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부르는 가곡과 찬양으로 세계를 누비다
1991년 5월, 美 뉴욕의 우드사이드 장로교회 담임목사였던 김바울 선교사는 구소련이 붕괴해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자 그곳을 찾았다. 모스크바를 비롯해 하바롭스크 등 4대 도시를 돌며 대전도 집회를 열었다. 집회 때마다 대성황을 이뤘고, 많은 결신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온 후 러시아 선교사를 현지에 파송해서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선교사 지원자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성령의 강한 감동에 이끌려 러시아로 날아가다

“내가 너에게 준 달란트를 활용하라.”
또 한 번의 성령의 감동이 전해져왔다. 주님이 김 선교사에게 준 달란트,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 인류의 공용어라는 음악이었다. 서울대학교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했던 그는 러시아 음대생들을 모아 러시아천사합창단을 조직했다. 그들에게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면서 한국 가곡과 찬양을 열심히 가르쳐 훌륭한 합창단으로 양성 시켰다. 첫 번째 음악회를 개최했는데 약 2,000명의 청중이 참석했다. 공연 중간에 그는 짧은 설교와 이제 막 시작될 교회의 첫 예배에 그들을 초청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눠준 초청장만으로 창립예배에 240명이 참석했습니다. 그토록 꿈꾸던 러시아 교회를 세우는 순간이었지요.”
그 당시 러시아는 공산주의 사상에 세뇌되어 있었고 무신론 사상으로 기독교를 증오하여 기독교인들을 극히 박해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웅장한 러시아 정교회의 건물은 부셔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던 이유는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고 특출한 예술적인 가치를 간직해온 러시아의 상징적인 건물을 러시아인들은 사랑했기 때문이다.
TV 방송을 통해 소개된 러시아 천사합창단과 김 선교사는 러시아 붉은 군대 안에서도 공연을 갖게 되어 러시아 고급 장교들을 사귀게 되어 군선교의 길도 활짝 열리게 되었다.
교회의 의미는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이 교회이며, 그 모임에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심이 느껴져 김 선교사의 교회는 천여 명의 교인들이 모이는 대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선교를 위한 연단과 훈련, 이제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합니다”

목회자의 정년 70을 훨씬 뛰어 넘은 김 선교사가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은 5년 전에 임파선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오직 신앙만으로 병원치료 없이 암을 스스로 극복하고 지금도 젊은 몸가짐과 마음으로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김 선교사의 러시아 선교를 하나님이 귀하고 보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계속 러시아 천사합창단의 메아리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질 것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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