의 선생님이라 볼 수 있죠”라며 당시 정통서예를 만났을 때의 느낌을 전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강 선생은 꾸준한 노력으로 군 제대 후 처음으로 국전에 작품을 출품해 입선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4년간 국전에 출품한 작품들이 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다행히 그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국악과 풍류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다져나갔다. 마음을 비운 후 거짓말처럼 이듬해 국전에서 특선에 당선되며 35세라는 젊은 나이로 국전초대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국악과 인연을 맺으며 풍류를 통한 정신적 소양을 넓혀 나갔다.
내면의 아름다움 통해 좋은 글씨 표현
일강 전병택 선생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서울의 ‘봉은사’에 가면 추사 선생이 쓴 판전 현판을 볼 수 있다. 그 현판은 추사 선생이 세상을 떠난 해인 1856년에 만들어졌다. 일강 선생은 이 현판을 보며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그는 “글씨가 꾸밈이 없고 사심이 없어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 자신에 대해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라며 “공부한 것을 쌓아 놓는 것 보다 비우는 노력이 진정한 예술인의 정신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추사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일강 선생은 이러한 추사선생의 정신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자 지방 출신 작가로는 드물게 서울 ‘예술의 전당’과 ‘한국 서예박물관’에 서예 강사로 출강하며 제자들을 육성하고 있다. 제자 중에는 국전 특선, 전국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은 실력 있는 제자들도 많다. 그는 그런 제자들에게 서예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말을 전한다.
자신이 아름다워지기 위해 좋은 생각, 좋은 사람, 좋은 일을 하며 자신을 채워 가면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손끝, 붓끝을 통해 아름다운 글씨가 나올 것이라 강조한다. 그는 “글씨는 곧 자기 자신입니다. 이 말은 글씨를 어떻게 표현하고 써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라며 힘주어 말했다.
진정한 앎의 자세
하나의 예술가로서 대중들에게 관심을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강 전병택 선생도 마찬가지로 자신과 서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에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근대에 들어 신문물의 유입으로 서예가 대중들로부터 소외되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는 일강 선생은 일본의 정종 술병과 같이 유명 서예가의 글씨를 디자인에 접목시켜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 젊은 서예가들이 ‘캘리그래피(calligraphy)’에 서예를 접목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기존의 서예가들은 자존심 때문에 도전하기 꺼렸는데 요즘 젊은 서예가들의 이런 도전으로 인해 서예가 다방면으로 확장되었으면 합니다”라며 서예 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강 선생은 공자의 말씀을 전한다.
공자 말씀하시길, “자로야! 네게 앎에 대해 알려주련? 아는 것은 안다고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아는 것, 이것이 참된 앎이니라(子曰,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논어)” 진정한 앎이란 모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공자의 말을 가슴 깊은 곳에 새겨 둔 일강 전병택 선생. 어수룩하고 순박해 보여도 뜯어볼수록 세련미를 풍기는 글씨, 그런 글씨를 쓰기 위해 오늘도 배움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열정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