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학교 촌지와 관련, 인터넷에서 말썽이 된 글이 교사의 행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왠지 씁쓸하다. 이는 문제의 본질이 이런 어이없는 글이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촌지 사회'의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 10명 가운데 3명은 촌지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일선 학교 교장과 교감,교사 5천4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7%의 교원이 학부모로부터 대가성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촌지를 받았을 때 34%의 교가 청탁을 들어줬다고 한다. 촌지문제는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 주변에 실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촌지 수수에 대해 확실히 되짚어야 할 것이다.
자동차에 싣고! 경비실에 맡기고!
3,4월은 학기 초여서 '그래서' 촌지가 오간다? 그럼 그 다음은? 5, 6월은 스승의 날과 소풍이 있으니까, 7월은 1학기가 마무리되니까. 다시 9월은 2 학기 초여서, 10, 11월은 추석과 가을 소풍, 운동회가 있으니까, 12월은 다시 한 학기가 마무리되니까... '그래서!' 촌지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게 학부모들의 변이다. 연중 방학 한 두 달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촌지의 명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얀 봉투에 빠작빠작한 현금을 넣어, '선생님은 보고도 못 본 척, 학부모는 주고도 안 준 척' 남몰래 서랍 속에 넣어두는 과거 같은 뻔한 형태로 이 수많은 촌지들이 오가는 것일까? 한 초등학교 5학년생 학부모인 김 모씨는 '경비실 촌지'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한 학년이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선생님께서 집 주소를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편하게 선생님께 선물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거죠. 아파트에 많이들 사시니까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두면 선생님이 퇴근하시고 찾아가시는 식이에요."
아파트만 열심히 지키는 줄 알았던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이 부피가 큰 등기 우편물들을 챙기는 것 이외에도 선생님들 선물까지 맡아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김장때 김치 가져다 드리는 것은 예사죠. 고추장, 된장에 주일이면 가족끼리 식사하시라고 밑반찬도 만들어다 경비실에 놓고 오는 걸요."
'변태'가 되어버린 촌지
초등학교 여교사를 사칭한 한 여성의 촌지옹호 글 파문은 '촌지괴담'을 떠올리게 한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이가 걸핏하면 선생님한테 혼이 나 울면서 돌아오길래 촌지를 갖다 줬더니 그 뒤론 그런 일이 없어졌다든지 하는…. 이 촌지문제는 사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려오는 경험담만 귀 기울여 들어봐도 매우 심각한 양상으로 우리 주변에 실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참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는 여러 교사들도 그렇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촌지 주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학부모들로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촌지라는 것은 교육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인 선생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우리만의 미풍양속에 가깝다. 과거엔 그것이 떡 한 조각이기도 했고 갓 낳은 계란 몇 개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디만한 정성된 마음'을 의미하는 촌지의 본래 의미에서 한참 벗어나 어느덧 가계에 큰 주름살을 지게 만드는 사회적 병폐로 자리 잡아 더 이상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라고 판단된다.
물론 학부모들이 자식의 선생님께 고마움의 표시로 음식 조금 해다 드린 것을 뭐 그리 크게 질책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함께 변종이 되어버린 촌지가 어디 경비실에 맡겨진 케이크 하나 뿐이겠는가? "찬조금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예전엔 개개인 선생님들이 불법으로 돈 가져와라 했지만, 지금은 공식적인 행사를 내세워서 합법적으로 돈을 거둬가요. 그게 찬조금이라는 거예요."
교내 운동회나 소풍이 있으면 어머니들은 점심식사비 조, 저녁 뒷풀이비 조 그리고 마지막 사우나비 조로 나뉘어져 돈을 거둔다.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이 있는 상급학교들에서는 교사 간식비 명목으로 찬조금을 거두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교사 개개인이 공개적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예전보다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런 변종들이 대신 활개를 치고 있는 거다. '속으로부터 우러나온 마음을 나타낸 작은 선물'이라는 의미의 '촌지'는 이렇게 그 몰골이 흉측하게 변해만 갔다.
촌지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지적되는 것이 '내 자식이 먼저, 내 자식이 최고'라는 학부모들의 이기심이다. 바로 내 자식만큼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대우를 받길 원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과도한 촌지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촌지를 주는 측과 받는 측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이 보기 흉한 촌지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기적이어서 그래!'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보니 우리 아이만 더 예뻐해 달라고 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 미워하지만 말아 달라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 손가락이 조금 민망해 진다.
한 학부모는 "매달 상당 액수의 촌지를 챙겨드리는 몇몇 엄마들을 제외하면, 그저 그 사람들 흉내만 내는 절대 다수의 엄마들이 남아요. 음식을 준비한다든지 약간의 돈을 서 너 달에 한 번씩 준다든지 하는 엄마들이죠. 전자의 엄마들은 진짜로 자기 자식들이 더 돋보이길 원한다고 할 수 있지만, 후자 쪽 엄마들은 사실 자기 아이를 미워하지만 말아달라고 하는
거예요. 부디 자신의 아이가 선생님의 관심 밖에서 기죽어 학교 생활하지 않게만 해달라고 말이죠."
