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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만드는 과정은 고도의 기술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장인의 영역이다. 재료의 선택부터 제작의 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장인의 땀과 혼이 배어나야 비로소 명검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길고 긴 제작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거의 최종에서 진행되는 담금질이다. 쇠를 고온에 달궈 두드린 후 물에 식히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가운데 더욱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이 만들어지게 된다. 담금질 과정에서 결함을 드러낸 것은 검이 아니라 허드레 쇠붙이가 되어 용광로 속으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렇듯 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생의 한 부분을 배우기도 한다. 시련과 좌절의 모진 담금질을 이겨낸 사람은 보다 단단하고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시련과 고통의 담금질은 끝났다
전원공급장치(SMPS)업체인 (주)파워넷(정 현 대표)는 6년 전, 부채 280억 원에 현금이라곤 2,000만 원밖에 남지 않은 부실회사였다. 2004년 12월 춘천지방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을 했고, 당시 회사를 이끌던 김상도 前 대표이사는 “반드시 회사를 살려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남은 직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적지 않게 떠안은 채 길고 긴 담금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2009년 12월, 김 前 대표는 약속을 지켰다. KB글랜우드사모투자회가 760억 원을 들여 파워넷을 인수했고, 지난해 매출은 800억 원대에 달했다.
올해 2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주)파워넷을 이끌 새 얼굴 정 현 신임 대표이사가 취임했던 것. 그리고 회사정리 절차도 모두 끝냈다. 그 동안 회사를 얽매고 있던 복잡한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정 대표로서는 일단 시작단계에서 부채가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투자가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시작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기존 사업은 VD사업부가 기존 매출의 90%를 차지했었습니다. 이에 한 분야만 집중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업 다각화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정 대표의 분석은 정확했다. 그 동안의 실적은 삼성전자의 실적호조에 의지했던 바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삼성전자의 실적에 미풍이 불면 (주)파워넷에 태풍이 몰아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는 취임직후 TV용 SMPS를 비롯해 LED 조명용 SMPS 등 사업 다각화에 사력을 다해왔다.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모델, 리더, 조직구성원의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그 중 리더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을 독단적으로 정하는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성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가운데 비전을 제시하고, 목표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죠.”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날카로운 검을 만들겠다”
정 대표는 직원들에게 “2015년 World Best SMPS Company”라는 만만치 않은 비전을 제시했다. 매출 1조 원, 영업이익 10%, 이는 사실상 글로벌 넘버원이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담금질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제 숫돌에 갈아 날카롭고 빛나는 검을 완성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지난 세월이 신산스러웠던 만큼 저희가 베어낼 세상의 성과도 눈부시리라 기대합니다.”
포부를 밝히는 정 대표의 눈에서 칼끝을 닮은 빛이 느껴졌다. 그의 야무진 비전은 그저 머릿속에 떠도는 구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 대표는 단순 비즈니스 모델에서 비전을 달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시스템이 체계를 갖추고 가시화 되어갈수록 자신감과 희망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파워넷 대표이사직을 제안 받았을 때에는 약간의 걱정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거의 맨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지금은 역시 제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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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에게 행복을 안기는 원천이 ‘사람’이라고 했다.
“산업분야에서 기계화가 이루어져 사람의 비중이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결국 모든 사업과 산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저희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파워넷의 중심에서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 사랑하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정 대표가 이르기를 이들은 보통 사람, 평범한 직원들이 아니라고 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고통스럽고 지루했던 담금질을 이겨낸 명검(名劍)들이라는 것이다. 회사가 기울고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가운데서도 희망과 비전을 잃지 않고 끝까지 회사를 지킨 공신들이며, 결코 만만치 않았을 그 시간 동안 끝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며 역량과 안목을 키워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오라, 젊은이들이여! 함께 세상을 베어 보자”
정 대표는 직원이 곧 회사의 미래라고 단호히 말했다. 어느 회사든 직원의 눈빛을 보면 그곳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참으로 행복한 대표이사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취임 직후 과거의 성과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성과급을 지급하긴 했지만, 무엇을 주든 결코 아깝지 않은 ‘내 사람들’이라며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
“제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포상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셈입니다. 제가 제시하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이 거대한 비전은 꼭 실현될 것이라고 믿기에 머지않은 날 목표달성의 축포를 터트리는 날 그들에게 포상을 나눠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그리고 정 대표는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잠시 설레임과 흐뭇함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눈빛이 다시 칼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웃음기 없는 그의 입가에는 무인(武人)의 결연한 의지가 맺힌 듯 했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 꿈과 희망과 미래를 믿는 이들은 망설이지 말고 저희 (주)파워넷으로 오십시오. 그리고 선배 직원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닦아 놓은 명검을 들고 함께 세상을 베어 봅시다. 모두가 풍요롭고 행복한 희망의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검은 아무나 만들 수 있지만, 명검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장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날 본 기자가 만난 (주)파워넷 정 현 대표는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장인이자, 장수였고, 또한 직원들을 가족처럼 품어줄 수 있는 아버지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