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부대는 가라.’ 바야흐로 여풍시대가 도래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남자보다 더 카리스마 강하고, 기백이 철철 넘치는 여성 인재들의 활약이 눈에 띄고 있다. 따뜻한 감성과 섬세한 지성, 어머니의 마음을 가진 여성들의 성공가도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건장한 남자들도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자동차 세일즈 업계에서 여성 특유의 장점을 무기로 여풍당당 행진곡을 울리고 있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바로 현대자동차 공릉 지점의 이경란 차장. 꾸준히 높은 판매율을 자랑하며 전 차종의 판매왕 자리에 등극한 그녀는 고객의 차량문의 컨설팅을 비롯해 구입과 추후 A/S까지 완벽히 소화해 내며 자동차 영업소의 꽃으로 대 활약하고 있다.
파란만장한 이경란 차장의 인생역정

젊은 시절 이경란 차장은 무용계에서 촉망받던 엘리트 무용수였다. 예고와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남원시립국악원에서 무용 강사로 활동하며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 그 해 세종대학교 대학원 무용과에 응시해 전국에서 몰려온 수십 명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대학원 재학시절에도 입시전문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성공한 무용가로서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던 중,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박사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행 비행기가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조차 못했다.
낯선 땅 미국, 그곳에서 지금의 반려자인 남편을 만났다. 돌이켜 생각해도 남편은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만난 지 일주일 쯤 됐을 때 남편은 자동차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권유했고 결혼하기 전에는 절대 남자와 함께 여행을 갈 수 없다고 답한 그녀에게 “24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되레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결국 그 남자다운 카리스마에 매료되었고 약속대로 한 달간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후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곳에서 결핵으로 건강이 매우 악화된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게 되었고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경란 차장은 한국에 남기로 결심했다. 이후 헌신적인 간호로 시어머니의 건강은 차츰 회복되어 갔고, 그녀 역시 임신에 성공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자동차 영업일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그의 경력을 아는 주위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실제로 가족과 지인 등 주변사람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더욱 커져갔고, 그녀 역시 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경란 차장은 달라도 확실히 뭔가 다른 여성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앞서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당찬 포부를 내세우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 결과 이경란 차장은 입사 3년 만에 전국 판매왕에 등극하며,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자동차 세일즈 업계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물방이라도 끊임없이 떨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수전척선(水滴穿石)’의 자세로 고객을 섬겼습니다.”
자동차 세일즈 업계 간 판매경쟁이 가속도를 붙으며 점입가경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경란 세일즈컨설턴트가 택한 최대 무기는 성실함과 정직이었다. 도덕적이며 원칙에 충실한 그녀는 고객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지방을 마다하지 않고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고객을 기다리기보다는 고객이 있는 곳을 향해 직접 찾아나서는 그녀의 화통한 성격은 이미 고객들 사이에서는 유명일화다.
수많은 고객들을 만나면서 기쁜 날도 많았지만, 반대로 힘든 날도 많았다. 발이 퉁퉁 붓는 것은 물론, 불규칙한 배변으로 방광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영업사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손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아파트 곳곳에 전단지를 꽂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파트 경비원이 나타나 소리를 지르더니 제가 꽂아놓은 전단지를 모두 구겨버리더군요. 그것도 제가 보는 앞에서.”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던 그녀는 힘이 들 때면 종교에 의지했다. 밤새도록 ‘힘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 다음날 정말 신기하게도 힘이 솟아났고, 또 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전단지와 명함을 돌리고 퇴근 후에도 동네를 돌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결국 일에 대한 ‘열정’은 이경란 차장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었고, 2010년 마침내 그녀는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일즈 업계의 새로운 신화를 창조해 가고 있다.
무용 포기하지 않아, 때를 기다리는 것일 뿐

그렇다고 무용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저 때를 기다리는 것일 뿐.
“제 인생의 반평생을 사로잡았던 무용을 한시도 잊은 적은 없어요. 지금도 제 가슴 속에는 삶의 깊이를 담아내는 춤을 추고 싶다는 희망이 담겨있어요. 그 희망을 이루는 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시기가 오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는 특유의 친절함과 밝은 미소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고객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시련이 있었기에 오늘이 더욱 빛나는 이경란 차장에게서 긍정의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