'내 자식을 미워하지만 말아달라.' 이 부분에 방점을 찍은 한 학부모의 한 마디는 학문의 전당에서 촌지가 얼마나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지 짐작케 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촌지를 요구하는 사람을 신고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이 변태놈을 순수해야 할 학문의 전당에서 밀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현재 촌지 신고는 교육청을 통해 하게 되어 있는데, 해당 교사의 잘못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고자의 신분이 보장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 교육청 민원 담당자는 "무고죄를 막기 위한 형식적 절차이고 이로 인한 피해는 내부 고발자의 숙명"이라고 설명했다. 내부 고발자의 '숙명'이라는 안일한 행정의 결과가 우리 학부모들로 하여금 비리에 고개 숙이도록 만들고 더욱 더 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하고 있었다.
촌지 권하는 사회, 그래도 희망은...
"아직도 교사들의 촌지 수수 문제가 거론된다는 자체가 같은 교사로서 부끄럽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전국 교직원 노조의 이금편 정책실장은 학교 내 촌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입을 떼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간 선생님들의 의식이 많이 변화되었고 그러는 동안 서서히 학교 내에서 촌지의 문제는 특정 몇몇 사람들의 지엽적인 이야기로 전락한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도 교육열기가 높은 특정 동네의 특정 선생님들과 학부모 사이에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만, 일부의 이야기를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 해석 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 선생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학부모들도 많다. 선생님들 자체적으로 학부모가 학교에 직접 오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는 학교들도 늘고 있고, 학부모의 촌지를 학생의 일기장에 끼워 조용히 돌려보내는 일들이 점차 많아지는 추세라는 것을 학부모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촌지를 돌려보내는 좋은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다던데 왜 저는 한 번도 만나 보지를 못한 거죠?"라고 되묻는 어머니들이 아직도 흔하고 "중, 고등학교는 음성적으로 주기 때문에 덜 드러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학부모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촌지를 아예 떨쳐내지 못했다는 증거다.
얼마 전 학교 촌지와 관련해 인터넷에서 말썽이 된 글이 교사의 행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수사당국과 일선 학교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본질이 오히려 이런 어이없는 글이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촌지 사회'의 현실에 있다. 단순히 "막 태어난 아기가 두발로 걸었다"는 엉터리 얘기라면 아무도 안 믿어야 하는 데 '가짜 촌지 교사'의 글은 달랐다. 문제의 글이 올라온 뒤 상당수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토로하며 울분을 토했다. 한 학부모는 "활달하던 우리 아이가 촌지 때문에 소심하고 눈치 보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버티다 못해 봉투를 내밀었을 때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박수치고 난리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촌지 피해자들이 아직 존재하는 한 글 작성자가 실제 교사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교육계 관계자들은 알아야 한다. 일부 교육 당국과 학교 관계자들은 촌지 수수는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적발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촌지 수수로 적발된 교사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을 보면, 근절 의지가 의심스럽기만 하다. 나라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바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진리를 가르쳐 주는 '나는 선생이니까'
얼마 전, 캐나다 벤쿠버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사건을 살펴보자. 한 한국인 조기 유학생이 교칙을 어겨 학교측에서 그의 어머니를 호출하는 일이 있었다. 아이 학교에 갈 때 선생님께 드릴 돈 봉투 하나쯤 챙겨 가는 것이 예사였던 이 한국 어머니는 캐나다에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돈 봉투를 들고 당당하게 학교에 들어섰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고발로 이 어머니는 뇌물공여죄인이 되었고 이 뉴스로 한국인은 한바탕 웃음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캐나다의 한 지역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가진 '용기'를 우리 한국의 선생님들이 먼저 가져보는 모범을 보이는 것은 어떨까. 변해 가는 한국 교단의 모습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이들에게 '학부모가 주지 않으면 되지'하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나는 먼저 세상을 살아 아이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 주는 선생이니까 이번에도 내가 먼저 이 부패의 고리를 끊어야지'하는 모습을 선생님들이 보여주면 어떨까. 제도적 차원에서 20달러(한화 2만 천 원 상당)가 넘는 선물을 받으면 해직이 당연시되는 교육 선진국들의 제도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모든 일을 먼저 해 내기엔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 앞에서 너무 약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지난 3월 분당 모 고등학교의 불법 찬조금 문제가 불거지고 난 후 분당지역 각 학교는 자정 노력의 하나로 소위 '돈 걷는 어머니회'로 불리는 어머니회 조직을 강력하게 막고 있어 수년간 교사와 학부모, 학교를 부담스럽게 했던 찬조금 문제가 해결될지 기대와 의혹이 엇갈리고 있다. 돈 걷는 어머니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회비는 소풍이나 운동회, 스승의 날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아이들의 간식비로 사용되기도 하고 에어컨이나 전자오르간, 도서 등 학교 비품을 구입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그밖에 선생님의 식사비·목욕비나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 구매 비용 등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촌지를 받는 교사가 어찌 정직한 교육을 할 수 있으며, 다른 많은 교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을 생각한다면, 교단에 설 수 없도록 해야 마땅하다. 최소한 촌지를 받았으므로 감봉 등 중징계를 내려야 한다. 교육 당국은 이런 현실을 직시하길 바라며 촌지 수수를 일부 교사의 일로 치부하지 말고, 근절을 위한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