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죽지는 않아 지금은 남들보다 못해도 급할 건 없어. 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 먼 훗날 성공한 내 모습 그려보니 흐뭇해. 그날까지 참는 거야 나의 꿈을 위해.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지금은 비록 내가 보잘것없지만, 나도 하면 돼.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 벌써 포긴 왜 해.” 쌍용자동차의 박은소 과장은 벅의 2집에 수록된 ‘맨발의 청춘’ 노랫말을 다시금 음미하면서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본다. 지난날 자신이 그리는 꿈을 완성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그는 맨발의 투혼을 불사른 결과,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10년 전 현대자동차에 근무했었습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주력상품이 테라칸이었는데, 1990년대 자동차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던 쌍용자동차 무쏘의 인기에 밀려 정말 힘들게 테라칸을 판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박은소 과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만 해도 쌍용자동차는 부의 상징으로 돈이 없으면 감히 구매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고가의 제품이자 국내 대형 승용차시장의 대표 브랜드였다는 것. 그렇게 쌍용자동차의 인기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박 과장은 현대자동차를 퇴사하기로 결심하고 목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던 박 과장이 목수를 꿈꾼 이유는 한 가지였다. 사랑하는 가족이 머무는 삶의 터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설계하고 싶었기 때문. 그렇게 시작한 목수 일도 어느덧 7년이 흘렀다. 도중에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여 동생들과 직접 짓게 된 펜션은 현재 큰 형이 관리하고 있다.
목수라는 직업이 익숙해 질 때쯤, 박 과장은 現 쌍용자동차 상계 영업소 소장인 둘째 형으로부터 뜻밖의 영업 권유를 받게 되고 평소에 호감을 느끼고 있던 쌍용자동차라면 한 번 해볼만하다는 마음가짐으로 고심 끝에 입사를 결정했다.
“4남 3녀 중 막내인 저에게는 형을 돕는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고객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멋진 영업사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2009년 3월26일자로 ‘쌍용자동차맨’이 됐다.
행복한 딜러의 아름다운 도전
부푼 꿈과 큰 기대를 안고 힘차게 첫 출근한 날, 되돌아 오는 건 소장의 핀잔이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라는 불의에 찬 각오로 삭발한 머리가 문제였던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500~1,000장 정도의 전단지를 들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선 박 과장.
그는 매일 밤낮으로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전단지 배포가 무료해질 때 쯤, 박 과장은 자동차에 있는 전화번호를 일일이 메모해 홍보문자를 돌렸다. 주위에서는 그런 박 과장의 모습을 보며 미련하다고 타박을 주었지만, 우직한 성품의 그는 주변의 시선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영업방식을 고수했다.
문자를 보낸 지 한 달여 쯤 지났을까. 박 과장의 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대, 두 대, 세 대… 영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무려 7대의 차량을 판매한 박 과장의 문자영업방식은 알음알음 소문을 타 지점 내 널리 퍼졌고, 심지어는 소장까지도 문자영업방식에 동참했다.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5시쯤 기상해 문자와 명함을 아파트 단지에 돌리고 있는 박은소 과장.
그는 “제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 한명이 부사수처럼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정도 전단지를 무식하게 돌렸는데, 바로 그만 두더군요. 하하(웃음) 그 후로도 몇 번이고 입사자가 오면 노력 없는 대가는 있을 수 없다고 조언했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더 어려운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게 더욱 뿌듯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때문에 오늘도 컴퓨터(홍보)와 씨름을 하고 있는 박은소 과장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열심히 전단지에 스탬프를 찍고 있다.
언제든 말벗이 되어 드리겠다는 박은소 과장. 그의 열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참, 목조 구경하실 분은 언제든지 놀러오세요. kspensi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